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었던 이유보다, 살고 싶은 단서가 더 중요했다
나는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
2016년에 한 번, 2024년에 한 번.
첫 번째는 공황장애로 인한 깊은 우울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무기력감에서 비롯된 우울 때문이었다.
두 번 모두, 공통점은 하나였다.
‘나에게는 더 이상 꿈도, 희망도, 기대하는 미래도 없었다’는 것.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삶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맞다. 내가 죽고 싶었던 건, 너무 슬퍼서가 아니었다.
‘내 인생의 앞날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건, ‘죽지 말라’는 조언도, ‘넌 소중하다’는 위로도 아니다.
그저, 아주 작더라도 살고 싶은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막연한 희망이라도 좋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나는 안다.
누군가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건 ‘희망’을 같이 찾아주는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움직일 수 없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희망’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그 희망은 ‘글쓰기’다.
하지만 오늘, 나는 가족의 말에 다시 꺾이고 말았다.
이해는 한다. 나이 서른하나. 작가가 되겠다는 도전이 가족들에게는 불안하고, 무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충고들은, 나를 또다시 깊은 물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오늘 나는, 글을 쓰는 것조차 기적처럼 느껴질 만큼 무력감에 휩싸였다.
침대 속에 웅크려, 움직이지도 못한 채, 다시 한번, 미래 없는 하루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세 번째 자살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작은 단서 하나를 남긴다.
어쩌면, 이 글이 ‘살고 싶은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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