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언니 Jan 08. 2024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 인생 2막

전 남자친구는 공무원이었다. 아니 학생이었다가 경상도 공무원이 되었다. 남자친구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 나는 종로의 막내 치과기공사였고, 5년을 만나는 동안 2번의 이직을 하고 팀장직함을 얻었다. 남자친구는 경상도 지역의 국가직공무원이기에 우리는 장거리 커플이 되었다.

 남자친구 나이 31, 내 나이 27. 슬슬 결혼 적령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경기도나 서울 쪽으로 연고지신청을 해 놓아야 내가 있는 지역으로 전원신청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마저도 자리가 잘 나지 않아 사실상  윗지방 연고지 신청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민이 되었다.


‘이 사람과 결혼해서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그즈음 어쩌다 연락이 된 대기업 다니는 첫사랑 오빠와 몇 번의 만남이 있었고, 경찰이 된 대학동기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도 3번 정도 해봤다. 좋았다. 첫사랑오빠의 꿀 떨어지는 눈빛도 좋았고, 가까운 옆동네 사는 것도 좋았다. 경찰이 된 과동기는 카페 문을 잡고 내가 먼저 들어오게 해주는 것도 좋았고 오락실에서 동전을 미리 바꿔 주는 것도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경상도는 안 가도 될 것 같았다. 근데, 이상하게 그게 안되었다. 나를 이뻐해주는 남자친구와 헤어질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도 잘 안 들리고, 대학병원이 없어 불안하고, 친구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못 만나겠더라.


 결국, 운명을 점쳐보고 싶은 생각에 타로카드를 보러 갔다. 건대입구에 줄 서서 보는 타로점이었는데 그날 따라 줄이 엄청 짧았다. 오케이 날이구나!!

 ”무엇에 대해 알아봐 줄까요? “

“제가 남자친구랑 첫사랑 사이에서 고민돼요.”

“우선 그 첫사랑이라고 하는 남자 카드를 볼까요?”

 신중하게 몇 장의 카드를 뒤집었다. 딱 봐도 그다지 밝아 보이는 카드가 아니다.

“음, 여자친구가 있네요. 그 여자분은 이 남자분이 다른 여자에게 하는 행동들을 다 알아요. 남자친구가 어떤 행동을 해도 멀리 안 간다는 것을 알아요. 아마 손님은 이 남자분이랑 안될 거예요. 여자친구분이 보통은 넘어요. 손님이랑 남자친구 거 봐줄게요.”

또 몇 장의 카드를 뒤집었다. 타로점을 봐주시는 분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왜 다른 사람이랑 고민해요? 이 사람은 손님한테 모든 것을 해줄 사람이에요.”

“아 결혼하면 그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거기 가면 저에겐 아무도 없어요. “

“그 사람은 당신의 모든 관계를 대신할 수 있어요. 가족도 친구도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결혼하세요. 다른 사람 점은 볼 필요도 없어요. “

 타로가 원래 이렇게 정확하게 말해주는 점이었나?


주변의 모두가 말렸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친한지인들도 경상도 가서 잘 살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람을 좀 좋아했었어야지. 주말마다 집에 있던 적이 없었고, 장거리 연애라 그런가? 그다지 남자친구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걱정할 수밖에. 하지만 진짜 내 마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알 수 없는 결핍을 느끼며 들키지 않을 만큼 외로웠다. 내가 주는 애정이 늘 반도 안돼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쩌면 타로 언니의 단호박 같은 그 말.

“내 관계의 모두가 돼줄 거예요. “

그 말 덕분이었을 까? 스스로 결정이 선 나는 당당하게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 나랑 결혼 안 할 거면 200만 원 위자료 주고 헤어져 줄래? 23살에 만나 27살이 되었으니 내 청춘 다 갔다. 어떻게 할 거야?”

“ …그럼 결혼해야지 뭐.”


그렇게 나는 통영에 온 지 10년이 되었고, 애 둘의 워킹맘이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냐? 누가 묻는다면,

“요즘, 피부가 정말 좋아졌어.”

라고 말한다.




아! 이서방은 그때 그냥 위자료 줄 걸 이런다. (팍씨)



이전 13화 안녕, 2024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