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득 Sep 30. 2022

절밥일지

열기 가득한 3시쯤의 햇살 아래, 경쾌한 걸음 소리가 울린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경국사 템플스테이. 

무엇에 이끌려 이곳에 왔을까? 불자의 속삭임?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처의 가르침은 매력적이니까.


시계를 거꾸로 돌려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때 나는 출가하고 싶었다. 

여전히 같은 마음인가?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자.


어쨌든, 절에 들어가 살고 싶었던 과거의 염원을 떠올리며 템플스테이를 찾았다.


/


가방에 든 게 없어 발걸음이 가벼웠다. 읽을 책 하나 가져오지 않았다.

살아 숨 쉬는 세계는 텍스트 안에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 중이다.




극락교

눈앞에 극락으로 가는 길이 놓여있다. 극락 가는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저기 보이는 현수막엔 뭐가 쓰여있을까? 극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극락은 현실에 없나 보다. 다리 끝에 걸려있는 건 수능 대박을 위한 기도 안내 현수막이었다.


근데 그게 극락 가는 길은 아닐 텐데?




드디어 경국사 입구.




숙소

여기서 살고 싶다. 단, 우리 집에 있는 무중력 베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




광고 아님

(꿀잠 자는데 1등 공신)




식당

드디어 절밥. 자율배식이라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담을 수 있었다.

두부, 버섯, 나물, 김, 사과, 견과류 그리고 떡볶이까지! 반찬 하나하나가 명품이었다.

근데 사진은 못 찍었다. 절밥 사진 없는 절밥일지라니.




여기서 살고 싶다. 머리를 밀어볼까나.

근데 산모기는 맵다. 진짜 맵다.




염불 외는 소리와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15분 남짓한 예불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기하게도 잡생각이 사라졌다.

이게 경건함이 주는 매력인가? 아님 천직인가?

진짜 놀라웠다. 앞으로는 명상을 해봐야겠다.




청둥오리와 백로

경국사를 나와서 걷다가, 천변에 앉아 오리와 백로를 구경했다.

먹는 것에 열중이다.




내 청춘 돌리도

천변에 이런 게 걸려 있었다.

지금 당장 머리 밀고 속세를 떠나면 어떨까?

아래의 시 한 편을 보자. 15살에 출가했다가 속세로 돌아온 21살 청춘이 노래한 시를.


꽃 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 거나

- 설요 지음


아마 설요 따라 하산하지 않을까?


이 시를 본 어떤 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아, 한 젊음을 늙히기에 저리도 힘듦이여!"


산중생활은 청춘이 지나간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자, 그러면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작가의 이전글 배고픔, 혹은 외로움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