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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Jul 04. 2023

공감의 팽창 (하)

진시황이 전국 7웅을 제패하고 스스로 첫 번째 통일 왕조의 황제가 되었지만 그가 죽고 3년 후 진제국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귀족 출신의 항우와 백수건달 출신의 유방이 5년 동안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이를 초한전쟁이라 한다. 시골 건달 유방은 명문 귀족 항우를 이기고 역사상 최초로 평민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사상 초유의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항우는 5년 동안 유방과의 대결에서 백전백승하였고 천운은 항우에게 기우는 듯했다. 자웅을 가리는 긴 전쟁은 기원전 202년 해하전투에서 두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 전투에서 그 유명한 사면초가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항우였지만 이상하게도 전세는 그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고민 끝에 항우는 유방에게 휴전을 제안한다. 홍구를 중심으로 서쪽은 한나라가 동쪽은 초나라가 차지한다는 제안이었다. 유방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관중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량과 진평은 그런 유방을 극구 만류한다. “지금 항우를 보내주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근심거리를 남기는 것입니다. 지금 항우를 공격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방은 항우를 다시 추격한다. 유방을 중심으로 한신, 팽월, 경포가 항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진격하였고 결국 항우는 해하 지역에서 한나라 군사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그리고 한신의 계략에 말려 그의 군대는 대패하고 만다. 항우는 궁지에 몰린 쥐 신세가 되었지만 만인지적답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한나라 최고 지략가 장량이 유방에게 한 가지 술책을 제안한다. “지금 초나라 군사들은 오랜 싸움에 지쳐 있고 멀리 있는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구슬픈 초나라 노래를 밤마다 들려주면 초나라 군사들이 듣고 고향 생각에 젖어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입니다.” 유방은 그의 계책을 받아들였고 그날 밤부터 날마다 초나라 노랫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진지를 돌아보던 항우는 크게 놀라 말했다. “한나라 병사들이 이미 초나라 땅을 모두 차지한 것인 것인가? 어찌하여 한나라 군영에 초나라 사람들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오랜 싸움에 지치고 포위까지 당한 초나라 군사들은 구슬픈 초나라 노래를 듣자 싸울 의욕을 잃고 하나둘씩 도망을 쳤다. 이때 유래된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사방이 초나라 노래라는 뜻으로 아무에게도 도움이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을 이르는 말을 의미한다. 항우는 유방에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지만 이 전투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를 당하게 되고 그도 역시 스스로 최후를 맞게 된다.


초나라의 구슬픈 노래에 무너진 항우. 그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전세는 점점 불리해져 갔고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운명을 바꾼 것은 리더십의 차이였어. 특히 소통 방법이 서로 달랐다. 그것은 하여(何如)와 여하(如何)의 차이였다. 순서만 다를 뿐인데 그 의미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何如는 ‘어떠냐?’란 뜻이고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하고, 따르는 사람에게 ‘내 생각이 어떠냐?’하고 으스대는 소통 방법이다. 如何는 ‘어떻게 할까, 어찌할까?’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대들 생각은 어떠한가라는 상대에게 의견을 구하는 소통 방법이다. 항우는 타인의 의견은 거부하고 자신의 용맹만을 믿었으며 전투에서 승리한 후 참모들에게 동의만을 구했어. 유방은 모든 전투에 앞서 참모들에게 의견을 먼저 물었고 많은 사람들의 책략을 받아들였지. 불통의 아이콘이었던 항우는 부하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아무리 계책을 많이 내놓아도 써주지를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신은 처음에는 항우의 부하였으나 항우에게 중용받지 못하자 유방에게 귀순한 뒤 재능을 인정받아 한나라의 대장군이 되었어. 항우는 자신의 부하였던 한신에게 해하전투에서 복구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게 되지. 이뿐만 아니라 해하 전투에서 항우와 싸웠던 팽월, 경포는 모두 예전에는 자신의 부하들이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는 불통의 리더십과 자신의 능력만을 맹신한 까닭에 전투에서는 항상 승리했지만 끝내 전쟁에서는 패하고 천하를 잃게 되었지.


