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페루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안 보겠다고?

페루- 쿠스코

by 소울메이트

"아~ 그냥 마추픽추 가지 말까?"


어려서부터 페루가 어딨는지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학교에서 공식처럼 외웠던 '페루-잉카 제국-마추픽추' 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잉카 건축기술의 정수.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불리는 마추픽추.

이런 마추픽추를, 힘들게 페루까지 다 와서는, 안 보고 그냥 가겠다는 말이 어떻게 나왔느냐.

사실 우리가 여행 계획을 빈틈없이 잘 직조하였냐 하면 그건 아니다. 장기 여행이다 보니 한두 달 뒤의 미래까지 구체적 일정을 짜기가 어려운 것도 있었고, 본래가 발 닿는 대로 그때그때 즉흥적인 단기 계획만 세우는 걸 선호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마추픽추도 그랬다. 중남미 여행 루트를 짤 때 '이때쯤에는 이 장소에 있겠지?' 하며 대강의 도시와 도착 날짜만 정해두었던 우리. 페루의 쿠스코에는 대강 11월 첫째 주에 도착할 테니까~ 때 가서 현장구매 하면 되겠지 뭐~ 이렇게 인터넷 검색 한번 해보지 않고도 평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0월 중순 경, 무슨 촉같은 게 왔던 건지 도 모르게 '페루 마추픽추 가는 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뒤통수를 강하게 맞았다.

"헉. 온라인 티켓이 있잖아?"

그랬다. 마추픽추는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었고, 그 경쟁이 로마의 콜로세움만큼이나 치열하여 몇 개월 전부터 이미 매진이 되며, 티켓의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만히 있던 마추픽추에게 괜스레 배신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현장예매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수량이 하루에 단 '천 장'이라는 게 문제.

마추픽추 현장예매는 며칠 전도 아닌 꼭 하루 전에만 할 수 있다. 어느 루트로 마추픽추를 보느냐에 따라 티켓의 종류도 다양하고, 시간대도 다양해서 그중 본인이 원하는 걸 미리 정하여 구매하면 된다. 물론 원하는 루트, 원하는 시간의 티켓을 쟁취하리란 보장은 없다..


마추픽추는 페루의 남동쪽에 위치한 쿠스코라는 도시의 근처에 있다. '근처'라고 표현했지만 페루 자체가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그마저도 차로 수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쿠스코로부터 마추픽추까지 쉽게 갈 수 있는 '잉카레일'이라는 기차가 가장 편한 선택지이다. 그게 아니라면 밴을 타거나 걸어서 마추픽추까지 가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의외로 이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여행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잉카레일을 타는 데 드는 비용이 굉장히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역시 잉카레일만으로 예산을 깎아먹고 싶지 않았기에 걸어서 마추픽추에 가 수밖에 없었다.


마추픽추까지 3일 간 캠핑을 하며 산길로 하이킹해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린다 싶어서 밴 + 3시간의 짧은 하이킹 루트를 택할 참이다.

먼저 쿠스코에서 아침 일찍 밴을 타고 '하이드로일렉트리카'라는 마을까지 간다. 이것만 해도 6시간이 걸린다. 길이 멀기도 하지만 더욱 오래 걸리는 이유는 도로가 거의 비포장이고, 거대한 산을 둘러 만든 구불길을 바퀴가 거의 낭떠러지와 맞물릴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드로일렉트리카부터는 이제 걸으면 된다. 3시간을 기차레일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면 '아구아스칼리엔떼'라는 마을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마추픽추 티켓을 구매하는 곳으로, 여행자들은 보통 이곳에서 1박 또는 2박을 한다. 티켓을 구했으면 익일 마추픽추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때 또 1시간을 하이킹해야 한다. 아니면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 입구까지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30분 버스를 타는 데 편도 12달러, 우리에겐 한 끼 식사보다도 비싼 큰돈이었다.


이러다 보니 '마추픽추 그냥 가지 말고 쿠스코에만 있을까?' 소리가 나온 것이다. 필 쿠스코는 예쁘기까지 해서 마추픽추를 굳이 못 보더라도 아쉬운 우리 마음을 충분히 달래줄 것만 같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론 이미 알고 있다. 페루에서 마추픽추를 거르는 건 갈비 없는 갈비탕을 먹겠다는 것과 같다는 걸 (갈비탕 먹고 싶다).

"흠.. 아니야. 그래도 여기까지 우리가 달려온 km가 얼만데."

주먹을 꾹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비싼 비용과 다소 귀찮은 방문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무려 마추픽추 아닌가 마. 추. 픽. 추.

"가야지! 암, 그럼!"


도착 직후 마주한 쿠스코의 야경

광장은 온통 할로윈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할로윈을 좋아하진 않지만, 분장한 아이들은 참 귀여웠다.


갑자기 제주대학교? 남미에선 가끔 우리나라 옷을 입은 현지인들이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끼를 입은 사람도 봤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의 고산 도시이다. 도착하여 처음엔 잘 느껴지지 않더라도 몇 시간 안에 두통, 어지럼증, 구역감 등의 고산병 증세가 나타날 수 있기에 바로 투어를 가는 것보다 하루 정도는 도시에 머물면서 고도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길 추천한다. 우리에게도 가벼운 두통과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쁜 증상이 있었다. 마치 가슴까지 물이 찬 상태에서 숨을 쉬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다행히 심하진 않았고 첫날이 지나니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전통복장을 한 주민들과 그 앞의 깜찍한 알파카 한마리


에스프레소 잔에도 알파카가 한 마리 두 마리..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림 같은 컷이 나온다.


선인장 위에 누워서 차력쇼를 선보이시는 길거리 공연자. 남편에게 위에 올라가서 좀 밟아달라고 요청을 하셔서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드렸다. 종목을 바꾸시면 안될까요 흑흑..






도시 조경으로만 본다면 여태 다닌 도시 중 쿠스코가 단연코 내 마음속 1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 내내 예쁘지 않은 순간이 없다. 그중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질 무렵 연보라색으로 변하는 돌길 위에 하나둘씩 들어온 조명이 비치는 때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곱만 떼고서 밴을 타러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갔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새들이 포로롱 포로롱 지저귀고 밤새 이슬에 젖었던 나뭇잎들 풀잎들이 아침햇살에 몸을 말리며 나는 향기가 상큼하다. 공원에는 조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평지 걷기도 힘든 이 고산에서 달리기라니, 현지인들의 폐활량은 대단하다. 새벽 4시만 넘어도 부옇게 하늘이 밝아오는 쿠스코의 아침은 그 어느 곳보다도 부지런하고 활기차다. 우리도 이 분위기를 타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기로 한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투어사에서 승객 명단을 다시 한번 확인한 다음 밴이 출발했다. 마추픽추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가보자, 마추픽추로!

이른 아침, 쿠스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