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

'나'는 상대를 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by 탄고

여자 친구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옷매무새를 수습하려고 잠시 손을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놓았던 그 손을 다시 잡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여자 친구의 여러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하의 옷 색상 매치, 때 묻은 흰 신발 그리고 정돈되지 않아 부스스한 머리까지 예전엔 자연스럽고 소박한 모습이라며 좋아했던 부분들이 이제는 답답하게 보이는 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서운하게 하지도, 상처 주지도 못해 다시 여자 친구의 손을 잡았지만 잠시 놓았던 그 짧은 순간 동안이라도 놓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냥 여자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다음 만남에선 지난번 답답했던 모습들이 모두 개선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제 눈은 여자 친구의 위아래를 훑으며 아쉬운 것은 없는지 별로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없는지 살피고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싫어할 수 있게 이유를 열심히 찾는 것입니다. 애써 찾지 않아보려고 여자 친구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오늘 여자 친구의 모습이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 사진으로 남아 머릿속이라는 모니터에 그녀의 모습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결국 무엇인가 하나를 찾아내고는 한 숨을 내쉬고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고 있습니다.


여자 친구를 이런 태도로 바라보는 데에는 제 스스로가 제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내가 이미 나에게 지금의 모습 그대로로 바라보지 않고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그리며 끊임없이 그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완벽함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완벽한 내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은 허용되지 않고 만족스럽지 않으며 아쉬운 점만 계속해서 보이기 마련입니다. 내가 되었으면 하는 모습과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이제는 나와 가장 가깝고 나와 많은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에게까지 반영된 것입니다.





"이 글꼴이 검은색이야? 좀 더 진한 회색으로 해볼까? 그래, 진한 회색으로 바꿔서 다시 보여줘"


벌써 단어 하나의 폰트 색만 가지고 10분째 피드백 중이신 부장님을 바라보며 답답해하는 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섬세하고 꼼꼼하신 부장님의 태도를 나쁘다고 바라볼 수만은 없습니다. 결국 저도 함께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질 테니 결과적으로는 제게도 좋은 부분일 테니까요. 그러나 당장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그렇게 관대하고 이해심 많은 태도이기 힘듭니다. 그런 부장님을 바라보며 유독 남들보다 제가 부장님의 이러한 성격에 더 예민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부장님의 저런 섬세하고 집요한 피드백을 수차례 들으며 일을 할 텐데 별 생각이 없는 걸까? 왜 다들 괜찮아 보이는 걸까?


어느 날 문서 작업을 하던 중 표 디자인을 가지고 30분째 씨름 중인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표 디자인에 대해서 별도의 피드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고 해 보았지만 결국 다시 생각이 나서 마음 편하게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집요한 태도는 스스로도 답답하게 만들기에 제 자신조차 꺼려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부장님에게서 스스로도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이러한 제 성향을 보았던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에 꽂혀 집요하게 완벽함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부장님에게도 보였던 것입니다. 이미 제 자신도 이러한 태도가 싫고 힘들어서 피하고 있는데 상대방을 통해 그러한 태도를 받게 되니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부장님의 답답하고 저를 힘들게 하는 성향과 태도는 저와 너무나 닮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저와 맞지 않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나에게 보이는 내 결핍과 컴플렉스가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보인다면, 내가 싫은 나의 모습이 상대방에게 보이는 이유로 싫어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이미 나를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 결국 나를 바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태도보다는 이런 모습도 괜찮지,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면 남들만큼 하는거지, 라는 조금은 관대한 태도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조금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나를 괜찮게 바라봐주고 조금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주고 이런 저런 모습도 많이 허용해주는 태도, 그것이 지금 필요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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