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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Oct 30. 2022

가을을 보내며

가을

이틀 후면 시기적으로 겨울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은 계절의 정서를 느낄 새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가을 날씨는 아닌 듯하다.

사계절의 변화가 무척이나 뚜렷했던 한국의 날씨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동남아시아와 같은 예상 못 할 기후도 겪어야 한다는 뉴스를 보면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감당해야 할 기상이변이 걱정되고 젊은 자식을 둔 부모님들의 근심은 공통적일 것이다.

채색된 단풍이 퇴색되어 떨어지면 트렌치코트가 어울리는 가을이지만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제대로 된 계절의 정서가 예전 같지 않다.

누구나 그렇듯이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오면 짙은 커피 향이 연상되고 퇴근길 식당 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증기는 행인의 발길을 잡는다.

진한 커피 맛이 좋기만 하고 친구와 함께 시는 소주가 달기만 한 계절이 가을이라면 나 혼자 느끼는 감성은 아닐 것이다.

짧지만 설익은 반가웠던 가을, 추수를 끝낸 벌판이 석양에 물드는 색조가 아름다운 가을, 풍성한 수확에 감사를 올리는 좋은 계절 가을은 이제 떠날 채비를 한다.

왠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인 연유는 기온과 함께 내려가는 기압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수확과 성숙의 계절에 숙연해지는 계절적 정서 탓이기도 하다.

결실이 성숙이라면 성숙은 당연히 겸손의 미덕을 동반하는 까닭에 이제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며 가는 가을을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는 채색된 산과 황량한 들판을 지나 쓸쓸한 고목과 메마른 숲을 노래한다.

만추와 함께 혼자 있는 시간마저 그다지 싫지 않은 이유는 자신과의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고 이 가을의 쾌적한 기온이 긴 여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봄은 시작과 준비의 계절, 여름은 열정과 젊음의 계절, 가을은 수확과 성숙의 계절이요.

이제 다가오는 겨울은 마감의 계절이라 했다.

사람이 산다는 게 고행이라 해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고 궂은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는 법이다.

변해 가는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인심은 각박해졌지만 아직 메마르지 않은 계절적 정서가 그래도 살아갈만한 세상의 여유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절의 변화를 한 해, 한 해 체험하노라면 우리네 연식은 쌓여 가지만 연식과 더불어 쌓이는 연륜은 세상을 보는 안목의 가치를 더하기에 나이가 든다는 게 싫지만은 않다.

인생의 가을은 중년이라 하지만 중간쯤 왔을 때 느끼는 감성은 여물어 가는 자신을 말하는 것이기에 이제야 비로소 인생의 맛을 논할 수 있는 때라고 위안할 수 있는 것이고 어찌 보면 청명한 가을 하늘이 좋기도 하지만 회색빛 하늘 아래 흩날리는 낙엽들도 싫지 않은 감성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익어간다는 의미가 다가올 소멸을 예견한다 하더라도 인생은 한계가 있는 진행형이므로 길고 짧은 것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삶은 소중하고 존엄하지만 삶의 가치는 창조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며 단 하루를 살아도 고귀한 삶이 있는 반면 10년을 살아도 시간만 낭비하는 사람이 있다.

살아가는 목적이 미래에만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이유는 시련의 연속이고 그들은 소소한 행복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의 가치가 오늘에 있는 사람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는 사람이며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인생이란 동행이 있어도 혼자 가는 여정이기에 어디쯤 왔는지 가늠하고 싶지만 인생의 종착역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갈수록 새겨지는 잔주름이 세월의 경과를  말하지만 감추고 싶은 흰머리는 늘어만 가고 세련되었던 내 시계가 단종된 모델임을 알았을 때 오랜 기간 시간을 알려 주던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

지나온 자취와 함께 변해 버린 정서가 아쉽기도 하지만 지나온 세월에 후회는 없다.

많은 사연과 만남이 속절없이 지나 여기까지 왔으나 지나온 과정은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내 삶을 연결해 준 매개체였으며 크든 작든 소중한 가치들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온전한 영혼과 몸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옛날이 그립다는 것은 그 시절 행복했던 추억이라기보다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고 젊을 때 느끼고 향유할 수 있었던 정서에 대한 애착이다.

돌이켜 보면 과거보다 지금이 더 윤택하고 세련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과거가 아름다운 까닭이며 지나온 자취에 후회는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크든 작든 삶의 세파를 겪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바뀌고 젊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젊을 때 외면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삶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장이란 언제나 결과를 낳고 그 결과의 가치가 자신이 사는 삶을 결정하는 것이며 진정한 성장이란 유형과 무형의 가치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며 유형과 무형이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결코 공평할 수 없는 게 인생이고 저마다 다른 가치가 모여 세상을 만들지만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순리이며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한 질서이다.

2022년 가을이 막을 내린다.

돌아보면 최근 몇 년 동안 힘겨운 시기를 잘도 겪어냈다.

코로나 펜데믹은 사회를 마비시켰고 경제는 위기 상태이며 전쟁으로 인한 물가 폭등은 세계가 감내하고 있다.

그래도 힘겨웠던 과정 속에 여기까지 온 수많은 긍정의 힘에 감사를 드린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역사는 흘렀고 삶이 경색된 적은 없었으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많고 많은 작은 힘들이 거대한 물결이 된 결과이며 힘겹지만 생활은 지속되었다.

어찌 보면 만족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 해도 소소한 기쁨과 작은 만족으로 구성된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굴곡진 우리네 여정은 분명 살아갈 가치는 풍성한 것이다.



2022년 가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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