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절엔 말 대신 눈빛이 있었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딱히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
마주쳤던 계절, 웃을 때의 눈꼬리,
쓸데없이 선명한 목소리까지.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사이인데.
그 사람과 처음 말을 섞었던 날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같은 공간에 오래 있다 보면 어쩌다 한 번쯤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그런 흐름 속에서
별다른 의도도 없이 시작된 대화였다.
근데 묘했다.
그냥 한 번 스친 눈빛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자꾸 그 사람 쪽을 보게 되는 거다.
딱히 뭘 한 것도, 뭘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이 움직였는지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좋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감정은 말하자면,
햇볕이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창문을 닫고 싶은 마음 같은 거였다.
쏟아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조금 멀어지고 싶어지는 마음.
그런데 동시에, 창문을 닫고 나서
왜 그랬을까 하고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게 되는 마음.
좋아하는 감정이 꼭
다가가는 용기를 주는 건 아니더라.
때로는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아지는 순간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선명히 느끼면서도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된다.
지금 와서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한다.
서로의 계절은 다르게 흘렀고,
그 사람은 어느 날부터
일기장에도, 꿈에도, 대화에도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비 오는 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
아마도 그건,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내가 조금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스럽고, 서툴고, 그러나 진심이었던.
우린 그냥,
좋아해서 더 어려웠던 사이였고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서로를 지나간 것이다.
아무 일 없었기에
더 오래 남아버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