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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언니 Jan 15. 2024

어색하지만 자매입니다.

완전 반대성향 너와 나.

 삼 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빠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맨 앞칸에 앉아 고층 아파트의 너른 뷰를 바라보며 그 당시 비싸다는 영창피아노를 방 한편에 두고 어린이 바이엘 상, 하를 연습하다 어느 순간 내리막에 들어선 아빠를 따라 빛 한 줌 들지 않고 찬물이 나오지 않는 반지하에 살았었다. 내리막에 들어선 맨 앞칸의 역풍은 고스란히 나에게까지 전달이 되었고, 아빠의 무너짐과 엄마의 굳건함을 보며 사업하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는 어린 나이의 다짐을 했으니 적잖은 충격임은 분명했다.


 나와 여동생은 1살 차이, 남동생은 4살 차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안 분위기가 무겁고 우울할 때, 또는 누리고 싶은 것들이 남들은 되고 나는 안될 때 내가 삼 남매가 아니었다면, 내 바로 밑 동생이 없었다면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물론 바깥으로 들려서는 안 되는 나의 바람일 뿐이었지만 선명하게 생각날 만큼 나름 진지했던 것 같다.


여유 없는 부모의 사랑은 삼 남매가 갖기엔 많이 부족했고, 그 안에서 바로 밑 동생과의 나이차이는 고작 1살임에도 불구하고 첫째니까 첫째라서 양보하거나 더 혼나야만 하는 현실이 싫었다. 지금 그런 얘기를 엄마한테 하면 본인은 공평했다고 한다. 하긴 엄마는 공평하게 바쁘다 보니 남의 집 엄마처럼 삼 남매를 많이 안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어린 나이에 맞벌이하는 엄마의 부재를 고스란히 느꼈을 막내에게는 그래도 좀 잘해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아빠는 유독 여동생과 나를 차별했다. 어렸을 때 여동생이 나보다 몸이 약해서 그런 건지 연민을 갖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사춘기 때 본 아빠의 모습은 그냥 차별에 가까운 행동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에게 갖는 거리만큼 여동생에게도 거리를 갖게 되었다.


  MBTI 완전 반대.

 쉬는 날 나는 집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는 재미에 빠져 산다면 동생은 어떻게 해서든 나가노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주엔 선배 결혼식 다음 주엔 동기 돌잔치 그다음 주에는 동창모임 그다음 주에는 교수님 은퇴기념식 등등 공사다망한 스케줄은 마흔이 다가와도 여전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그런 인사치레 같은 모임이 부대끼고 가족끼리 보내는 휴식 또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도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의 사람 만나는 성향은 아빠와 쏙 빼닮았다. (혈액형까지도 똑같다) 게다가 누구한테 선물하는 것도 아끼지 않는다. 어린이집 선생님들 연말선물에 좋은 립스틱들은 왜 돌리는 건지 나로서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 중 하나인데, 꼭 그래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중에 내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ㅎㅎㅎ) 아빠 역시 가족끼리 여행을 와서도 친한 지인의 선물을 꼭 사간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 건지 모르지만 부녀지간이 너무도 똑같다. 그래서 내가 그 둘을 닮았다고 또 그러면 여동생은 길이길이 날뛴다. 게다가 아빠는 장녀의 마음을 절대 모르는 넷째인데(엄마는 늦둥이 막내딸) 무슨 때만 되면 첫 째니까 더 해야지. 첫 째니까 동생 용돈을 줘야지를 입에 달고 산다. 나참, 첫 째여도 가방 끝이 젤 짧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싶어 한날은 말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언니고, 오빠고, 형부야. 여기서 나는 그러니까 막내야. 언니 저 치킨 사주세요.“

 한마디에 여동생과 아빠는 눈을 홀 긴다. 그래 닮았다니깐 왜 아니래.


Anyway.

그래서일까? 여동생과 단둘이 무엇을 하기가 참 어색하다. 여느 집 자매처럼 쇼핑을 한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그 흔한 술 한잔을 둘이서 해본 적이 없다. 우선 공감대가 있는 대화하기가 어렵고, 무슨 말을 하려 들면 맥커터 기술이 있는 동생은 내 심기를 건드린다. 그래 놓고 목소리를 높이며 인상을 쓴다. 내가 고집이 세서 그런 거라나 뭐라나? 그래서 그래 나 고집 세다고 했는데 어느 날은 사촌오빠 앞에서 또 저 말을 굳이 하길래 내버려두었다.

 "우리 언니 세잖아. 고집도 세고."

 "엥? 나는 너네 언니보다 네가 더 센 거 같은데? 너 장난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웃을 뿐이고, 여동생은 또 날뛴다.

 "뭐래? 아니거든? 사주에서도 언니가 세다고 했거든?"

 "야, 너는 세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면서 나한테 왜 세다고 하는 거야? ㅋㅋㅋ웃기네."

 언젠가 한방 먹이려고 했는데, 오빠 덕분에 힘을 아껴 대미지를 입혔다. 저 날  이후론 세다는 얘기를 입에 담지 않으니 참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 하나도 맞는 게 없지만 그래도 동생인지라 내가 진지하게 전하는 마음에는 내 말을 잘 듣긴 한다. 여전히 어색한 38년째 자매이지만 그래도 외국에 있는 남동생을 대신해 친정부모님에 대한 것들을 의논할 때는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원래는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하던 애가 점점 등이 굽는 것을 보고는 제부 들으라고 한마디 했다.

 "야 운동 좀 해. 너 운동은 나보다 더 잘했잖아. 제부가 50분 정도는 보내주겠지. 안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부가 등록 안 해준다면... 그건 두 사람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여동생이 지금 보다 더 건강하게 행복했으면 한다. 그래도 함께 있을 때 가면이 없어도 되는 편안한 사이임으로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가족임은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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