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스톡에서 캡룹스로
오늘의 목적지는 캡룹스, 그리고 가는 길의 중간 기착지는 ‘레벨스톡’.
아직까지 살면서 많은 소도시들을 방문해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나라의 대표 도시들을 우선 찍고 소도시로 넘어가자 하는 마음으로 항상 여행을 계획했던지라, 어느 나라를 가도 소도시 여행은 대부분 당일치기였다. 그러나 이번 록키 여행에서 우리는 대도시 밴쿠버, 캘거리를 제외한 여섯 개의 소도시를 방문했으며, 그중 1박 즉 그곳에 머무른 지 채 24시간이 되지 않은 채 사랑에 빠져 보린 도시가 바로 레벨스톡이다.
우리가 록키로 출발할 때 첫 번째 기착지였던 레벨스톡. 떠나던 그때는 목적지인 밴프에만 시선과 생각이 머물렀던 탓일까, 레벨스톡의 가을이 다시 그리워졌다. 그립다는 표현이 우스울 만큼 약 4박 5일 후에 다시 돌아가는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면 레벨스톡에서 잠시 머무르고 싶었다.
10월 말 또는 11월 초의 밴쿠버에서 시작한 캐나다 록키 산맥 여행은 두 계절을 왔다 갔다 하니 참 재미난다. 밴쿠버에서의 가벼운 가을에서 세상 첫 경험 해보는 blizzard (눈폭풍) 급의 폭설과 강풍, 조금 지칠 때가 되니 아직 가을의 정취가 남아 있는 계절로 돌아간다.
도대체 땅이 얼마나 큰 거야? 같은 땅에서도 1000km 사이로 시차가 한 번씩, 왕복으로 두 번 바뀌니 이건 괜히 두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겨울나라에서 다시 돌아온 가을가을한 레벨스톡.
엄마의 식사문제로 지난번에 방문했던 한인 사장님의 스시바에 다시 갈까 했으나, 현지인처럼 우리도 주말의 브런치 카페에서 소위 ‘서양식 브런치’를 즐기기로 했다.
떠나던 날 아침의 비가 오던 레벨스톡이었는데 , 오늘은 아주 화창한 날씨다. 떨어진 낙엽마저 그림 같은 캐나다 그리고 레벨스톡. 카페의 입간판과도 찰떡으로 어울린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라는 아쉬움이 발걸음마다 남았다.
장거리 여행자로서 다시 록키를 방문한다면 사실 레벨스톡에 기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결정일 것 같다. 분명 두 번째 록키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다음번 여행은 밴쿠버에서 캘거리까지 비행 편을 이용해 록키를 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
점심과 커피를 즐기고, 우리는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는 여정 중 마지막 숙소 ‘캡룹스’로 향한다.
레벨스톡에서 캡룹스까지는 약 350km 정도의 거리이다. 3화의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팀홀튼 사진이 있던 그곳이다.
캡룹스를 독특한 사막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당시 새벽에 창 밖을 보며, 이곳에도 산불이 났었나? 싶게 드문 드문 나무들이 보이고, 동그란 산등성이가 드넓게 펼쳐진 캡룹스는 어릴 때 즐겨보던 텔레토비 동산과도 비슷했다.
캡룹스 지역으로 들어가니, 자연보호 동물원도 보인다. 다행히 오전 일찍 출발하고, 길이 밀리지 않은 캐나다 고속도로 덕분에 해가 지기 전 늦은 오후 4시쯤에 캡룹스 지역에 도착하며, 숙소에서도 딱히 할 것 없는, 게다가 소도시들의 매력은 결국 ‘산책’ 또는 ‘트레킹’이라는 걸 알기에, 그리즐리 베어가 보고 싶다는 30대의 동생 말에 BC 와일드 라이프 동물원을 구경하기로 했다.
생츄어리와 같이 서식지와 비슷하게 게다가 야생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 목적으로 온 동물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야생으로 돌려주는 게 목적인 동물원, 올해 호주 시드니 여행 때 갔던 동물원도 비슷한 개념의 동물원이라, 굉장히 친화적이었다. 비록 내 키만 한 캥거루가 나의 무릎 정도밖에 오지 않은 나무 펜스를 넘어와 강펀치를 날리면 어쩌지?라고 겁이 살짝 나긴 했다.
캐나다의 자연보호는 실로 대단하다. 자주 보이는 주변 야생동물 보호 안내 간판들이나, 자연과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캐나다의 대자연 앞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 가족은 캡룹스 시내로 이동했다. 캡룹스는 밴쿠버에서 350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다양한 캐나다 국내 및 국제 스포츠 경기가 치러지는 곳이다. 생각보다 어학원과 학교 그리고 상점가들이 있어 한인 학생들의 어학연수, 워킹 홀리데이 지역이기도 하다.
덕분인지 한인 식당도 여러 개 보였고, 식당 안엔 어린 이십 대 친구들도 많았다.
우리는 캡룹스에서도 베스트 웨스턴 스위트에 머물렀다.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호텔은 , 걸어서 3분이면 상점가에도 갈 수 있고, 근처 대형마트도 있어 소도시치곤 아주 백점이다.
부모님과 동생은 한 시간 정도 호텔에서 쉬시고, 저녁 먹을 때 만나기로 하고, 나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캡룹스 상점가를 돌았다.
예쁜 소품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일찍이 문을 닫는 캐나다 상점에서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카드 문화가 발달한 서구권 답게 다양한 카드들이 즐비하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쿡웨어들과 그릇들 나의 시선을 묶어 버렸다.
이곳도 분명 엄마가 좋아할 곳이네, 이따 같이 와야지라고 생각하며 여기저기 돌고, 친절한 사장님이 계시는 젤라토 집도 동생과 다시 함께 갔다. 캐나다 소도시들을 돌며 만나게 되는 소품 가게들의 방문은 이번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약 2주간의 긴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오는 여정부터 계속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아있다. 한 순간이라도 좀 더 무리해서 그곳을 느끼고 싶었고, 그 겨울의 캐나다를 꼭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이제 슬슬 여독도 몰려오는 시점이라 그런 걸까? 아님 어제의 골든의 지루함과 뭔지 모를 지역에서 주는 긴장감 때문일지 우리는 일찍 다시 숙소로 향하고, 다음날 아침 여느 일정과 다름없이 짐을 다시 챙겨 8시가 되기 전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밴쿠버로 향한다.
출발 전 미리 가서 구매한 얼죽아의 민족다운 스타벅스 아이스 음료들.
정면엔 눈이 하얗게 덮인 캡룹스의 높은 산들이지만 우리에게 그란데 사이즈의 시원하디 시원한 아이스커피 세 잔이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