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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09. 2022

헤드가 - 요리를 잘 하는 사람

모로코 여행기 #17

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결코 잘하는 건 아니고 즐기기만 한다. 요새는 유튜브만 보고 따라하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세상이라서 나같은 요알못도 집에서 간단한 음식은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라마단 시작 후 붑커네 가족과 함께 보낸 일주일 동안 나는 주방에서 (계속 얼쩡대면서 방해를..) 어머니와 누나를 도와드렸다. 모로코 전통 음식도 만들었고 피자나 케이크도 만들어 먹었다. 붑커는 치즈 케이크를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막내누나가 만든 케이크가 최고라고 자랑하곤 했다. 막내누나의 이름은 '나오엘'이다. 나오엘 누나는 초코, 오레오, 딸기, 레몬 등 다양한 재료로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준다. 그 중에서도 딸기치즈케이크는 한조각 먹으면 두조각 더 먹게 되는 맛이다.

입에서 살살 녹는 노오븐 딸기치즈케이크. 만들기 무섭게 다들 게눈 감추듯 먹어버려서 온전한 사진은 없다. 그만큼 맛있다.
붑커의 조카인 '오마이마'의 20번째 생일, 나오엘 누나가 만든 생일 케이크. 뒤쪽에 보이는 초코 케이크(빵집에서 산 것)보다 앞에 있는 누나의 생크림 케이크가 더 맛있었다.

요리를 '좋아'만 하는 나와는 다르게 나오엘 누나는 요리를 정말 잘한다. 이런 능력자를 모로코에서는 '헤드가'라고 부른다.


헤득 / 헤드가
'요리를 잘 하는 사람'
남성은 '헤득'
여성은 '헤드가'라고 부른다.



붑커네 가족 요리 서열 부동의 1위는 어머니시다.

지난 이야기인 '모로코의 빵을 소개합니다'에 나온 '바그릴'이라는 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로코 빵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 바그릴을 먹어본 건 마라케시의 호스텔 조식으로 나왔을 때이고, 그 뒤로도 길거리에서 몇 번 먹어봤지만 '그냥 먹을만 하다' 정도였을 뿐이다. 그런데 붑커 어머니의 바그릴을 맛 본 후부터 바그릴은 나의 최애 음식에 등극했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틈만 나면 '움미 바그릴 (엄마의 바그릴)'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세상 최고로 맛있는 움미 바그릴 (좌). 내가 만든 충격과 공포의 바그릴 (우).

한국에 돌아와 움미 바그릴이 그리워 혼자 바그릴 만들기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위의 사진처럼 처참했다. 일부러 맛없어 보이게 찍은거냐고 누가 물어봐도 할 말 없다...

붑커 어머니의 치킨 라이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치킨 라이스도 빼놓을 수 없다. 닭의 껍질과 지방은 깨끗이 떼어내고 레몬즙으로 세척하여 요리하기 때문에 느끼하지 않고 고기가 매우 부드럽다. 이 밖에도 쿠스쿠스(15화 '움미는 내편' 참고), 따진(8화 '임릴 그곳의 삶 참고), 하레라(6화 '알 함도릴라' 참고) 등 어머니가 해주신 모든 음식들은 밖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맛나다.


딱, 한가지.

'엇 이거 붑커 어머니가 만드신 것보다도 맛있잖아..? 대박이다. 그게 가능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음식이 있다.


바로 붑커의 치킨 라이스이다.

짝짝짝~! 이 여행기를 시작한 후로 처음 나오는 붑커 칭찬. (맨날 흉만 봤지..)        

아쉽게도 찍어 둔 사진은 없다. 비주얼은 어머니가 만드신 것과 비슷한데 더 촉촉하고 매콤하다. 취향의 차이일텐데, 나는 붑커가 만든 것처럼 찜닭에 가까운 걸죽한 치킨 라이스가 더 좋았다. 어머니한테는 비밀!

아무튼 붑커도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나름 '헤득'이다. 매번 장난친 이야기만 써서 그렇지 요리할 땐 좀 멋있다. 야채 다듬는 것도 나보다 훨씬 잘해서 내가 감자 3개 깎을 때 10개는 깎는다.     




어느 날은 한국 음식을 만들기 위해 나오엘 누나와 함께 마트에 재료를 사러 갔다. 가족들이 원하기도 했고, 나도 한국 집에서 만들어먹던 것들 중 뭔가를 만들어주고 싶기도 다.  같아선 떡볶이, 김치볶음밥, 소고기미역국 등 순수 메이드 인 코리아 음식들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모로코에서 떡, 김치, 미역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렇게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마늘. '대한민국' 하면 100일간 쑥과 마늘만으로 버텨 사람이 된 웅녀의 후손, 마늘의 민족이 사는 곳 아니겠는가. 나는 강릉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육쪽마늘빵' 만들기에 도전했다.

1)빵반죽을 주먹 크기로 동그랗게 뭉쳐서 오븐에서 부풀린 다음, 육쪽마늘 모양으로 칼집을 낸다.

2) 마늘을 잔뜩 다져넣은 달달한 소스에 준비된 빵을 푹 담갔다 뺀다.

3) 크림치즈에 난 칼집 사이에 가득 채워주면 완성.

'헤드가'인 나오엘 누나의 도움을 받아 육쪽마늘빵 만들기에 성공!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헤드가' 소리를 들었다. 가족 모두가 맛있게 먹어주어 고마웠다.


마늘빵의 성공에 자신감이 붙은 나는 며칠 뒤 마늘버터볶음밥에도 도전했다. 간장, 마늘, 버터, 기름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요리라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붑커는 처음에 '마늘 너무 많이 넣는거 아냐? 엥?그렇게 넣고  또 넣는거야?'라면서 마늘 냄새가 너무 강하다며 타박했다(어휴 잔소리쟁이). 그러더니 다 만든 마늘볶음밥을 먹어보고는 아주 맛있단다. 훗 역시 그럴 줄 알았지. 한국인의 마늘파워는 모로코에서도 통한다.




하루는 붑커의 조카들('알리'와 '야히야'-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해서 불닭볶음면과 비빔면을 만들어주었다. 리나라의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배낭속에 고이 모셔 공수해 온 귀한 것(?)이었다. 비빔면은 매콤새콤한 것이 그런대로 덤벼볼만 하지만, 불닭볶음면은 맵찔이인 나에게 너무도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다. 알리와 야히야가 걱정된 나는 소스를 절반만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 젓가락 먹어보더니 '흠, 괜찮아. 별로 안 매운데?' 이러는 게 아닌가..! 결국 소스를 거의 다 넣었다. 마무리로는 체다치즈 솔솔 뿌려 구색을 맞추었비빔면에는 반숙으로 찐 계란을 반으로 갈라 예쁘게 올려주었다.

드디어 시식시간. 호로록 호로록 맛있게 네다섯 젓가락을 먹어갈 때쯤 알리와 야히야가 벌떡 일어나 물을 찾기 시작했다. 이고.. 소스를 절반만 넣었어야 했구나. 아이들은 정신없이 우유를 들이키고선 두손두발 다 들었다.

붑커>> 하하. 애들이 졌다 졌어.  

애들이 남긴 불닭볶음면은 붑커의 차지가 되었다. 맵지도 않은지 물 한번 안 마시고 맛있다며 잘도 먹는 붑커.

귀여운 조카들한테 '헤드가'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예쁠 거 하나 없는 붑커만 배불리 먹여버렸네.  


모로코 여행 중
기막히게 맛있는 무언가를 먹었다면
만들어 준 사람에게 '헤득' 또는 '헤드가'라고
칭찬의 한마디를 건네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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