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 40일의 성찰
원칙주의
주변에서 원칙을 매우 중시 여기는 사람을 가끔 본다.
정도의 차이라 생각하고, 누구든 원칙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내가 경험한 원칙주의 선생님이 계신다.
언제나 책상 위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다. 사무 용품 간의 간격 또한 일정하다.
성격 자체가 깔끔하고, 꼼꼼하다.
이 선생님께서 원칙을 매우 중시하는 것을 하나의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날은 학생들이 주도하여 자치 동아리를 구성하여 담당자인 위의 선생님께 제출하는 날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정확하게 16시까지 제출한 동아리 계획서만 인정하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16시가 다 되어 가면서 주변 선생님들의 눈빛이 초조해진다. 자리를 뜨는 선생님도 계신다.
그렇다. 주변 선생님들은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잘 알고 계신다. 보기 민망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6시 2분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교무실로 종이 한 장을 펄럭이며 들어온다.
"쌤! 저희 어렵게 동아리 구성했어요." , "완전 유익한 동아리예요."
학생들의 눈빛과 말에는 뿌듯함과 주체 못 한 기쁨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그때 또한 자리를 뜨는 선생님이 계셨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2분 늦었다. 동아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어렵고 기존의 동아리 발표할 테니 거기에 나누어 들어가라"
예상된 답변이다. 학생들 반응은 갈린다. 어이없는 표정, 낙담한 표정..
예전에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너무 엄하게 학생들 대하시는 거 아니냐고.
선생님의 답변은 너무 차가웠지만 이해는 갔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더욱 중요한 약속이나 일을 몸에 밴 습관 때문에 그르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원칙주의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과 기준이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설정한 원칙을 지킬 수 있는가?
그 원칙의 기준이 보편타당한 것인가?
위의 사례는 학생들에게 어떤 것이 더욱 교육적인지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 수긍이 간다.
위의 선생님은 아마도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저 자세를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어느 순간에나 누구에게나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
변화무쌍한 환경과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가 모든 원칙을 지키며 살 수 있는가?
어쩌면 보이는 내 모습을 위해, 타인이 내 기준에 맞추니 내가 편해서 원칙을 고수하지는 않았는지
늘 반성해야 함을 느낀다.
기브앤테이크
언제나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한다. 내가 주었으니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자녀에 대한 사랑. 아낌없이,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는 사랑.
몇 년 전부터 기브앤테이크를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살아왔다.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편하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고, 주는 것이 참 기쁨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선물의 진짜 의미를 알고 마음을 다했을 때 그 감동. 전에는 받는 감동만 알았다면 주는 감동,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주는 그 감동. 얼마나 큰지 경험하니 기브앤테이크와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다.
앞으로의 나의 삶에 나눔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