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제78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베니스와 더불어 베를린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다. 거기에 이번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다큐멘터리적인 촬영 기법을 통해 사실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란은 영화 제작의 규제가 심하기도 하고, '자파르 파나히' 감독도 정부로부터 형벌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 제작에 제한이 심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이 더욱 귀하게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 초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저 사고였을 뿐?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된다.'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어느 날, 나를 지옥으로 이끌던 삐걱 소리가 다시 들렸다. 분명 그놈이다. 하지만 만약에 아니라면?' "그저 사고였을 뿐? 누군가는 그걸 평생 기억해"라는 시놉시스가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스릴러 장르보다는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가미해 정적이며 현실적인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이는 참신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어떤 이에게는 필자처럼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영화가 지닌 주제의식은 '그저 사고였을 뿐'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한 이유다. 연출과 연기, 주제의식을 통해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다뤄본다.
이번 영화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야심이 담긴 듯하다. 우리는 영화 제목에서 이번 영화의 내용을 어느 정도 유추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그저 사고였을 뿐'이란 제목을 통해 사고, 복수, 대립 등의 단어가 연상되고, 특히 복수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복수에 그치지 않고 우연과 사고, 복수, 관계, 연결 등의 뜻을 적절히 혼재하여 외형적으로 복합적인 내용의 갈래를 지닌다. 그러나, 이 역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가미하고 현실주의적인 시선을 더해 자신의 경험과 현시점의 이란을 간접 조명한다.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의 핵심적인 연출 요소는 바로 다큐멘터리적인 시선과 리얼리즘이다. 영화의 장르와 다르게 차분하고 정적인 전개, 간접적인 연출이 영화 자체의 깊이를 더해준다. 특히, 간접적인 연출과 음향이 인물들이 겪은 고통을 연상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직접적 장면이 없어도 충분히 장르적인 재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보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거기에 자신의 경험과 신념, 가치관을 함께 담으니 영화의 힘은 거대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 놀랐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배우들의 연기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적은 움직임으로 발산되는 감정 표현부터 격정적인 내면 연기까지 모두가 훌륭했고, 여러 배우들이 이루는 앙상블 또한 훌륭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낯선 배우가 화면에서 설득력 있는 연기를 선보일 때 경험하게 되는 위압감이 상상 이상으로 컸다. 필자는 영화에서 언어에 대한 어색함이 있을 때, 영화 관람이 힘든 경우가 있다. 한국어와 영어로 된 영화를 줄곧 본 이유일까? 하지만, 이번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은 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어에서 필자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합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출연 배우들이 비전문 배우라는 것은 더욱 놀랍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역동적인 성격이 아니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더욱 중요했고, 그들의 캐스팅은 크게 유효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에 배우들의 연기가 적절하게 녹아든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사고였을지 모르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저 사고가 아니었음을 고발한다. 이를 현 이란 사회가 지닌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을 '자파르 파나히' 감독 개인의 시선으로 담았다. 이야기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감정적인 복수극으로 볼 수 있으나, 깊이 들여다보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세부적으로 심어놓은 메시지가 보인다. 폭력, 고통, 일방적인 고문 등의 행태를 그저 사고로 치부하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의 반발성과 가치관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필자는 이번 영화가 어떤 관객들에게는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란 분명히 개인의 차이가 있는 것. 하지만,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조금 더 깊고 섬세하게 본다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의도와 메시지를 깨닫는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영화를 탐구적으로, 섬세하게 의도하고 설계한 것과 같이 우리도 그의 영화를 탐구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평점 : 4.0 (강력 추천)
* 한 줄 평 : 입장의 차이는 영화 내외적으로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