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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27. 2023

우리는 더욱 깐깐해져야 한다.

참사의 교훈과 안전사회(6) : 독성으로부터 안전할 권리에 대한 의미

가습기살균제참사(이하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또 다른 교훈은 ‘독성’으로부터 안전할 권리이다. 독성은 특정 물질이 갖는 ‘유해성’으로, 인체나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의미한다. 독성학 등 해당 분야에서는 보다 정확한 개념을 갖고 사용되는 용어들이지만, 본 글에서는 대략적인 의미 전달 수준에서 사용한다. 


가습기살균제는 독성, 즉 유해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원료로 사용됐고, 이 물질이 공기 중으로 사람에게 노출되어 폐 등 장기를 손상시켰다. 영유아나 임산부, 노약자 등 독성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심각한 건강피해를 야기했다. 


‘독성’의 관점에서 참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앞서 살펴본 대로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유해성이 강한 화학물질과 이를 함유한 제품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안전관리 개선은 엄밀하게는 화학물질 또는 화학제품에 노출되어 나타날 수 있는 ‘독성’으로 인한 건강 피해 영향을 관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말의 반복 같지만 강조점을 구분해서 접근해보려고 한다. 즉 '화학물질(제품) 사고'로 규정하면 화학물질(제품) 관리,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물론 화학물질(제품) 관리는 화학물질(제품)이 갖는 독성을 관리하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 참사를 '독성사고'로 규정해 본다면, '독성 관리' 개념이 강조되면서 강조점 내지 접근 프로세스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논하는 담론 또는 논의 방식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즉 '화학물질(제품)로부터 안전할 권리'로 볼 수도 있지만, '독성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로 보는 방식도 필요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참사의 교훈을 화학물질 또는 화학제품의 안전관리로 보면, 우리는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의 안전관리로 '특정'하면 된다. 이 경우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을 관리하는 주무부서(환경부)를 지정하면 된다. 화학물질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므로 다른 관련 부처들도 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주무부처와 협력하게 하면 된다. 이는 당연한 조치이다. 


반면 독성 관리의 개념으로 보면 특정 화학물질과 제품의 관리체계를 포함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성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추가적으로 들여다보는 접근이다. 화학물질과 화학제품 관리 부처들에게만 관리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닌, '독성관리'라는 별도의 관리체계를 통해 이중적으로 혹은 중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두는 것이다. 독성의 노출은 그 경로가 미세하고 복합적이고 복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독성의 영역은 광범위하다. 화학물질을 예로 든다면,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영역이 거의 없다. 화학물질 사용은 더욱 미세해지고 광범위해지고 있다. 미세플라스틱 논란에서 보듯, 이러한 확장추세는 전 지구적이며,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즉 독성이 미치지 않는 범위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독성’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살고 있을까. 어떤 감수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바람직한 독성관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 참사로부터 배워야 할 시사점은 무엇일까.           


우리들은 새로운 아파트나 건물에 입주할 때 유해 물질로부터 안전한지 걱정한다. 야외활동을 하면서 자외선 노출이나 미세먼지를 걱정한다. 농축산물이나 기타 가공식품 등에 농약과 같은 잔류 물질이 흘러들어 갔는지를 걱정한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장난감이나 학용품에 유해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지 걱정한다. 아이들이 놀고 학습하는 공간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이 노출될까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국가와 기업은 법에 따라 안전기준을 마련해서 관리하고 있다.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안전기준을 신뢰하고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해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각 자의 감수성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대응방식으로 충분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따라 국가와 사회에 대한 우리의 요구 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 참사의 교훈으로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안전사회에 대한 요구 수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구는 피해보상에 만족할 수 있고, 누구는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의 안전관리에 만족할 수 있다. 누구는 소비자의 포괄적 안전과 권리 강화에 만족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무엇인가 불안하다면, 우리는 ‘독성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추가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우리 사회는 새로운 권리 개념을 추가해서, 독성 노출로부터 더욱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이미 기존의 안전관리에 포함된 개념이라고 반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해서 추가적인 논의를 해야 하고, 안전권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형 참사를 겪은 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더욱 깐깐해질 필요가 있다. 더욱 강도 높은 안전관리 방식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독성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도 그중 하나이다.

      

다음 글을 통해 참사와 독성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쟁점들에 대해 추가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제도개선에 대한 교훈을 도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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