군책군력(群策群力).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힘을 뜻한다. 집단지성이라 할 수 있지. 통일 후 유방은 이렇게 말했다고 해. “무릇 계책을 세워 천리 밖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무하고 군량을 공급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움을 항상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유방은 항상 부하들의 의견을 경청하였고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했어. 경청이 최고의 전략이었던 유방의 진가는 8년 후가 돼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지. 패현 출신의 백수건달이었던 유방은 소통의 리더십으로 인해 천하제일의 항우를 꺾고, 한나라의 왕이 되어 한고조로 역사에 기억된다. 


경청도 공감능력을 높여준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은 최고의 지혜이지.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 그리고, 잘 들으면 공감 능력이 올라간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경청하는 사람을 좋아해. 우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 경청은 단순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더욱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이 된다.


한자 암(癌)은 입 구 세 개로 이루어져 있어. 입이 세 개나 필요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많은데 그걸 산에 가두고 막어버려서 결국 스트레스가 생겨 암이 생긴다는 뜻이야. 직장인들에게 “어떤 동료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경청을 잘하는 동료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경청은 배려와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을 존중해 주며 이해해 주는 것이다. 서로에게 귀 기울인다는 것은 모두를 살리는 창조적 공존의 길이다. 


요순시대는 요임금과 순임금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던 태평한 시대를 말한다. 하지만 요순시대에는 황하가 자주 범람하여 발생하는 홍수가 가장 큰 문제였다. 요임금은 치수 사업의 전문가로 곤을 발탁한다. 곤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제방을 만들었고 황하의 범람을 막았다. 하지만 순임금 때 더 큰 홍수가 발생되면서 9년간의 치수 사업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순임금을 곤을 처형하였고, 곤의 아들 우에게 다시 치수 사업을 맡겼다. 우의 아버지, 곤의 제방법은 도법(㧅法)이었다. 물을 막기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물길을 트고 큰 물을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우는 이런 소법(疏法)을 이용하여 황하의 물길을 파서 강물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흘려보냈다. 십수 년간 천하를 돌아다니며 지형을 파악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범람하는 강물을 바다로 소통시키고 수해 방지에 성공했다. “치수에 성공했으니 치세 역시 성공할 것이다.” 우는 치수의 공으로 인해 순으로부터 천하를 물려받는다. 우임금은 순으로부터 나라를 받아 하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진정한 리더는 우의 소법처럼 소통을 통해 구성원을 이끌어야 해. 구성원의 감정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소통해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지. 이런 소통의 대화법을 하나 소개해 보려 한다.


우리가 판단, 비난, 폭력이 들어가지 않는 말로 대화할 수 있다면 갈등의 세상에서 평화가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 Marshall Rosenberg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바를 토대로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라는 책을 펴냈어. NVC는 일상에서 쓰는 평화와 공감의 언어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대화 방법이지. 내가 하는 말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로젠버그 박사는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통해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우리는 왜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부사람들은 어떻게 연민의 마음을 지킬 수 있었는가? 로젠버그는 폭력과 연민을 좌우하는 요소는 언어(대화)에 있다고 말한다. 연민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우리가 쓰는 언어이다. 언어가 관계를 결정한다는 것이지. 그가 주창한 비폭력 대화는 연민의 대화법이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 Erich Pinchas Fromm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집필했어. 이 기술은 사랑을 획득하는 기술이 아닌 사랑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사랑이란 완성이 없는 끝없는 훈련의 과정이지. 상대방의 욕구에 대해 주의 깊은 경청과 집중이 필요하고 상대의 욕구를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사랑의 열매는 씨를 뿌리자마자 바로 열리지 않는다.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하지.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는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는 모델이다. 프롬에 따르면 사랑의 관계란 끊임없는 상호이해와 대화의 과정이다. 대화의 기술은 곧 사랑의 기술이고, 사랑의 기술은 곧 대화의 기술인 것이다. 


