겨울의 밤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밖으로 불러낸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도시는 낮보다 밤에 더 분주해진다. 해가 지고 나서야 켜지는 불빛들이 사람의 마음을 대신 밝혀주기 때문이다. 잠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날도 그랬다.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집에 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저녁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핑계 삼아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음속에 남아 있던 한 해의 감정들이 조금은 정리될 것 같았다.
마켓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보다 많은 불빛이 나를 맞았다. 반짝이는 트리와 작은 상점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캐럴 소리.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따뜻한 음료를 손에 쥐고, 저마다의 속도로 겨울을 통과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연인과 손을 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이의 장갑을 다시 끼워주고 있었다. 그 장면들을 바라보다 보니, 괜히 마음이 느슨해졌다. 이 계절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부드럽게 만든다.
천천히 걷다 보니 낮과 밤의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낮의 마켓이 ‘구경’이라면, 밤의 마켓은 ‘머무름’에 가까웠다. 어둠이 내려앉자 불빛은 더 선명해졌고, 사람들의 표정도 조금씩 느려졌다. 바쁘게 흘러가던 하루가 이곳에서는 잠시 멈춘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의 온기와 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을 뿐이었다.
손에 쥔 따뜻한 음료에서 김이 올라왔다. 그 온기를 느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추위 때문이 아니라,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더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춥기 때문에 불을 피우고, 불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모인다. 그 단순한 구조 안에서 우리는 잠시 덜 외로워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켓의 불빛은 하나둘씩 멀어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더 환해져 있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얻은 건 아니었지만, 괜찮은 밤을 보냈다는 감각만으로 충분했다. 겨울의 도시는 이렇게 조용히 사람을 위로한다. 크게 말하지 않고, 오래 붙잡지도 않으면서.
올해의 겨울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반짝이던 불빛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밤의 온기는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추웠지만 따뜻했던 저녁, 굳이 이유 없이 걷고 싶었던 밤. 겨울은 늘 그렇게, 마음보다 먼저 불을 켠다.
그날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