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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Mar 06. 2023

'시그널'을 잡아라

참사 교훈과 안전사회(7) : 중독센터(Poison Center) 도입

가습기살균제참사의 피해 규모를 키웠던 원인 중에 하나가 ‘조기 발견’의 실패였다. 가습기살균제는 대략 17년 (1994년 제품 개발, 2011년 첫 발견)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를 알리는 다양한 ‘시그널’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기업에서 해당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할 당시에 독성에 대한 의심과 의문이 제기될 수 있었다. 가정에서 이 제품을 사용할 당시에도 소비자들이 어떤 부작용이나 의심을 호소할 수 있었다. 환자들이 병원에 방문했을 당시에 의사들이 어떤 징후를 포착할 수도 있었다. 이렇듯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를 알리는 '시그널'이 여러 형태로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기간 동안에 예상되었던 시그널을 포착했다면 어땠을까? 가습기살균제가 그토록 오랜 기간 방치되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시그널을 통해 가습기살균제를 조기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조기발견에 실패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독성감시 시스템의 부재 내지 부실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 '중독센터(Poison Center)'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국내에서 ‘중독센터’는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 글에서 언급하는 '중독센터(Poison Center)'는 국내 중독센터와 다른 개념이다.


같은 용어인데 다른 개념을 설명하는 경우여서 혼선이 있다. 즉 '포이즌(Poison)'을 국내 용어인 '중독'으로 번역하는 데서 오는 혼선이다. 이에 'Poison Center'를 '중독센터'가 아닌 '포이즌센터'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고, '독성센터'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본 글에서는 '중독센터(Poison Center)'로 표기하며 협소하게 사용되는 국내 중독센터 개념과는 다른, 훨씬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유해한 화학물질과 같은 독성물질에 노출되어 입는 건강피해를 ‘중독’이라고 할 때, 중독센터(Poison Center)는 이러한 중독을 예방하고, 중독사고가 발생했을 때 응급처치를 하는 시스템이다. 나아가 중독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중독센터는 참사 당시에 국내에 도입되어 있지 않았다. 중독센터는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선진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많이 보급되어 있는 시스템이었다.


중독센터를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중독센터는 유해한 화학물질과 같은 독성물질에 노출되어 중독될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고, 중독사고로 노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응급 상담과 긴급 치료를 통해 건강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종의 응급대응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집안에서 섭취하거나 흡입해서는 안 되는 어떤 물질이 들어가 있는 물건을 가지고 놀다가 중독 사고를 당했을 경우 즉시 연락을 취해서 필요한 처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위급한 경우에는 병원으로 이송하여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 연락할 수 있는 곳이 중독센터이다. 


이처럼 응급상담을 하고 응급치료 기능을 갖는 중독센터를 ‘중독관리센터(PCC, Poison Control Center)’로 부르기도 한다.      


중독센터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독성물질에 대한 '독성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중독센터는 특정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그 성분의 독성은 얼마인지, 해당 성분은 어떻게 중독을 일으키는지, 그에 따라 어떻게 치료 등 응급대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독센터는 각 종 중독사고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 부처나 기업, 병원 등으로부터 다양한 중독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능을 갖는 중독센터를 ‘중독정보센터(PIC, Poison Information Center)’로 부르기도 한다.      




중독센터는 이러한 중독관리센터(PCC) 기능과 중독정보센터(PIC)의 두 가지 기능을 갖는 경우를 의미하지만, 국가마다 여건에 따라 중독정보센터만 운영하는 곳도 있다. 


중독센터에는 독성과 중독에 대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 임상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의사, 약사, 간호사, 독성학자, 사회복지사 등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다. 중독센터는 대부분 24시간 콜센터로 운영되며, 주로 병원에 위치해 있다. 


중독센터의 여러 역할 중에서 최근에 강조되고 있는 것이 중독 사고의 감시 기능이다. 중독센터는 방대한 중독 정보를 축적하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중독 사고를 모니터링하여 사고 원인을 추적하는 감시 기능을 수행한다. 


가습기살균제참사의 경우에도 중독센터와 같은 감시 기능을 갖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사고 원인을 조기에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다. 




나는 피해대책 활동을 하면서 2016년경 중독센터 개념을 처음 접했다. 당시 중독센터 개념은 생소했고, 대략적으로만 이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 당시 나는 요구사항 중 하나로 '국가 중독센터 도입'을 포함했다. ‘독성전담병원’과 같은 화학물질 피해에 따른 전문화된 치료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독센터가 이러한 기능을 함께 담당하는 기관으로 이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개념일 수도 있었지만, 피해대책 활동을 하면서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요구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필자는 2018년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중독센터’에 대한 이해를 키웠고, 중독센터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참고로 2023년 3월 언론보도를 통해 서울시에서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고 중독센터가 세계보건기구에 등록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접해다. 반가운 소식이다. 고 박원순 시장 재직 당시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사참위)에 있었던 나는 서울시에서 중독센터 도입을 추진하고 있던 해당 부서 관계자들과 여러 의견을 나누었고, 사참위 권고안을 만드는데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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