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교훈과 안전사회(4) : 소비자 안전 컨트롤타워에 대한 모색
가습기살균제참사는 화학물질에 의한 사고였고, 생활화학제품 사고였다. 이 참사의 또 다른 교훈은 무엇일까. 화학물질과 제품 관리의 부실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은 ‘소비자 안전사고’였다. ‘소비자 기본권’이 침해된 사건이었고, 구체적으로는 ‘소비자 안전권’이 침해된 사건이었다. 이 참사는 소비자 안전과 보호의 측면에서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소비자 보호와 권리 구제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은 외면했고, 옥시는 파렴치했다. 소비자 보호에 적극 나섰어야 할 소비자원이나 소비자단체들의 활동도 미흡했다. 2016년 뒤늦은 옥시불매운동이 소비자단체들의 체면을 살렸다.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는 소비자 안전에 대한 ‘이중적 기준(잣대)’를 적용했다. 즉, 영국 등 유럽 소비자 시민들과 달리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낮은 안전 기준을 적용했다. 그 결과 참사를 낳았고 국내 소비자를 ‘홀대’했다. ‘유럽 소비자와 한국 소비자가 다르다.’라는 접근은 심각한 ‘소비자 차별’이자, ‘인권 차별’에 해당된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왜 그랬을까. ‘국내에서는 그래도 된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서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소비자 안전’에 민감한 사회였다면, 그런 홀대가 가능했을까?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여전히 소비자가 ‘봉’인 사회인가? 피해자들만 여전히 억울한 사회인가? 뼈아픈 대가를 치른 만큼 소비자 안전 분야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 안전’은 소비자 기본권으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어야 할 ‘오래된 미래’였다.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 보호를 규정한 법이 ‘소비자 기본법’이다. 소비자 기본법을 ‘소비자안전기본법’으로 법의 명칭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아이디어이다.) 소비자 기본권에 ‘안전’을 구분해서 강조한 경우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 안전’을 소비자 기본법의 기본 원칙과 체계로 재정립해 보자는 취지이다. 대규모 소비자 참사를 겪은 사회라면 이러한 가시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 기본법은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다. 공정위는 기업의 공정한 경쟁과 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이 우선이다. 소비자 안전 업무의 비중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현재 정부는 소비자 기본법에 근거하여 국무총리와 민간대표가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소비자정책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위원회가 소비자 권리 보호와 안전문제 등 소비자 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전문기관으로 소비자원이나 소비자안전센터가 지원하고 있다.
제품안전 기본법에 근거하여 ‘제품안전정책협의회’를 통해 비관리 품목에 대해서 소관 부처를 지정하는 제품안전 정책을 다루고 있다. 전문기관으로 제품안전관리원이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 안전정책은 소비자정책위원회와 제품안전정책협의회를 통해 범부처 형태로 다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사 이후 개선된 조치이지만 소비자 안전업무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대해서는 미흡하다는 의견들이 있다.
한국보다 먼저 자본주의가 발달해 왔던 미국이나 일본은 독립적이고 전문적으로 소비자 안전문제를 다루는 정부조직, 컨트롤타워를 운영하고 있어 시사점이 있다. 일본은 ‘소비자청’을 통해, 미국은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를 통해 소비자 안전과 보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도 정부 차원에서 소비자 안전에 대한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갖는 독립적인 전담조직과 전담기관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과 요구가 소비자운동을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있어왔다.
이에 대형 소비자 참사를 겪은 국가로써 소비자 안전에 대한 컨트롤타워를 마련해 갈 것이라고 하는 확실한 ‘시그널’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 일본이나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국내도 소비자 안전을 전담하는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소비자원이나 소비자안전센터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가야 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봉'이 아닌, '왕'인 시대로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