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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Jan 14. 2022

2020. 2. 14

동거시작

9시쯤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한 일은 전세계약서를 챙겨 새로 이사할 집으로 향하는 것.     


 나는 20살에 본가를 나와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다.

 많은 공간들을 돌아다녔다.

      

 처음 생활한 곳은 대학교 기숙사였는데 공동체 생활은 나에게는 영 맞지 않았다. 통금시간 12시, 개방시간 5시. 술을 마실 때면 12시 전에 들어가느냐, 밤을 새우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또한 누군가와 같은 방을 공유한다는 건 제약이 있었다.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시간에 맞춰 소등해야 했고, 방에서 통화는 불가능했으며, 항상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어야 했다.

     

 다음 학기에는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포함하여 1.5평인 방에 몸을 누우면 관짝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막혀 잘 때 말고는 방을 들어갈 수 없었다.   

   

 보증금이 마련되었고 원룸을 구할 수 있었는데, 나는 엄청난 쫄보로 어두운 길을 못 다닌다. 번화가 쪽에 구하다 보니 상가건물에 들어갔다. 겨울이 되자 벽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곰팡이는 내 통제를 벗어나 한쪽 모서리를 지배했다. 집주인에게 말했지만 일시적인 방편만 알려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고시원.      

 잠깐 본가도 들어갔다가, 다시 원룸.     

 

 그 원룸에서 5년을 살았다. 5평이라 나름 크기도 괜찮았고 곰팡이도 안 피었는데 그마저도 오래 살다 보니 불편한 점들이 생겼다. 공간 분리가 되지 않다 보니 냄새는 침구에 베었고, 여름에는 어디로 들어오는지 모를 모기들과 전쟁을 하느라 잠을 설쳤다. 또한 방음이 취약하여 새벽이면 복도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8년을 떠돌다 보니 나에게는 오롯이 쉴 수 있는 내방이 간절했다.      

 그 소원은 8살 차이 나는 동생이 서울로 대학을 합격하게 되며 이뤄졌다.   

            

 전셋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편의점이 많았다. 가판대에는 초콜릿들이 포장되어있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발렌타인 데이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집은 이사를 한참 나가고 있었다. 내방이 될 가장 큰 방은 비워져있었다. 드디어 관짝같지 않은, 부엌과 분리될 수 있는, 거실이 있는 집에 '내 방'이 생기는 구나. 잠시 감상에 젖어있다보니 내가 너무 감독관처럼 서있나 싶어 다시 원룸집으로 향했다. 동생은 본가에서 부모님과 올라왔다. 새로운 식구와 함께.      


 웰시코기. 추정나이 3살. 여아. 현재 이름 없음.      


 나의 소원이 내방을 갖는 것이었다면 동생의 소원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동생은 동물동반이 되는 전셋집을 게약하자마자 유기견 보호소로 향했다. 전해들은바로는, 귀가 너무 아팠으며 악취가 너무 심해서 서있기 어지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을 보았다고 한다. 그 중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는데 다들 짖고있는 와중에 구석에 웅크려 가만히 있었다고, 눈만 꿈뻑꿈뻑하며 본인을 쳐다보더라고. 동생은 그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3번이나 보호소를 찾아 면담을 끝으로 데리고 왔다.      


 청소되지 않는 집에 원룸에서 가져온 내 짐과 본가에서 가져온 동생 짐과 배송주문한 가구들이 들이닥치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강아지는 불안한지 한쪽에서 떨고있었다. 저 친구가 반가웠지만 다른 신경쓸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내가 신경쓰지 못한 또 한명이 있었다.     

 

 내 동생. 2월 14일은 동생의 생일이기도 했다.      

 동생의 표정이 뚱한걸 나는 집을 정리하면서부터 느꼈었다. 뭔가 불만스러워보이는 표정으로 계속 있었으니까. 왜 그럴까. 생각하려는 찰나 세탁기가 들어오고, 다시 한숨 돌렸다 싶으면 침대가 들어왔으니, 동생에게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동생이 터졌다. 꼭 내 생일에 이사를 해야했냐고. 생일은 내년에도 오는걸? 왜 굳이 챙기려 하느냐. 동생은 더욱 서러워했고 급기야 화를 냈다.   

   

 저녁먹으며 아빠가 '이제 너희끼리 살 건데 싸우지말고 잘 살아.' 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는데...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8년이 떨어져 지내 다시 만난 자매는 서로를 너무 몰랐다.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희'안에는 이제 강아지도 껴있다는 걸 나는 아빠말을 들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내방이 생겨 꽃밭이었던 나에게 다시 가시밭길이  찾아오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우리의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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