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제프리는 런던 중심에서 기차로 20분, 버스로는 1시간 넘게 떨어진 조용한 외곽에 살고 있었다. 키가 낮은 파스텔톤의 벽돌 집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고 작은 피시 앤 칩스 음식점 하나, 슈퍼마켓 하나, 술집 하나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예순을 넘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제프리는 그가 사는 동네만큼이나 차분한 호스트였다. 그는 잘 다듬어진 콧수염, 잘 빗어 넘긴 회색빛 머리, 빳빳이 다린 진갈색 양복을 입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저희 그.. 신발을.. 벗을까요? 말까요?"
현관문 앞에 어정쩡한 자세로 선 우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 괜찮아요. 편한 대로 하세요."
제프리는 온화하게 웃어주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묘하게 긴장한 상태로 집안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카우치서핑에서 집을 구하는 사람을 서퍼, 집을 제공하는 사람을 호스트라고 한다. 서퍼는 호스트에 대해 이미 그를 만나본 다른 서퍼들이 남긴 평가들을 읽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호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 파악한 다음 숙박 요청을 보낼 수 있다. 또한 호스트도 요청을 보낸 서퍼가 갖고 있는 다른 호스트들로부터의 평가를 살펴볼 수 있어, 이를 통해 서퍼가 보낸 요청을 수락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도 제프리에게 요청을 보내기 전에 그가 받아온 평가들을 쭉 읽어 보았다. 거의 200개에 달하는 평가를 받은 제프리는 수년 동안 수많은 서퍼들과 함께한 경험이 있었다. 거의가 좋은 평가들이었는데 그중에 눈에 띄게 나쁜 평가가 하나 있었다. 제프리가 서퍼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며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백개가 넘는 좋은 리뷰들을 믿고 제프리에게 요청을 보냈지만, 호평들 가운데 심어진 악평 하나가 흰 종이 위의 까만 먹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직접 만나본 '제프리'라는 사람은 악평 속의 제프리를 전혀 상상조차 하기 힘들 만큼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개인적 일정으로 우리와 런던 나들이를 함께하진 못했지만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런던의 교통, 관광, 맛집 등에 대한 풍성한 정보를 전해주었으며, 매일 샤워를 할 수 있게 따뜻한 물도 제공해 주었고 심지어 아침식사까지 챙겨 주었다. 깐깐한 사람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도 전혀 아니었다.
제프리와 우리는 다과를 나누며 자정이 되도록 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말고 또 한 명의 서퍼인 중국에서 온 '제이'도 함께였다. 제이는 맨체스터에서 유학 중인 작가였다. 어느 전시회를 보러 런던에 온 참에 제프리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하는데, 과거에 이미 한번 카우치서핑으로 제프리네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제프리와 제이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었고,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다가 또 한 번의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만나신 서퍼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우리의 질문에 제프리는 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좋은 쪽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먼저 했다. 그중에서는 제프리네 집에 각각 숙박요청을 보냈던 남녀가 있었는데, 그 둘은 제프리네서 지내는 동안 서로 가까워져 얼마 후 커플이 되었고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제프리는 나와 남편을 보니 그 커플이 생각난다며, 마치 신혼부부의 주례를 서는 어르신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면에 나쁜 쪽으로 기억에 남는 서퍼는 딱 한 명이 있다고 했다.
"나는 웬만해서 서퍼에 대해 나쁜 리뷰는 남기지 않는 편인데 그 서퍼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다음에 그를 만날 호스트들을 위해서라도 미리 경고를 해줘야죠."
제이는 이미 그전에 제프리에게 그 서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얘기가 나오기도 전에 누군지 알아챘다.
"아, 그 naked yoga guy요?"
맙소사. 벌거벗은 요가 청년이라니. 별명부터 심상찮은 그 사람은 제프리의 집 마당에서 아침 일찍 나체로 요가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해대던 괴짜였다고 한다.얘기를 들어 보니 그는 편집증 환자에 가까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제프리의 프로필에 있던 부정적 리뷰 또한 그 사람이 쓴 것이었다. 나 같으면 카우치서핑 팀에 연락하여 신고라도 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그의 온갖 기행을 참아주고 끝까지 내쫓지 않은 제프리의 인내심이 이제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런던에서 제프리와의 3일은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는 우리가 떠나는 날 공항으로의 교통정보까지 알아봐 주며 끝까지 성의를 다해 도와주었다. 물론 아침식사도 잊지 않고 차려주었다. 손수 만든 레몬잼을 먹어보라며 거듭 빵을 권하는 제프리에게서 손주를 챙겨주는 시골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서로의 평가 아래에 완성되는 카우치서핑 프로필은 이렇게 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좋은 평가만 받은 사람이라고 하여 나와 꼭 잘 맞을 것이란 보장도 없거니와, 나쁜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그 내용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도 없다. 서로를 직접 만나보기 전까진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 그러기에 더 조심스럽고, 그러기에 더 흥미진진하기도 한. 카우치서핑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오늘은 해보았다.
타워 브릿지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
타워브릿지에서 만난, 근위병 코스프레 중인 유튜버
구름에 닿을 듯한 런던 아이
Swiss clock
스카이 가든에서 내려다본 런던
빅벤이 보이는 공중전화부스 앞에서
괴팍하기로 소문난 근위병 말. 물릴까봐 주저주저 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