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어 친구를 불러 제게 있었던 상황을 설명해주었고 친구의 조언을 구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듯 보였습니다. 사실 친구의 조언도 조언이지만 저는 내심 누군가 같이 저의 힘듦을 이해해주고 다독여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제가 먼저 슬프지 않아? 라며 물었습니다.
"맞아, 슬픈 얘기야. 근데 이걸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왜 너는 슬픈 얘기나 기쁜 얘기나 늘 감정 없이 얘기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친구가 당황하며 답했습니다.
"왜 몰라, 굳이 감정 없이 얘기해도 이건 누가 들어도 속상한 이야기야" 저는 저대로 이해가 가지 않아 말했습니다.
친구가 고개를 숙이고 한 숨을 길게 내뱉은 뒤 저를 보고 답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되었지? 5년? 그런데 나는 아직도 너를 모르겠어. 너는 네 얘기 안 하잖아. 네가 지금 무슨 감정이고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래서 기분이 어떤지 그런 얘기 하나도 안 하잖아. 그런데 나한테 어떤 공감을 바라고 어떻게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분명 제 고민을 함께 해결해보려고 부른 친구였는데, 같이 해결하려고 부른 친구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버렸습니다. 지금 이 상황과 친구의 기분 상한 감정이 버거워 제 고민은 그냥 내가 해결할 테니 이만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 그냥 가? 아직 대화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는 왜 계속 피하는 건데?"
주변 사람들은 저에 대해 감정이 안 느껴지는 사람, 영혼 없는 사람,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 등으로 불렀습니다. 여러 별명들이 있지만 모두 상처받고 싶지 않은 제 방어 기제의 여러 이름들입니다.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었던 어린 저는 칭얼거리고 사랑해달라고 투정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되지 않도록 혼자서도 잘 살아가야 했습니다. 투정 부리고 제 감정을 호소했다가는 부모님이 저에 대해 지쳐서 떠나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겁이 나서였습니다.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좋은 감정, 기쁜 감정 등을 함께 나누면 함께 감정을 나눈 사람들에게 정이 가게 되고 마음도 가게 됩니다. 그렇게 가까워진 만큼 나중에 떨어졌을 때 그 떨어짐이 너무 무섭습니다. 반대로 힘든 감정,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게 되면 상대방이 나를 버거워해 외면해버릴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좋은 감정도 안 좋은 감정도 함부로 나누기가 두렵습니다. 그러니 감정은 치워두고 너무 가까워지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관계로 유지하며 사람들과 어울러 살아갑니다. 깊은 친밀감이 없어 무섭고 두렵지만 딱 이 정도 거리가 마음이 편안하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주로 뭐하며 시간 보내세요?라고 물을 때면 혼자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한다고 답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혼자 잘 지내세요? 저는 친구들이랑 무조건 만나서 수다라도 떨어야 해요,라고 부러워하며 답합니다. 그러나 정말 혼자 있는 게 편한 게 아니라 함께하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외로움을 조금 누르고 혼자 보내는 시간에 스스로를 계속 적응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안전하고 상처받을 원흉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독히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강한 집착이 만들어낸 불안들입니다.
어느 날 다른 친구가 제게 고민을 털어두었습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도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너무 잘된 일인데 만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와 알고 지낸 수년간 그 남자는 벌써 여러 명의 여자 친구들을 사귀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친구처럼 보이는데, 언젠가 자기와도 헤어지게 될게 아니냐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주기가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또 다른 친구는 자기가 너무 사랑하고 잘 따랐던 어머니를 일찍 떠나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그 상실감이 너무 큰 나머지 그 뒤로 이성에게 마음을 주기가 어렵다며 고민을 털어두었습니다. 마음을 주었다가 그 마음을 준 사랑하는 사람이 또 떠나가게 되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만나고 사귀고 어울리는 것 같아 결국 이상한 건 나뿐인가, 라는 고민만 오랜 시간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똑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저마다 다른 이 유로 인해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지켜갈 뿐 모두가 똑같이 두려운 것입니다. 다만 누군가는 그 두려운 마음이 많은 경험과 시간들로 인해 본인도 잘 알아차릴 수 없게 두껍고 견고하게 가리어져있고, 누군가는 두렵지만 그것을 마주하고 나니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건 아니었어, 라는 또 다른 경험을 해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 내가 그리고 당신이 이상하고 변덕스러운 것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고 자신을 깊이 알아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