상처를 주는 폭력적 대화는 우리 삶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로젠버그 박사는 연민을 파괴하는 폭력적 대화는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법이라고 말했어. 폭력적 대화의 전형적인 형태는 상대를 미리 판단하고 비교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강요하는 것이야. 자신의 가치만이 옳고 자신만이 주체이며 상대는 그저 대상이나 객체에 불과하다는 오만한 편견이 깔려 있지. 사랑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나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가 진리일 수 있다는 상호존중이 있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는 연민의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책의 내용 중에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비교이다. 비교는 그 대상을 가장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가장 폭력적인 방법이다. 책임회피도 폭력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책임회피는 사유의 무능력임을 피력한다. 악의 평범성은 무사유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 Georges bernanos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원인은 인간의 잔혹성 때문이 아니다. 그 잔혹함의 분노, 그 분노의 보복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온순함과 책임감의 결여, 그리고 모든 부당한 명령에 대한 비굴한 순종 때문이다.”


NVC 대화모델은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 관찰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관찰에 평가를 섞으면 듣는 사람은 그것을 비판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하는 말에 저항감을 느끼기 쉽다. NVC의 첫 번째 요소는 평가와 관찰을 분리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은 이를 에포케 Epochḗ라고 말했어. 에포케는 대상에 대하여 판단을 중지하라는 뜻이야. 평화로운 관계를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평가에서 관찰로 나아가는 것이지. 후설은 과거의 시간과 죽은 공간에 머물러 판단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here and now)의 경험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어. 내가 경험했던 과거의 시간과 죽은 공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쉽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Here and now의 경험으로 돌아오는 것이 곧 에포케이다. 최대한 현재 존재하는 공간에서 내 앞의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것이지. 후설은 에포케를 괄호 치기 bracketing라는 별칭으로 설명했어. 지금 여기에 있는 경험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공간에서 비롯된 경험들을 잠시라도 묶어 두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우리가 어떻게 괄호 치기를 하면서 here and now의 대화를 진행할 수 있을까? 그 해법은 비폭력 대화에 있다.

 

NVC의 두 번째 요소는 느낌이다. 어떤 행동을 보았을 때 어떻게 느끼는가를 말하지. 느낌을 감추거나 잘못된 표현으로 얘기하는 것은 우리의 느낌을 이해받기보다는 오히려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솔직한 느낌을 표현하면 관계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느낌과 생각을 구별하고 자신의 느낌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늘리면 우리는 좀 더 쉽게 서로 연결될 수 있다. 


NVC의 세 번째 요소는 욕구이다. 자신의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나의 욕구를 이해함으로써 나의 느낌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돌려서 표현한 것이지. 느낌의 원인을 표현하는 것과 그 느낌을 통해서 내 안의 욕망을 찾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가 나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감정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그를 비난하지.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폭력적인 언사일 뿐이야. 나의 감정은 타인의 행동이 아니라 나의 욕망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나의 욕망이 모든 감정의 원천이다.


비폭력 대화의 핵심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분노, 자신의 욕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야.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책임을 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우리 느낌의 자극이 될 수는 있어도 원인은 아니다. 우리의 느낌을 욕구와 좀 더 직접적으로 연결할수록 상대방은 더 쉽게 우리의 욕구에 연민으로 반응하게 된다.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비폭력 대화의 목적은 솔직함과 공감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결국에는 모든 사람의 욕구가 충족되도록 하는 것이다.


NVC의 네 번째 요소는 부탁이다. 너와 나의 관계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지. 부탁할 때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보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인 행동 언어로 부탁한다. 강요는 부탁에 응하지 않는 상대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강요를 받으면 사람들은 두 가지 대처 반응을 생각한다. 복종 아니면 반항이다. 강요는 타자를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존재로 만든다. 진심으로 부탁하는 것은 상대가 부탁에 응하지 않았을 때 비난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말에 공감해 주는 것이야. 진정한 부탁은 그에게 죄책감을 준다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지.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상대의 욕구를 존중하는 응답으로 이어진다. 부탁할 때는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모호한 표현은 내면에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위의 네 가지 요소를 갖추고, 연민과 공감의 바탕 위에서 자기감정을 타인에게 책임전가 하지 않으며,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고, 상대방의 말에 담긴 진정한 의도를 알아차리고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폭력의 정의는 우리 마음 안에서 상대방을 수단화하는 폭력을 가라앉히고 자연스럽게 인간의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말한다. 공감은 마음을 비우고 우리의 존재의 전체를 듣는 것이야. 지속적으로 공감하면 상대방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닿을 수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 비난, 폭력이 들어가지 않는 말로 대화할 수 있다면 갈등의 세상에서 평화가 피어날 것이다.

