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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13. 2022

1. 서문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내가 키우던 꽃은 시들었다. 볕 좋은 곳에 방치해두었던 게 화근이다. 물기 하나 없는 푸석푸석한 흙에서 살아가는 식물이 어디 있으랴. 다 내 잘못이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춥겠구나. 겨울바람쯤이야 현대 문명 속에 숨으면 그만이지만,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영혼의 촛불을 어찌하랴. 비로소 이 한 몸 제대로 가누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데,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 몸과 마음 모두 성치 않다.


오늘도 외풍이 분다. 바깥바람이 세다. 바람에 흔들리되, 날아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족쇄의 팔 할은 책이려나.


책 읽으며 늘어나는 열쇠만큼, 족쇄도 무거워져만 갔다. 그래서 바람 불지 않는 날에도 쇠사슬 끄는 소리가 들린다. 짤랑짤랑 거리는 열쇠 소리와 질질 끌리는 쇠사슬 소리의 이중주.


물론 너무 걱정하진 마시라. 글에서 드러나는 것만큼 비관적이진 않으니까. 예를 들어 족쇄의 팔 할이 책이라는 문장은 거짓이며 거짓말이다. 다만 엄살쟁이에 불과할 뿐.


이젠 대장장이가 되어야겠다. 어깨너머로 배우던 망치질과 담금질을 스스로 해봐야겠다. 글읽기에서 글쓰기로. 추종에서 충만으로.


보잘것없는 삶의 내공에서 나오는 감상이기 때문에 과장과 미화의 탈을 쓰고 있긴 해도, 나의 기록은 살아온 날에 대한 추억이요 살아갈 날에 대한 희망이 되리라.


자 그럼, 내 어린 날의 애틋한 모습이여,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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