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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y 08. 2022

어버이날에 본 엄마의 얼굴

엄마의 사랑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중년이 넘은 비즈니스맨이지만 아직도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어릴 때부터 입에서 떨어진 적이 없는 단어라 익숙하고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왠지 어머니보다는 엄마라 부르는 게 더 사랑스럽고 친근한 뉘앙스가 있다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유일무이하고 불러도 불러도 편안한 호칭이 엄마이고 가장 가깝고 친숙할 수밖에 없는 단어는 엄마이기 때문에 내가 80이 넘는다 해도 엄마를 어머니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버이날은 가정의 달 이자 계절의 여왕 5월에 가장 좋은 축복의 날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꼭 특별한 날에만 감사를 표하고 강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께 감사를 올리는 지정된 날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기념하고 축하할 수 있다면 축제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며 어버이날을 통해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체만으로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봄의 절정을 이루는 5월이 가정의 달이 된 사유는 어찌 보면 봄은 시작이며 사랑의 시작은 가족이라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이맘때가 되면 어릴 적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화창한 봄날, 아빠의 손을 잡고 어린이날 잔치 행사에 갔었고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무척이나 기뻐했던 추억이 있는데 해마다 어린이날은 어린아이들이 기다리던 연례행사로 TV 특집 프로그램도 많았고 어린이를 위한 연극 공연, 백일장, 그림 대회 및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많았으며 특히 공휴일로 지정된 휴일이어서 생동하는 5월의 첫째 축제였다.

어린이날 이후 바로 다가오는 어버이날에는 조그만 고사리 손으로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달아드리던 이벤트가 시작되었던 시기였고 그당시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어버이날에는 특별히 효를 강조하고 군사부일체를 철저히 교육시키던 때라 학교와 방송에서 카네이션 달기에 대한 홍보가 무척이나 요란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생일 선물을 받듯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나면 착한 아이들은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어버이날 편지를 쓰고 선물을 준비하던 문화도 있었으며 필자 역시 은행에 저금했던 돈을 찾아 엄마, 아빠께 선물을 사드렸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그림은 비싸지 않은 별것 아닌 선물이었지만 무척이나 기뻐하시던 엄마, 아빠의 환한 미소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꼭 어버이날이 아니더라도 어린 나이에 맹목적 사랑의 대상은 엄마, 아빠가 전부였기 때문에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어버이날을 특별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있었지만 어린 시절 넘치는 사랑에 대한 당연한 동심의 반응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때부터 이어온 우리 가족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선물을 준비하고 좋은 음식을 가족이 모여 함께 나누는 날이 가족의 생일과 어버이날, 명절과 크리스마스이고 진정한 축복이라 여기게 되는 개인적인 이유는 성인이 된 후에도 신기하게 5월 8일에 바쁜 일이 겹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외국에 있을 때에도 만사를 제쳐두고 한국 아침 시간에 맞춰 전화로 인사를 드렸고 여유가 없었던 유학시절이지만 5월 8일 전에 받아보실 수 있게 선물도 보냈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부모님 사랑만큼 맹목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 부모님의 사랑이라 여기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사랑의 기초가 가정이고 천륜으로 연결된 부모, 자식의 관계는 영원히 존재하는 세상 최고의 가치인 까닭에 보답이 불가능한 것도 부모님 사랑이라 단언하는 데에는 누구나 한치의 의문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는 부모님께 많은 불효를 저질렀다.

나의 그릇된 행동으로 부모님께 상처를 드린 적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부모님께서 깔아 주신 꽃길을 거부하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갔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학업을 마치고 전문직으로 좋은 직장에 가기를 바라셨지만 방황의 시기가 길었던 탓에 대학도 24세에 진학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선택한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유학을 떠난 나는 학업을 마치고 뉴욕에서 2년간의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 31세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굴곡진 나의 비즈니스는 험난하기만 했다.

처음에 계획대로 진행되던 사업은 시간이 갈수록 고난의 연속이었고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순리라는 것을 몸으로 영혼으로 체험하게 되었던 값비싼 인생수업의 시간은 길기만 했다.

내가 선택한 여정 속에는 내가 힘들 때마다 노심초사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묵묵히 바라보시던 엄마의 고뇌도 많은 지분을 차지하며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다.

사업하는 아들을 지켜보시며 편안하게 하룻밤도 못 주무셨을 엄마의 고통을 왜 진작 알지 못했는지 변명을 하자면 30대의 성숙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받기만 했던 엄마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던 사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이 든다.

중년이 넘은 지금이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결코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버이날을 맞아 엄마의 사랑을 반추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사연으로 옮겨 본다.

비즈니스란 거짓 없는 인생의 그래프와 같고 좋은 날 보다 은 날이 많은 게 인생이듯 나의 그래프 상향선은 언제나 짧기만 했다.

그때마다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엄마는 얼마나 불안한 시간을 보내셨을까를 생각하면 그동안 지은 죄를 보상해 드릴 방법이 없다.

자식이 험난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부모님의 가슴은 타들어 가기 마련이고 호강만 시켜드려도 부족한 부모님께 필자는 불안한 시간만을 오랜 기간 안겨드렸다.