 

겸손도 공감력을 높여준다. 겸손은 타인을 존중하고 사회와 화목하게 어우러지는 데 도움을 주고 인간관계의 토대가 된다. 겸손은 우리가 타인의 의견과 경험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갖추게 하며, 이로 인해 대인관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한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어. 겸손이 주는 공감능력이라는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동료들과 공유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어. 이러한 사회적 기술은 한 사람의 실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라는 명언은 자아성찰의 핵심이다. 겸손은 이러한 명언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데 필수적인 덕목이다. 먼저, '너 자신을 알라'의 진리는 겸손한 자세를 통해 발견된다. 자신의 능력, 지식, 감정, 약점을 깊이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겸손한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겸손은 '너 자신을 알라'의 원칙을 실천하며 성장에 도움을 주는 기본 태도이다.

 

소설 읽기도 공감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야. 훌륭한 공감능력을 지녔다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상상할 수 있다는 의미와 통하지. 상대방의 마음을 상상으로 잘 그려내는 사람일수록 공감력이 높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소설을 읽으며 사용하는 뇌부위와 인간관계를 사용할 때 사용하는 뇌 부위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해. 사회적 지능 테스트에서도 소설을 읽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사회적 지능 수치가 더 높음이 확인되었다. 소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주인공과 그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심리를 해석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야. 허구적인 서사 텍스트가 작중 인물들과의 '공감'을 통해서 독자의 사회지능을 향상한다는 것이지.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작중인물의 행동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이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능력 정도를 평가한다는 의미의 심리학 용어이다. 서사텍스트의 작중인물의 마음을 이용하는데 마음 이론을 사용한다. 독자는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행동이나 생각을 묘사하는 문장을 읽은 때 이를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그 행동과 생각을 이해한다. 이는 독자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독서를 통해 일종의 대리 체험을 한다는 뜻이지. 이런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공감의 체험과 증가는 독자의 성격이나 생각에 변화를 일으킨다. 소설 읽기라는 허구적 체험이 독자의 사고와 신체 신경의 활성화를 유발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독자는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공감력이 길러지게 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느린 인지 과정을 통해 나온다. 책은 느린 생각에 최적화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창조는 연결이라 말했어. 새롭게 연결하는 과정은 이런 느린 과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책을 정독하려면 느리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 영상을 볼 때 우리의 뇌는 주로 시각 피질만을 사용한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뇌 전체가 활성화된다. 뇌 전체가 상호 작용하면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창조된다. ‘책 읽는 뇌’의 저자 매리언 울프는 깊이 읽기가 논리적 추론 비판적 분석과 통찰이 증대되는 고도의 사고 과정이라 규정했어.


소설 이외에 인간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독서도 공감능력을 향상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어. 심리학, 뇌과학, 생물학, 철학, 인문학 등이 많은 도움이 된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타인의 마음, 사회 구조와 집단 심리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인간에 대한 공부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착각과 편견, 오류에 빠졌었는지를 성찰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어. 인간을 알면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 인간에 대해 공부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한다.


