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처음 만난 날, 붑커의 조카들 '알리'와 '야히야'는 나의 배꼽을 조금 넘는 키의 자그마한 꼬마들이었다. 집안에서도 강아지처럼 촐랑촐랑 뛰어다니고 바다에 갈 때도 내 손을 잡고 졸졸 따라걷는 모습이 참 귀여웠는데.. 그런데...
알리>> 나 44kg.
나>> 뭐?! 진짜?!
충격. 알리의 몸무게가 나랑 비슷하다. 언제 이렇게 자란거야?
이제는 키도 내 턱 밑까지 온다. 얼마 안 지나면 내가 우러러보게 될 것 같다.
야히야도 마찬가지다. 몸도 자랐지만,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가끔은 나보다 더 어른같다. 미술을 좋아하는 야히야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그래도 어려서 그린 그림은 어린 아이의 티가 났는데, 지금 그린 그림을 보면 만화가가 그렸다 해도 믿을 정도로 그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새삼 4년이라는 시간이 꽤 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뽀시래기 시절 알리와 야히야의 깜찍한 뒤태. 저러다가 침대 부숴서 붑커가 고쳐줬다고..
하루는 붑커와 함께 애들을 데리고 엘 자디다의 름디나 라크디마(Old city, 구시가지)에 놀러갔다. 이 곳에는 복작거리는 시장, 옷가게가 늘어선 상가, 길거리 음식이 즐비하다.
름디나 라크디마에 가면 꼭 해줘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역사깊은 성벽 위에서 사진찍기.
붑커>> 이쪽으로 올라와!
돌계단을 밟고 성벽 위로 영차 올라섰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성벽에 올라가면 바다냄새를 싣고 온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혀온다. 반대편 성벽에는 다이빙하는 청소년들, 바다에는 고기잡는 어부들이 보인다.
다이빙 준비!
나는 뒤를 돌아 아이들이 올라오는 걸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밀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올라와성벽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더이상 꼬마가 아닌 아이들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저 애들이 여기서 다이빙을 한다고 할 날도 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붑커>> 우리 사진 찍을까?
나>> 좋아!
바보 넷이서 기념사진 한장!
4년 전에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엘 자디다의 바다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평화롭고 왠지 모르게 정답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알리와 야히야는 이제 어엿한 소년들로 자랐지만 여전히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테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기도 하겠지만 그 마음만은 때묻지 않고 그대로이길.
4년 전, 엘 자디다 름디나 라크디마의 성에 올라 앉아서.
름디나 라크디마 름디나(city) 라크디마(old) '옛 도시' 라는 뜻. 훌쩍 자라난 아이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과 달리 름디나 라크디마의 성벽은 길고 긴 시간,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담]
알리&야히야. 둘은 친형제이지만 성격이 매우 다르다. '알리'는 재잘거리고 개구스러운 반면, '야히야'는 조용하고 가끔씩 사색에 잠긴다.
-진지하고 솔직한 야히야-
붑커, 나, 야히야는 새벽에 잠이 안와 셋이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또 장난기가 발동한 붑커가 갑자기 야히야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