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기사를 기다리는 자의 슬픔을 아는가?
책은 활자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런 책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의 비통함을 아는가?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인데 사랑할 대상을 만나는 것이 어려울 뿐, 이라는 헛소리를 집어치우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결국, 이상형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논의는 핵심에서 벗어났다는 게 프롬의 생각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면서 좋은 대상만 찾아내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착각 따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 한 번이라도 희생해 본 적 있느냐고.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항상 자기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타인에게 사랑을 줄 생각도,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해 초조해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주려는 사람이 되었으면.
/
사랑할 대상을 찾는, 나의 기다림은 빼앗겼다.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니까
그러니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주려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지만
그 빼앗긴 기다림을 위로하며 택배 기사를 기다리는 사람을 아는가?
일상의 따분함을 견디지 못해 책 읽는 사람을 아는가?
책조차 지루할 때가 있는, 망연한 사람의 넋두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신도 죽은 세상에서, 이젠 누굴 기다려야 하나?
- 행운 깃든 비관주의자, 파국 속 낙관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