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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01. 2022

홉자 아지바 - 나눠 먹을 때 더 맛있는

모로코 여행기 #10

임릴에서 마라케시의 번화가로 돌아온 날 저녁.

마라케시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두 가지 음식 중 그 두 번째를 먹으러 제마 엘프나(마라케시의 유명한 광장)로 향한다. (첫 번째는? 탄지아. 자세한 내용은 <모로코를 사랑하는 이유> Ep.3 '탄지아-마라케시로 먹으러 오세요'를 참고해주세요.)


붑커>> 오늘 먹을 음식은 빵 속에 감자와 계란 등을 넣어서 만든 거야. 이름은 '홉자 아~~지바'

나>> 홉자 아지바?

붑커>> 아~~지바. 홉자 아~~지바.

나>> 홉자 아~~지바.

아랍어에는 'ع (Ayn, 아인)'이라는 '아' 발음의 글자가 있다. 이 글자를 발음할 때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야 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발음하는 '아'와는 소리가 다르다. 목이 멘 것처럼 쥐어짜는 듯한 소리라고 할까. 예를 들면 '살라모 알라이쿰 (안녕하세요)'을 말할 때 '살라모 알~라이쿰' 이라고 '알'에 강세를 줘서 발음하는 것이 정석이다. '홉자 아~지바'도 비슷한 경우다. 물론 나는 잘 못한다.

 

제마 엘프나는 밤산책을 나온 사람들, 구경나온 관광객들,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물건 파는 상인들로 시끌벅적하다. 야시장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했는데 붑커는 그 중 홉자 아지바 맛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걸상에 앉아 홉자 아지바 두 개를 주문했다. 그리고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것, 허브티까지.

곧 따끈따끈한 홉자 아지바 2개와 허브티가 나왔다. 전통 빵인 홉스를 반으로 갈라 그 속에 여러 야채를 잘게 다져넣은 모습이 샌드위치 또는 야채크로켓을 연상시켰다. 그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음.. 담백하고 질리지 않는 맛? 샌드위치보다는 조금 더 든든하고 크로켓보다는 덜 느끼하다.
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 옆에 처음보는 아이들 두 명이 슬며시 다가온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붑커에게 뭐라고 뭐라고 물어보더니, 붑커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가 앉아있는 걸상에 같이 걸터앉는다.  

나>> 애들이 뭐래?

붑커>> 돈이 없는데 얻어 먹을 수 있냐고 물어봐서 그러라고 했어.

아 귀여워. 그래서 슬금슬금 눈치봤던 거구나. 붑커는 홉자 아지바 두개를 더 시켰다. 아이들 둘 중 한명은 매운맛을 먹겠다고 해서 하나는 보통 맛, 하나는 매콤한 맛으로 주문했다. 물론 허브티도 포함이다.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다. 근데 저거 맛있어보이네. 저 매콤한 맛 홉자 아지바.

나는 먹고 있던 아이의 어깨를 톡톡쳐서 불렀다.

나>> 나 한입만.

착한 아이는 선뜻 맛보게 해주었다. 오~ 보통 맛은 약간 심심했는데 매콤한 맛이 들어가니까 훨씬 맛있잖아!

붑커>> 야, 애기꺼 뺏어먹지마. 하나 더 시켜줄게 하하하하하.

나>> 배불러서 하나 더는 못먹겠단 말이야~~

나도 안다. 나는 몸뚱이만 서른살인 철부지다.


빵을 다 먹어갈 때 즈음 붑커가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한다.

붑커>> 있잖아, 나 사실 돈 없어. 우리 도망쳐야 돼.

붑커가 개구진 눈을 하고서 또 싱거운 장난을 치려고 한다. 아유 나이가 몇인데..

근데 나도 또 이런 장난 좋아하지.  

나>> 진짜? 언제 도망가면 돼?  

붑커>> 하나 둘 셋 하면 튀어. 알겠지?

나>> 알겠어!

붑커>> 하나, 둘, 셋!!!

우당탕탕! 너무 실감나게 튀는 연기를 하는 바람에 걸상이랑 식탁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옆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댕그란 눈으로 우릴 쳐다본다. 악 쪽팔려.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우린 깔깔대고 웃어버렸다. 빵을 만드시던 사장님도 우리쪽을 바라보신다. 붑커가 우리의 도주계획을 설명하자 사장님은 껄껄껄 우리보다 더 크게 웃으셨다. 옆에서 우리가 사준 빵을 먹던 아이들은 얌전히 먹기만 한다. 아마도 속으로 '저 둘 조금 이상한 어른들 같아. 얼른 먹고 가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농담이다. 헤어지기 전 고맙다고 공손하게 인사까지 했다.)    




배가 든든해지면 입가심으로 우리가 찾는 그것.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가 모로코에는 없다. 어쨌든 후식을 먹으러 제마 엘프나의 전망 좋기로 유명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붑커는 매일 '딸리안' (소주잔만 한 작은 잔에 담겨 나오는 이탈리아의 진한 커피. 에스프레소.)을 한두잔씩 마신다. 커피를 잘 못마시는 나는 항상 주스나 차를 마신다. 딸리안 한 잔, 아보카도 주스 한 잔을 시켜놓고 3층의 테라스에 앉아 광장을 바라보았다.    


파노라마로 찍은 제마 엘프나


4년 전에도 이곳에서 주스 한 잔을 마시면서 야경을 감상했었다.
지금도 그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분주하고 사람 냄새로 가득찬 이곳 제마 엘프나가 나는 너무 좋다.

처음보는 두 아이와 함께 먹었던 홉자 아지바도 정말 맛있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있던가.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으면 두 배로 맛있다. 귀여웠던 아이들 덕분에, 그리고 우리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호쾌하게 웃어주셨던 사장님 덕분에, 나는 한번 더 그 맛을 찾게 될 것 같다.

 
근데 매운 맛이 더 맛있더라. 다음엔 그걸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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