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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13. 2023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때

참사 교훈과 안전사회(5) : 징벌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

소비자 권리로서 안전권을 강화하는 또 다른 방안으로 거론되어 온 것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다.


기업이 만든 동일한 제품을 사용하고서 같은 혹은 유사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대표 소송을 통해 소송단에 참여한 피해자들에게 동일한 판결 효과를 미치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 개별소송에 따른 불편과 비용을 감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소송 참가의 문턱을 낮춰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방법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표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동일한 피해보상을 해줘야 하므로 불리하고 위협적이다. 이러한 방식의 소송이 ‘집단소송제’이다.


국내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소송을 했다. 참사의 고통도 힘든데,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다시 가해기업과 다퉈야 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참사 초기에 옥시레킷벤키저는 자신들의 우월적 힘을 이용해서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들을 우롱한 바 있었다.      


만약 집단소송제도가 있었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집단소송제 참가단을 모집하고, 대표소송을 진행한다면 사회적인 이목이 이곳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가해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별적으로 피해자들을 회유하고 겁박하면서 소송을 무력하게 만드는 시도는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집단의 힘, 사회적인 힘’이다. 모이면 힘이 강해지지만, 흩어지면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집단소송제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제도이다. 참사 이후 일부 국회의원들과 소비자단체들은 집단소송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고,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들은 집단소송제 주요 내용으로 집단소송제에 참여하는 인원기준을 가능한 낮추는 방안을 요구했다. 또한 소송 참가의 벽이 낮아지더라도 기업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면 소송은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된다. 이에 소송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정보를 요구하면 기업은 관련 정보들을 제출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피해의 인과관계 입증에 대해 기업이 피해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 입증책임을 기업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반대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당연히 경제계이다.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소송이 남발될 것이며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정부는 기업의 눈치를 본다.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입법예고했었지만, 도입되지 못했다.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왜 기업의 영업활동이 위축되는 것인지, 나는 잘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단체들은 앵무새처럼 기업(경제) 활동 위축을 말한다. 이러한 기업의 논리와 태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이하 징벌제) 도입 반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징벌제도 많은 논의가 있었던 이슈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 당시에 피해자들은 ‘징벌제 도입과 소급적용’을 요구했지만, 위헌 소지가 있어 반영되지 못했다. 참사 이후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부 법에서 징벌제가 부분적으로 도입되었다.      


제조물책임법과 환경보건법에서 ‘3배 이내’로 도입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5배 이내’로 도입되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와 같이 제조물 하자로 인한 경우, 환경보건 사건인 경우, 중대재해인 경우에 각각 관련법에서 징벌제를 도입한 경우이다.      


참사 이전에도 일부 개별법에서 징벌제가 도입된 경우들이 있었다. 그러나 징벌제가 적용된 판례나 사례를 통해 사회적 파급효과를 만들어 냈다는 뉴스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징벌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해당 조항이 크게 실효성이 없다는 뜻일 수 있다. 아니면 해당 분야에서 긍정적인 억제효과(예방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느 해석이 맞을까.     


징벌제 도입 시 적정한 징벌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의 경우 징벌제는 주로 ‘3배 이내’로 도입되었다. 3배 이내 도입이 보편적인 도입 수준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이해된다.


 ‘3배 이내’는 처벌 수준이 낮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이들은 낮은 수준의 처벌은 다시 참사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력한 처벌 효과가 ‘억제(예방) 효과’를 가질 수 있다며 강력한 징벌제 도입을 요구한다. 국내 징벌제 도입의 경우 미국의 3배 이내 조항을 참고한 경우로 이해지만, 미국의 경우는 ‘예외 조항’을 두어 ‘상한 없는 징벌제’를 도입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예외조항은 잘 거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6년 당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민단체들과 국회 토론회를 통해 기업이 고의적인 불법행위를 통해 중대재해를 야기한 경우, ‘상한 없는 징벌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력한 처벌 효과를 통한 억제효과를 기대하는 접근이었다.  


우리나라도 202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5배 징벌제’를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는 집단소송제를 일반법으로 도입하고, 징벌제를 상법에 최대 5배까지 도입하는 방안을 입법예고했다. 대형 참사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기업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이윤추구 행위를 더 이상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고, 기존 3배 징벌제의 실효성이 낮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집단소송제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징벌제는 도입되지 못했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제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기업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경제계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경제 활성화’라는 이유로 기업에게 과도한 편의를 제공해 왔고, 그로 인해 소비자 안전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다. 그 결과 가습기살균제참사도, 세월호참사도 발생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면 기업들은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반대활동을 펼친다. 계속 이런 볼멘소리에 끌려다녀야 할까.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법이다. 강력한 처벌이 한 면이라면, 다른 한 면은 강력한 ‘예방(억제) 효과’를 가진 제도이다. 기업이 불법이나 고의적으로 소비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해친다면,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것이 상식이다. 예방을 위해 노력하다가 사고가 난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해줘야 한다. 이런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이런 시스템이 마련된 사회가 안전한 사회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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