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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Jul 04. 2023

공감의 팽창 (상)

나와 이 세상과의 경계는 나의 피부를 기준으로 구별된다. 피부의 안쪽은 자아가 되고 피부의 바깥쪽은 타자가 된다. 피부를 기준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그 관계를 통해 자아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다가 나의 경계가 확정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때이다. 이때에는 과도한 호르몬의 분비로 인해 나와 타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혹은 그녀가 나의 일부가 되지. 제우스의 번개로 인해 잃어버린 나의 반쪽과 일체가 되는 거룩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런 일체의 경험이 결혼으로 연결되면 이런 신비한 경험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어. 그건 바로 자식이 탄생할 때이다. 자식이 태어나면 나의 경계가 보다 더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은 나의 영혼을 행복으로 충만하게 해 주지만 모순적이게도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의 확장된 피부를 보존하기 위해 타 존재의 피부를 갈라 에너지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지. 경계의 존재가 행복이자 비극이 되는 순간이다. 가족과의 즐거운 저녁을 위해 희생된 많은 닭들의 피부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어. 인간 사회에서는 내 경계의 확장을 위해 타인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를 폭력이라 부르고 역사는 이 폭력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알려주고 있다. 내 경계의 범위에 따라 타인은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한다. 


나의 경계가 나에게만 한정된 사람을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나의 경계가 가족에만 국한되면 가족주의자라고 하고 영토의 경계까지 미치면 국가주의자가 된다. 내 경계의 안쪽은 공감을 통해 풍요로워지고 확장된다. 공감이 나의 경계를 팽창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힘이 경계를 기준으로 중력처럼 안쪽으로 향하면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은 적이 된다.


부족 본능은 우리와 다른 사람을 가르려는 본능이야. 내가 살아남으려면 내가 속한 집단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진화 과정을 통해 강력한 부족 본능을 얻게 되었지. 인간은 20만 년 동안 ‘던바의 수’를 넘지 않는 규모의 혈연공동체 안에서 살면서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본능을 발전시켰어. 부족 본능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지. 부족 본능은 역사를 거듭하면서 현재는 국가 체제로 정착되었어. 한 종의 호모사피엔스가 약 200여 개의 국가로 쪼개어진 것이지. 국가는 국토, 국법, 국어, 국적, 국사 등으로 경계를 형성하여 경계 밖의 그들과 구별한다. 


예로부터 전염병은 집단주의라는 방어 기제를 강화시켰어. 전염병이 돌면 노인, 장애인, 외국인, 심지어 비만인까지 혐오 대상이 되었지. 평균적으로 다르게 생긴 것들은 오염원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야. 개인이 집단이 기대하는 대로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것을 동조현상이라고 해. 동조심리는 나의 생존에 유리했어. 동조가 불안과 결합되면 혐오가 된다. 펜더믹이 발생되면 혐오는 방어기제로서 작동했어. 실제로 코로나 발생 후 각종 혐오와 집단주의가 부각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혐오에는 역겹고 구역질 날 정도로 미워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같은 인간으로 보기 어려운 비도덕적, 비위생적 존재에게 느끼는 역겨움의 감정이다. 전쟁, 팬데믹 등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면 인간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집단에 의지한다. 개인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집단을 따르려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지. 집단이 중요해지면 집단 정체성이 강화되고 집단 우월성이 추구된다. 그리고 반대급부적으로 타 집단에 대한 혐오가 증가한다. 내 집단에 대한 애착이 혐오라는 오류를 낳게 되지. 외집단을 혐오하는 이유는 내집단의 우월성과 그 안에 속한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야. 혐오는 공감의 뒷면인 셈이다.

 

