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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01. 2022

"비스밀라 (알라의 이름으로)"

모로코 여행기 #9

다음 날 아침.

눈곱을 떼며 거실로 나가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벌써 아침식사 준비를 마치고 계신다.

나>> 와! 나 이거 엄청 좋아하는데..!

오늘의 아침식사는 삶은 달걀 + 치즈 + 올리브 오일 + 모로코 전통 빵 '홉스'.

이걸 어떻게 먹느냐 하면, 달걀을 숟가락으로 잘게 으깬 위에다가 작은 치즈를 몇조각 뿌린 다음 그 위에 올리브 오일을 듬뿍 부어 빵에다가 찍어먹는다. 들어가는 것도 별거 없고 간단하지만, 고소한 달걀과 짭조름한 치즈와 부드러운 오일 각각의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번 맛보면 자꾸 생각난다. 취향에 따라 '커몬'이라는 약간 누런빛의 향신료를 뿌려서 먹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커몬을 뿌렸을 때가 그냥 먹을 때보다 2배는 맛있는 것 같다. 여기에 향긋한 나나(차에 넣는 민트향 허브)를 넣은 차까지 한 잔 마시면 훌륭한 아침식사가 완성된다. (점점 맛기행이 되어가는 듯한 건 기분탓이겠지.)   

우리는 바깥으로 의자와 탁자를 가지고 나와 그곳에 아침상을 차려먹었다. 달콤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면 지붕 너머로 보이는 눈 덮인 산에 햇살이 반사되어 투명하게 반짝였다. 예쁜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설산 아래에서의 아침식사


"알 함도릴라 (잘 먹었습니다)!"

함도릴라는 신께 감사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서 잘 먹었다는 인사로도 쓰인다.

테이블을 정리한 뒤 우리는 마을을 둘러보러 바깥으로 나왔다.

네모난 집들 사이사이로 난 경사진 흙길을 따라 내려가니 작은 연분홍색 건물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까 학교였다. 10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들 대여섯명이 학교 마당에 모여있다. 저 아이들은 공부하다가 답답할 땐 창 밖을 보면 언제든 광활한 자연을 볼 수 있겠구나.


자연이 주는 지형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지어진 베르베르 전통 가옥


베르베르의 전통 집들은 경사진 지형을 잘 이용하여 지어졌다. 바위를 치우거나 산을 깎지 않고 기울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지었기 때문에, 집들이 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듯한 모습이다. 집 짓는데는 돌과 진흙이 주 재료로 쓰이고, 지붕 역시 진흙과 나무, 지푸라기 등을 섞어서 평평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여름에는 열기를 쉽게 날려주고, 겨울에는 추위를 효율적으로 막아준다고 한다.

몇몇 집들은 아랫층에 가축을 키우기도 한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집을 나와 종종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는 닭들, 등에 포대를 싣고 주인을 따라가는 당나귀, 한가롭게 뛰어노는 염소들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고산지대의 골목길을 걷는 건 산책보다 등산에 가깝다.


1층에 가축을 키우는 집. 저 안에 동물이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붑커.


마을을 실컷 구경하고서 우리는 다시 마라케시 도심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가는 길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베르베르인들의 동네. 정말 좋았어. 잊지 못할거야.


산비탈에 기대앉아 바라본 고즈넉한 마을. 이런 곳을 요즘말로 뭐라고 해야할까. 산세권..?



자, 이제 출발해볼까.

"비스밀라."  

운전을 시작하기 전에 안전운행을 기원하며 항상 하는 말이다. 비단 운전 뿐 아니라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에 언제든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붑커의 어머니는 따진을 만드시기 전에도 '비스밀라', 장보러 집을 나서시면서도 '비스밀라', 하다못해 그저 바다로 산책을 나가실 때도 '비스밀라'를 잊지 않으신다. 또한 비스밀라는 식전에  "잘 먹겠습니다."의 의미로도 쓰인다.  



내리막길에서는 스릴이 두 배!


내려가는 길에도 경치가 끝내준다. 꼭 다시오고 싶다, 임릴.

내리막길이 더해주는 속도감에 한껏 스릴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느낌이 쎄하다. 신나게 달리던 차가 스르륵 가속을 멈춘다.

나>> 붑커, 왜 그래?

붑커>> 브레이크가 안 밟히는데?

헐. 고장이 나도 하필 해발 3000m의 좁디 좁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나다니.

붑커가 예민한 감각으로 고장을 알아차리고 급히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겼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저 아래로 자유낙하 할 뻔했다. 근데 브레이크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편도체도 같이 고장이 나버린 건지. 이 상황이 두렵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들고 그냥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나>> 하하, 우리 어떡하냐. 

붑커>> 그러게 어떡하지, 하하.  

잠시 고민하던 붑커는 방법이 있다며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붑커>> 알로, 함무다 (여보세요, 함무다).   

함무다는 붑커의 친형이다. '함무다'라는 이름은 '무함마드'와 같다. 붑커가 형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형이 자동차에 대해 빠삭하기 때문이다. 붑커는 형이 알려주는대로 자동차 보닛을 열고 뭔가를 열심히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보기도 했다. 그렇게 10분도 채 안되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브레이크는 다시 작동했다.   

"된다!!"

함무다의 도움으로 우리는 무사히 산을 빠져나와 평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함무다 형님.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그날은 운이 억수로 좋았다.   

어쩌면 그게 다 '비스밀라'의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비스밀라'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뜻.
운전, 요리, 여행 등 뭔가를 시작할 때 '비스밀라'라고 먼저 말하는데,
신의 보호를 받아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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