공감이라는 나무는 다양성이 많은 숲에서 잘 자라나는 법이다. 사회 갈등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획일화된 가치의 지양 때문이야. 한 가지 가치만 추구하는 사람들만 살다 보면 다른 가치를 지닌 타자를 공감하기 어렵다. 현대 사회가 불안 사회가 된 이유는 한 두 가지 가치만 인정받는 획일화 때문이야. 다양성 추구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해야만 하는 인간의 역량이다. 인류는 학습과 노력이 필요한 공감을 확장하며 역사를 이루어 왔다. 인류가 집단의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힘 가치의 다양화이다. 불과 2~3백 년 전에는 여성과 아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백인 남성만이 인간이었다. 공감의 누적된 학습이 (과거보다 좀 더 평등한)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시스템과 제도의 힘만이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걱정을 막을 수 있다.


연대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돕고 협력하여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상호 의존과 정보 공유, 협력적인 문화를 갖춘 하나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연대란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공유하고, 위기와 고통을 함께하고,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인간이 만드는 모든 집단의 기반이 되며, 현대사회에서 각 개인이 지향하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이를 통해 집단이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이익을 창출해냄으로써,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선순환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한 곳이야.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지. 다양한 연령, 성별, 직업 및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할 때 비로소 연대의 가치가 펼쳐진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경쟁을 이겨 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임무이자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연대는 이제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가치 중 하나이다. 연대는 힘의 결합과 창조적인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연대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연대는 사회적 차별, 불평등, 인종 갈등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어.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상호 간의 이해를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연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공동체나 사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작은 연대의 실천을 통해 큰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연대를 실천하고 협력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책임이 있다.

 

구성원들 간의 상호적인 참여, 의견 교환 및 행동을 통해 연대를 구축할 수 있어.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위해 단결할 수 있고, 시민들은 환경 보호를 위해 시위를 벌일 수 있다. 작은 실천으로는 친구나 가족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곁에서 함께 해주거나, 지역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 또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연대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역사는 연대를 통해 발전했다. 유럽은 그리스 시대 이후 2,500년 동안 전쟁에 시달렸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서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유럽을 하나의 질서로 통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유럽 국가들은 합의를 통해 유럽연합 European Union을 만들어 냈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부터 시작해 국가 주권(통화주권, 국경통제권 등)을 하나씩 하나씩, 지금은 상당 부분을 유럽연합에 넘겨주었다. 유럽연합은 유럽인들의 수천 년에 걸친 전쟁에 대한 악몽을 토대로 하여 유럽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해결해 보려는 용기를 냈고 합의를 통해서 그 길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유럽연합을 넘어 세계정부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기후위기나 핵폭탄으로 인한 지구 생태계의 절멸 이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인류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 유럽연합이나 세계 정부는 인간의 부족본능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고 연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약한 호모 사피엔스는 연대를 통해 진화의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같이 몸부림쳤던 것이 춤으로 승화되었고 이는 인류 최초의 연대 표현이라 생각한다. 춤은 엔도르핀을 생성하지. 연대는 사랑이다. 도파민보다는 엔도르핀이 넘치는 세상, 모두가 같이 즐겁게 춤추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우주의 팽창으로 인해 공간과 시간은 확장되었고 그 위로 인류의 무대가 세워졌다. 그 무대 위에 인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이야기가 더 이어질지 끊어질지는 또 다른 팽창이 필요하다. 우리 공감의 팽창이 필요하다. 가족을 넘어, 사회를 넘어, 국가를 넘는 팽창이 필요하다. 공감의 팽창만이 인류의 무대를 넓히고 우리의 이야기를 지속시킬 수 있다.


칼세이건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면 우리의 적일까? 친구일까?” 그는 친구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얘기한다. 지구를 방문할 만큼 뛰어난 과학문명을 가졌음에도 멸망하지 않았다면 공감능력도 지구인보다 훨씬 뛰어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도의 문명은 공감과 협력이라는 기반 위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외계인이 방문한다면 그들은 자기 가축화 이론에 의거해 지구인보다 다정하고 친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귀여울 가능성도 높다)


사랑하는 딸, 외계인이 오기 전까지 우리 공감의 크기를 좀 더 넓혀 보자. 전문 용어로 ‘보편적 인류애’라고 한다. 우리가 좀 더 친절하고 다정할수록 우리의 이야기는 우주로 퍼져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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