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살아가다4
소설을 참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슬프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책'이라는 추천인의 최애 단편 소설집이라는데. 이것으로 책을 살펴볼 필요 없이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로 들어갔다.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작가의 책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산책 하듯 가볍게 빠졌다가 산책 후 상쾌함을 얻고자 기대했다. 그런데 한 편씩 이야기에 빠졌다가 나오면서 가볍지만은 않으나 무거울 것도 없고, 힘들지만 살만하고, 어둡지만 밝아질 것이고.. 이러한 생각들이 계속 들었다.
추천인의 '슬프지만 따뜻함'이 참 적절한 표현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트랙처럼 둥글게 산책하는 날들. 아무 변화도 없지만 그사이 시간은 흐르고 종종 기분도 마음도 나아지는 밝은 밤들"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나의 하루가 산책이요, 나의 길은 트랙이다. 나는 이 트랙을 매일 걸어 나간다. 어려울 것이 없다. 그냥 산책을 하니 나의 기분도 마음도 나아진다.
이 책은 트랙을 돌며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산책이었으니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1. 사라지는 것들
어머니의 부주의로 어린 손녀를 잃었다.
아들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지 않을까?
엄마는 죄책감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며느리인 아내는 어머님을 보면서 무슨 감정이었을까?당사자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것 같다.
"당신은 화냈어야 했어, 탓했어야 했어. 부주의했던 당신 엄마를. 알량한 석사학위 따보겠다고 애들 팽개치고 밖으로 나돌며 어머님께 애를 맡겼던 나에게 말을 했어야 했다고. 차라리 그게 나아"
감정을 가둬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언제는 크게 울어야 하고 언제는 소리 질러야 하며 언제는 화를 내야 한다. 가끔은 상대에게 날리는 주먹이 비록 멍은 들게 할지라도 쌓이는 벽을 허물리라.
2. 선릉 산책
장애를 가진 사람과 어떻게 지내고 살아갈 것인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렵고 막상 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장애인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랑. 너를 위해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거. 난 그것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녹초가 된 주인공은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장애인의 행동을 따라한다. 혼자서 오른쪽 주먹을 가볍게 쥐고 오른쪽 광대뼈를 툭, 때려봤다. 그리고는 아, 소리가 날 정도로, 정말 아팠다고 했다. 이걸로 된 거다. 정말 잘 지낸 거다. 훌륭하고 멋진 하루를 보낸 거다.
3. 두 번째 삶
언제나 살아가며 행위에 집중하고 결과로 판단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생각을 하는데 에너지가 소모되고 과정에 집중하는 건 뭔가 생산적이지 않고 지루하다. 그래서일까? 삶의 많은 부분을 단편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요소가 작용하고 서로 얽혀서 행동 하나가 나오는데.. 악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어디든 있다. 악함의 강도만 다를 뿐이다. 나는 그가 왜 악한지, 왜 악해졌는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존재가 바로 악마야". 모든 사람들을 속인 준일이의 언행을 나라면 알았을까? 나라는 사람아 핵심을 보며 살자. 분별하며 살자.
4. 이코
세상은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나를 알아주는 딱 한 사람. 나를 지지해 주는 딱 한 사람. 내 편이 되어 주는 딱 한 사람. 살아가는데 그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가족만이 그 딱 한 사람이라면 조금은 슬플 것 같다. 이렇게 긴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까?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잘 살아야겠다.
5. 미스터 심플
내 아픔과 너의 아픔을 비교할 수 있나? 누가 더 아픈가 재어봐야 하나? 내 100에서 99의 아픔을 빼고 남은 1을 99의 아픔을 겪는 너에게 주고, 너의 남은 1을 내가 받는다. 둘 다 98이 되지 않는다. 그 남은 1들이 너무 큰 아픔들을 지워버린다. 그렇게 세상은 수학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들이 있다. 그게 삶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