진정한 효도란 부모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고 마음을 평안하게 모시는 것이 최고라는데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것은 자식의 입신양명보다 소중한 것이며 어쩌면 자식이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을 보신다는 자체만으로 안정된 심리와는 거리가 먼 좌불안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설사 자식이 원하는 궤도에 진입한다 한들 만족의 주체는 당사자의 몫일뿐 그 시간을 위해 투자했던 수많은 시간들과 가슴을 졸이며 지켜만 보시던 부모에게는 결코 보상이 되지 않는다.

중년인 내가 거울을 볼 때마다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지만 어느새 황혼의 주역이 되신 엄마를 생각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많다.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행로에 굴곡도 많았고 사연도 많았지만 기쁨의 시간도 고통의 시간도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기에 되돌아보아도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그러나 젊지도 늙지도 않은 지금 나의 위치는 어느덧 노년에 대한 설계도 시작해야 할 시기이지만 언제나 존재만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엄마가 해가 갈수록 예전 같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되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뿐이다.

평생 늙지 않으실 거라 생각했던 엄마의 나이가 팔순이 넘으시고 곱기만 하셨던 엄마의 얼굴에도 검버섯이 피었다.

막내였던 내가 어느새 중년인데 엄마의 나이를 실감하기 싫은 이유는 엄마의 존재는 항상 같은 자리에 계시리라는 어리석은 믿음 때문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대로 이어야 하고 엄마는 항상 고우셔야 하고 엄마는 항상 건강하셔야 하는 바람은 변함이 없는 이유로 엄마의 연세를 부정하고 있었던 까닭에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저려왔던 것이다.

아무리 부정해도 세월의 흐름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고맙게도 감사하게도 매우 건강하신 덕택에 나 자신이 엄마를 노인으로 인정하기 싫은 이유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엄마를 보살펴 드려야 할 시점을 진정으로 인정해야 한다.

막내가 아닌 아들로서 엄마를 모셔야 할 때이다.

건강한 엄마는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인생의 종착역을 준비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실 채비를 하시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요즘은 가볍게 하시는 말씀에도 깊은 뜻이 감춰진 사실을 느낄 수 있고 엄마와 대화를 할 때마다 예전 같지 않으신 심경의 변화를 읽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전한 100세 시대라지만 인생을 마감하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순리는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누가 먼저 언제 어떻게 가든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까닭에 주어진 오늘을 후회 없는 시간으로 겸손하게 보내는 것이 주님이 부르시는 날, 행복한 마음으로 천국을 준비하는 마음이라 믿는다.

어찌 보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통된 부모의 바람이고 자식이 출세해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세상 모든 엄마, 아빠의 공통된 희망이다.

그러나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세속이 만든 성공을 위해 가는 길이 험난하다면 자식의 과정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과연 얼마나 불안하셨을까를 헤아려 본 적이 있었냐고 반문하고 싶다.

자식을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모든 엄마, 아빠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희생을 다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신 노고는 내색도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나이에 맞게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선사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진정 자식의 안위를 위해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져드린 적은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교감이고 부모님과의 사랑 또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마음의 교류이며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아픈 마음을 함께 공유하는 영혼의 소통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 말하고 싶다.

흔히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고 맹목적이다 말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와 공유했던 시간은 유아기와 어린 시절 밖에는 없다.

다시 말해 엄마의 품에서 함께 하는 기간은 인생에서 몇 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며 초등학교에 진학을 하면 학교와 친구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아이의 관심은 부모에게서 떠나기 시작하는 것이고 사춘기에 접어들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자식들은 부모의 품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시대가 변화하면서 모든 소통은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모니터 앞에 앉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가정 안에서도 대화가 차단된 생활을 하며 자기 위주의 개인적 성향이 배양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자녀가 많은 가정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가족 간의 교류를 통한 정서 함양은 기대하기 힘들고 부모 입장에서도 교육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수행하려면 자녀를 학업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현대 엄마, 아빠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들을 학업의 현장으로 내몰지만 잠시라도 자식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교육을 위해 자식을 매몰차게 키우는 마음이 다름 아닌 현대모정이며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 생각이 잠시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 가정을 생각하는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 간다.

어버이날에는 동네 베이커리에 케이크가 일찌감치 동이 나고 가족들로 가득 찬 식당에는 빈자리가 없다.
백화점과 쇼핑몰은 효도 선물을 세일하고 어버이날을 기념해 방역 때문에 금지되었던 해외여행 상품을 서둘러 사드리는 착한 자식도 많다.
흐뭇한 어버이날 풍경이고 아름다운 모습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오늘만이라도 잠시 생각해 보자.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에게 전화는 자주 드렸는지, 휴일 놀러는 가면서 부모님 댁에 몇 번 찾아뵀는지, 퇴근길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들고 간 적은 얼마나 있는지 어버이날을 통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효도란 정해진 날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는 일은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다.

퇴근을 하고 피곤하지만 엄마를 위해 설거지 한 번이라도 해 드릴 수 있는 마음,

늦은 밤 잠 못 이루시는 아빠가 혼자 깡소주를 드실 때 과일 한 접시라도 썰어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이 어렵지 않은 진실한 사랑이자 효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어버이날 밤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엄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기는 엄마의 체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엄마입니다.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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