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살아보겠다는 마음

by 주엉쓰

가끔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순간이 있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조용히 받아들여야 할 때.”
“세월이 이렇게 지나버렸다는 걸 갑자기 실감할 때.”
“그리고 언젠가, 누구나 죽음 앞에 놓인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릴 때.”


이 세 가지 생각이 한 번에 몰려오는 날이면,
나는 괜히 핸드폰을 뒤적이고,
쓸데없는 영상을 몇 개나 넘겨보며
현실에서 잠시 도망치듯 시간을 날려 버린다.


그런데 도망칠수록 이상하게도
더 정면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넌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코로나 이전의 세상을 떠올려 본다.
그때의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시끄럽고, 훨씬 복잡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가게들,
마감 직전의 영화관,
공휴일이면 줄이 끝없이 늘어진 맛집들.


지방 도시조차 새벽 2시, 3시까지 문을 여는 곳이 많았고
“마감입니다”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굳이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밤을 소비할 명분을
어찌나 기가 막히게 잘 찾아냈던지.


코로나 이후,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을 했다.
‘위드 코로나’라는 말로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법을 배운 시기였다.


몸의 간격을 벌리는 법을 배우다 보니,
마음의 간격도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다시 좁히는 법을 잊어버렸다.
다시 다가가야 할 까닭을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 OTT를 틀어 놓고
영화관 의자를 흉내 낼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조금 더 조용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 사람들 말고는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익숙해졌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우리는 연못 속 개구리알처럼 느껴진다.


각자의 투명한 막 속에
꼼꼼하게 감싸진 채,
겹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둔 채,
서로의 삶을
멀찍이서만 바라본다.


나도 그 알 중 하나다.
가끔은 막을 깨고 나와
세상으로 뛰쳐나가고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이 투명한 막이 주는 안전함이 좋아서
다시 안쪽으로 몸을 웅크린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사실 그 말에는 늘
“그래도 조금은 특별하고 싶다”라는
덧붙이지 못한 한 줄이 따라붙는다.



불과 얼마 전, 강남의 밤을 차창 너머로 보던 날이 있었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차 밖으로 보이는 빌딩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곳곳에 켜진 사무실 불빛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꿈을 키우는 자리,
누군가에게는 이미 성공을 증명하는 자리,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스며든 자리였겠지.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많은 별들 속에서 내 별은 있을까?”


서울의 별은 낮게 떠 있는 것 같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굽어 있다가도,
막상 잡으려 하면
한참 위로 달아나는 신기루 같다.


지방에 있을 때는
서울이 너무 높게 느껴졌고,
서울에 와보니
도리어 별이 ‘너무 낮게’ 떠 있는 곳처럼 보였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곳.


누군가는 그걸 환상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그 환상을 붙들고 산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때,
“언젠가 저 빌딩 안 어딘가에서
나도 하나의 작은 별처럼 빛나고 싶다”는
치기 어린 욕심을 품었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어릴 적 친구를 우연히 SNS에서 마주친 날이 있다.


기억 속 그 친구는,
동네에서 나를 보며
손을 크게 흔들던 아이였다.
어리지만 어리숙하지 않은 농담을 하며
내 마음에 크게 어른이 되어 자리를 차지하던 애였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그 친구는,
살이 쏙 빠진 얼굴에
표정이 잘 읽히지 않는 눈을 하고 있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지난 세월의 무게가
말 대신 공기를 통해 전해졌다.


“잘 지냈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넨 건 나였지만,

그 말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1이 사라지지 않은 메시지 창은,
괜히 마음이 오래 남았다.
내 머릿속의 그 친구는 여전히
함께 노래방도 가고 장난을 치던 모습 그대로인데,
현실의 그 친구는
그 시절의 얼굴을 거의 지워낸 채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무엇이 그 애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디서부터 힘들었을까.
나는 그 어느 것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 나만 버겁게 살아온 게 아니구나.”


나는 가끔,
지나간 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너무 손쉽게 소비한다는 생각을 한다.


“후회하지 말자.”
이 말도 사실은
후회를 이미 하고 있다는 뜻이다.


후회를 아예 안 하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조금 더
‘선택’을 신중히 하는 것뿐이다.


지금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도 세상이 기억할 만한
대단한 인물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이 사실을 “포기”가 아니라
“전제”로 삼아 살아보고 싶다.


어차피 특별하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내 눈앞의 사람에게는
조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보자고.


어차피 모두 죽음 앞에 설 거라면,
그 직전까지는
조금은 덜 부끄러운 선택을
한 번이라도 더 해보자고.


어차피 세월은 도망치듯 지나갈 거라면,
적어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덜 비겁했으면 좋겠다고.


세상에는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끝없이 많다.



어떤 사람은 ‘비밀 연구소’에서
정말로 우리가 떠올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조용히 구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내 세상이 좁다는 걸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
배움을 멈추는 순간,
나는 그 좁은 세상 안에서
평생을 맴돌게 된다는 것.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체념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살아보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라는 것.


지나간 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더 진지하게
나를 살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누군가의 눈에는
끝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남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늘의 나에게만큼은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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