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그곳엔, 천국은 없었다.
절망편_chapter 5. 도망친 그곳엔, 천국은 없었다.
정확히 며칠인지도 모르겠고,
이게 며칠째 인지도 몰랐다.
먹었다.
토했다.
누웠다.
그러다 잠들었다.
깼다.
다시 먹었다.
어느 순간부턴 맛도 없었고,
토할 때 통증이 생겼다.
손가락이 부어오르고,
위가 타는 것처럼 아팠다.
식도 어딘가가 따가웠다.
입 안은 헐었고,
혀끝에서 피가 났다.
그러든 말든,
나는 계속 그걸 했다.
그게 유일한 루틴이었다.
그날,
엄마가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문턱에 서서 방 안을 봤다.
내가 누울 자리 빼고는
음식물 포장 용기,
피자박스,
콜라캔과 페트병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를 봤다.
헝클어진 머리,
씻지 않은 냄새,
눈동자 없는 눈.
엄마가 말했다.
“너... 일단 밖에 나가."
그 한 마디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이제 집도 없어지는 건가.'
"일어나서 씻고 밖에 나가서 햇볕 좀 쏘고 들어와!!"
엄마의 화통.
오랜만이었다.
슬쩍, 미소가 나려는 순간,
"니 방 냄새 때문에 이제 사람들도 못 부르겠어 이것아!!"
아...
내가 순간 무슨 기대를 한 거지?
한 번은,
정말 한 번은 방을 치워보려고 했다.
식은 국물이 굳은 배달 용기를 들고
비닐봉지를 펼쳐보았다.
바닥에 엎어진 콜라캔.
눌려 터진 김밥 포장지.
부러진 젓가락.
한두 개는 괜찮았다.
세 개, 네 개 모으다 보니
방이 오히려 더 지저분해지는 것 같았다.
쓰레기를 모아야 하는데,
쓰레기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때 알았다.
치우기 전보다
지금이 더 역겹다.
비닐봉지를 접어서
다시 구석에 뒀다.
쓰레기 위에
그냥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
며칠을 또 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배가 고파졌다.
배달 앱을 켰고,
무의식적으로 주문을 눌렀다.
그런데
‘한도초과’가 떴다.
왜 벌써...?
하는 생각도 잠깐이었다.
핸드폰 화면이
순식간에 멀게 느껴졌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화면을 껐다.
‘이불을 덮으면
현실이 안 보이겠지.’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문자 내용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됐다.
그렇게 뒤집어쓴 이불 안,
깜깜한 천 사이 틈으로
화장대 구석 어딘가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창문에 가느다랗게 비치는
햇빛에 반사돼
혼자만 깜깜한 방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움직일 힘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엔 자꾸 그 반짝임이 떠올랐다.
결국,
엉금엉금 기어가
그걸 손에 쥐었다.
연분홍색 립스틱이었다.
내가 자주 바르던 립스틱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날도,
첫 출근을 한 날도,
이 립스틱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손에 쥐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거울을 봤다.
퉁퉁 붓고, 거칠어진 얼굴.
정리가 안돼 지저분한 눈썹.
누가 봐도 망가진 얼굴이었다.
그 위에
그걸 한 번, 발라봤다.
거울 속 입술에
옅은 빛이 번졌다.
순간,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게
왈칵, 밀려 올랐다.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이상한 눈물.
그냥,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정말 아무 이유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