팬데믹에 대한 인류의 주된 전략은 ‘회피’였어. 원시 시대 우리 조상들은 썩은 냄새, 상한 음식 등에 대한 위험을 혐오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벗어났다. 부족 구성원들은 전염병이 발생하면 모두 회피 전략에 동참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어. 이때 집단의 규칙을 중시하고 그 규칙을 따를 않는 구성원을 처벌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팬데믹은 부족 본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해왔어. 팬데믹은 인류가 농경생활과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잦아졌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는 시기에는 약 10~50명 정도의 무리 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녔어. 어쩌다가 바이러스에 걸리면 그 무리만 전부 사망하면 바이러스도 같이 소멸되었지. 하지만 농경이 시작되고 수백~수천 명의 사람들이 밀집생활을 하면서 마을이나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밀집생활을 하게 되면서 바이러스가 숙주를 이동하면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팬데믹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지. 농경생활이 시작되었지만 대체로 자기 기후에 알맞은 작물 한 두 가지만 경작하고 나머지는 교역을 통해 얻게 된다. 그로 인해 잦은 교류로 인해 전염병이 확산되었지.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팬데믹으로는 로마 시대 안토니우스 역병, 14세기 유렵의 흑사병, 19세기 콜레라가 있다. 인구증가, 환경파괴, 세계화의 증가가 그 당시 위생 기술의 한계를 넘으면 팬데믹이 발생되었지. 콜레라는 과학 기술을 통해 최초로 팬데믹을 이겨낸 경우야. 존 스노우 John snow 박사가 콜레라가 물을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대대적인 상하수도 정화작업을 통해 전염병을 억제하였다. 인류는 상하수도를 통한 위생 개선, 의료 기술의 발전 등을 통해 위생의 임계점을 매우 높이 올려놓았어. 하지만 그 임계점도 무너지고 있음을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위생 기술의 임계점보다는 지구 자체의 임계점일 수도 있다는 견해가 많이 나오고 있어. 끊임없이 더 큰 도시를 원하고 지속되는 환경파괴, 고도화된 국제화는 또 다른 팬데믹을 예고하고 있다. 건강한 지구 안에서 건강한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머리도 좋고 강력한 부족을 형성한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은 대단하여 엄청난 탄소와 플라스틱과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핵무기도 만들었어. 문제는 이 모든 문제가 세계적이고 지구적이라는 것이야. 문제는 세계적인데 우리가 사는 조직 단위는 개별 국가이다. 호모사피엔스는 기후 변화, 핵무기를 만들 정도로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만 부족 본능 때문에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되려면 인간의 마음도 세계적이 되어야 한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이유는 이 부족 본능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부부는 자신들의 공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통해 사피엔스가 성공한 이유는 협력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친화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친화력 덕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누군가와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지. 네안데르탈인이 10여 명 정도의 집단을 이루는 것이 한계인데 비해서 사피엔스는 협력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몇만, 몇십만 명의 집단을 이루는 것이 가능해졌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보면 이렇게 대규모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여러 기술 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개와 고양이는 야생동물이 가축화되는 과정에서 이빨이 작아지고 꼬리가 짧아지는 등의 행동이나 외모상의 변화가 일어났어. 저자는 인간도 사회화되면서 야생적인 공격성이 줄어들고 친화력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자기 가축화’라고 한다. 사피엔스는 자기 가축화에 성공해서 다정함이 진화되었고 지금 같은 인간종이 되었다는 것이야.

 

육상 척추동물 중 황제펭귄만이 남극에서 유일하게 서식할 수 있다. 황제펭귄은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서로 포옹하며 이겨낸다. 황제펭귄은 서로 협력을 통해 따뜻함을 얻는다. 산호초에 사는 작은 물고기 청소놀래기는 포식 물고기의 이빨을 청소하며 살아간다. 청소놀래기는 포식자 이빨에 찌꺼기를 먹고, 포식자들은 이빨을 깨끗하고 유지할 수 있지. 청소놀래기의 다정함 덕에 새로운 협력이 가능해진 것이야. 이처럼 다정함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 생겨나고 생물종의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자연에서 수시로 발견할 수 있어. 약 15,000년 전 다정한 늑대들은 인간의 마을에서 먹이를 구했다. 자연선택은 다정한 늑대를 선호했다. 늑대는 여러 세대를 거쳐 사람과 더 잘 협력하고 소통하는 동물로 진화했어. 다정한 늑대들은 자기 가축화를 거쳐 지구상 가장 성공한 종이 되었지. 현재 지구상의 야생늑대는 30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개는 5억 마리나 된다. 개의 다정함이 진화상 얼마나 큰 강점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통의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낯선 사람에게 친절은 베푸는 능력은 사람에게만 있다. 다정함으로 인해 인류는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했어. 다른 인간 종(네안데트탈인)은 아마 침팬지처럼 이방인을 경계하는 성향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집단과 자주 교류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한 개인이 평생 만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개체의 수는 던바의 수를 넘지 못했을 것이야. 이런 환경에서는 혁신이 이루어질 수 없었어. 집단으로서 공통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그 구성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다면 경우가 달라진다. 언어, 종교, 문화 등이 같은 집단끼리는 교류를 통해 아이디어와 혁신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지. 많은 사람이 대규모로 서로 연결되면서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고 그러므로 인해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인간종에게는 불가능했던 협력과 성공이 이루어졌어. 인류는 점점 착해지는 늑대처럼 자기 가축화 과정을 통해 다정한 존재로 진화했고 협력적 의사소통 덕분에 찬란한 문명을 이룬 것이다. 인간의 다정함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마음이론이란 타인에게도 마음이 있음을 알고 그 마음에 대한 가설을 세울 줄 아는 능력을 말해. 마음이론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데 사람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외부집단을 볼 때 이 마음이론 네트워크가 꺼진다. 타인을 더 이상 나와 같은 마음이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비인간화하는 것이지. 먼저 다른 집단에서 우리 집단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 우리 집단 역시 쉽게 그 집단을 비인간화해서 강력한 폭력성을 드러내게 된다. 극단주의자들은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우리를 비인간화한다고 믿게 만들면서 혐오와 차별의 우리 본성의 어두운 면을 건드린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치에서 이런 차별과 혐오 심리를 부추겨서 자신의 표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이런 경향의 마지막 종착역은 잔인한 폭력이다. 내집단에 공감을 과잉하는 순간 외집단에 대한 폭력과 혐오를 낳는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 제1,2차 세계 대전 등의 대부분의 전쟁은 내집단에 대한 강한 공감 과잉으로 발생되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갈등은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이 만들어 낸 것들이야. 이런 결말로 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접촉'이다.


