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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6. 2022

택배 기사를 기다리는 슬픔

택배 기사를 기다리는 자의 슬픔을 아는가?


책은 활자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런 책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의 비통함을 아는가?




에리히 프롬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인데 사랑할 대상을 만나는 것이 어려울 뿐, 이라는 헛소리를 집어치우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결국, 이상형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논의는 핵심에서 벗어났다는 게 프롬의 생각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면서 좋은 대상만 찾아내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착각 따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 한 번이라도 희생해 본 적 있느냐고.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항상 자기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타인에게 사랑을 줄 생각도,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해 초조해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주려는 사람이 되었으면.


/


사랑할 대상을 찾는, 나의 기다림은 빼앗겼다.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니까

그러니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주려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지만


그 빼앗긴 기다림을 위로하며 택배 기사를 기다리는 사람을 아는가?

일상의 따분함을 견디지 못해 책 읽는 사람을 아는가?

책조차 지루할 때가 있는, 망연한 사람의 넋두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신도 죽은 세상에서, 이젠 누굴 기다려야 하나?




- 행운 깃든 비관주의자, 파국 속 낙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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