공감 부족은 대체로 경험 부족에서 온다. 공감한다는 건 서로 같은 감정이 되는 것이야. 현재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심하다. 같은 하늘아래 같이 숨을 쉴 수 없다는 듯이 적대적이다. 하지만 주제를 반려 동물로 바꿔보자. 애견카페에서는 이런 대립을 볼 수 없다. 예전에 손가락질했던 사람이 내 옆에 앉아서 강아지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있다. 같이 숨 쉴 수 없는 사람과 즐거운 경험을 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그러면 외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줄어들 수 있지. 김치녀, 맘충, 틀딱, 짱깨, 쪽발이, 전라디언, 깜둥이 같은 혐오 단어들도 없어지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경험을 갖는 것이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때 독일인이면서도 유대인들의 탈출을 도운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유대인 친구들과 교류가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데올로기,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은 우리 모두가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을 일깨줘 준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냐로 평가받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으니까. 그래서 결국 다정한 것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다정한 공감을 키우는 방법으로는 독서, 경청, 겸손, 친절한 대화 등이 있다. 입은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이유 그만큼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는 이야기이다. 다가갈 경(傾), 들을 청(聽). 경청은 가까이 다가가 몸으로 얘기를 들어준다는 뜻이야. 경청은 말없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고 말보다 더 강한 언어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화의 3분의 2를 상대방과 그가 하는 말을 생각하는 데 쓴다고 말했어.


당태종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군주가 어찌하면 훌륭한 명군이 되고 어찌하면 어리석은 혼군이 되는 것이오?” 위징이 이렇게 답했다. “겸청즉명(兼聽則明)이요, 편신즉혼(偏信則昏)이라. 두루 들으면 명군이 되고 한쪽 말만 믿으면 혼군이 됩니다.” 당태종은 중국에서 최고의 명군으로 꼽힌다. 위징은 당태종을 도와 태평성대를 이룩한 당나라 초기의 책사이다. 태종이 다스린 23년여 기간을 ‘정관의 치’라고 부르고 중국 역사의 황금시대로 꼽힌다. 정관의 치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위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말한다. 당태종은 형제의 난을 겪고 왕위에 올랐다. 위징은 그때 형의 참모로 있었다. 당태종은 위징이 적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충성스러운 행보를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위징은 황제의 체면은 생각지 않고 항상 직언을 일삼았다. 어느 날 당태종이 매우 화를 내며 내전에 들어왔다. 그때 장손황후가 묻는다. “폐하, 어쩐 일이십니까?” 당태종이 위징을 욕하면서 매우 화를 내었다. “위징이 나에게 자꾸 창피를 주는데 더 이상 그를 살려둘 수 없소!!” 위징이 신하들 앞에서 황제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 직언하는 바람에 당태종은 자존심이 매우 상해있었다. 그때 장손황후가 예복으로 갈아입고 당태종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당태종이 어리둥절하며 말한다. “이게 무슨 짓이오?” 장손황후가 답한다. “예로부터 군명신직(君明臣直)라 하였습니다.” (임금이 명군이면 신하는 직언을 한다는 뜻이다) “위징같이 직언하는 신하가 있으니 이는 폐하께서 명군이라는 뜻이니 매우 감축드리옵니다.”

 

그날 이후로 당태종은 귀와 마음을 열어 신하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명군의 길로 들어선다. 훌륭한 리더란 직언하는 신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유교경전 ‘효경孝經’에 ‘임금에게 대드는 신하 4~5명만 있으면 사직을 보존한다’라는 말이 있다. 당태종은 위징의 간언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전쟁의 상흔으로 백성들이 시름하고 있던 때 나라를 안정시키고 경청의 리더십으로 정관의 치세를 이룩했다. 


(한국인들에게 당태종의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 그가 고구려를 쳐들어와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태종이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고구려 원정을 반대했을 텐데...")


오늘은 내용이 길어져 이만 마치겠다. 경청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과 공감력을 키우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 다음 편지에 이어서 할게. 탈무드에 입은 적을 만들고 귀는 친구를 만든다는 말이 있어. 오늘도 귀를 열어 좋은 친구들을 만들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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