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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03. 2022

"아나 쿠리야 (나는 한국인입니다)."

모로코 여행기 #12

3년 전 여름, 가족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울릉도' 하면 공식처럼 '오징어'를 떠올리곤 했었는데, 직접 다녀온 뒤로는 '울릉도' 하면 '갈매기!'로 공식이 바뀌었다. 울릉도와 독도 모두 어찌나 갈매기가 많은지 그 곳이 무인도라고 해도 갈매기가 하도 많아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급기야 독도에서는 어느 갈매기가 싼 똥이 아빠의 머리에 명중을 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어느 행인께서 '머리에 똥 맞았으니 오늘 복권이라도 사셔야겠다.'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곳 에사우이라에서는 갈매기 똥을 맞아도 복권사란 말은 못할 것이다. 직접 세어보진 않았지만 언뜻 보아도 울릉도보다 갈매기가 훨씬 많아서 조금만 재수가 좋아도(?) 똥의 간택을 받을 수 있을테니.    

똥 얘기로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에사우이라의 갈매기떼는 사실 도시의 미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주연 갈매기. 조연 갈매기. 특별출연 갈매기.


얼핏 보면 화면에 잔털이 붙었나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하늘 가득 비행중인 갈매기 떼.


요염한 야옹이에게 주연을 뺏긴 갈매기.


시원한 바람의 도시 에사우이라에 잘 어울리는 파란 보트들.


파랗게 칠해진 보트들이 정박되어있는 항구에는 수산시장이 한창이다. 그 입구에 자리한 작은 포장마차에 가면 멸치, 성게, 멍게 등을 그 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붑커>> 이 멸치 진짜 맛있어. 한 번 먹어봐.

붑커가 내민 작은 컵 속에는 올리브오일에 절여진 멸치가 들어있었다. 고추장에 찍어먹는 마른멸치나 빨갛게 볶은 멸치같은 건 잘 먹을 수 있지만, 축축한 멸치는 왠지 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멸치와 다르게 내 손바닥만큼 커서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나>> 윽 나 멸치 별로 안좋아하는데.

붑커>> 진짜 딱 한 번만. 조금만 먹어봐.

이 정도로 권하는데 안먹기도 그렇고, 앞에서는 포장마차 사장님이 우리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계시기도 해서 끝까지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그래 눈 딱 감고 한 번 먹자.

나는 가장 작은 조각을 골라 입에 넣고는 최대한 씹지 않고 삼키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

나>> 와 이거 뭐야?!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믿기지 않아서 한 조각 더 먹어보아도, 또 한 조각 더 먹어보아도, 계속 맛있고 점점 더 맛있다. 허겁지겁 먹는 나를 포장마차 사장님과 붑커가 흐뭇하게 지켜본다.

붑커>> 거봐 내가 뭐랬어. 이래서 뭐든지 해봐야 한다니까.

나>> 야 진짜 안 먹었으면 후회할 뻔.  

그리고 한 컵 더 먹었다고 한다.


에사우이라 강력 추천 주전부리
'수산시장 포장마차 멸치'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작은 컵에 올리브 오일+다진마늘+뭔지 모르겠지만 맛 좋은 향신료? 등을 넣고 절인 멸치를 담아준다. 고소하고 쫀득한 멸치와 중간중간 씹히는 마늘의 향에 중독된다.   



시장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면 좌판대에는 알록달록 이국적으로 생긴 생선들이 가득하다.
쭉 구경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뭔가를 둘러싸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웬 커다란 수레를 두고 경매를 하는 중이었다. 수레 안에는 손바닥만 한 것부터 팔뚝만 한 것까지 각종 생선들이 가득했다. 우리나라의 수산시장에도 이런 문화가 있던가..? 처음 보는 진풍경이 흥미진진했다.

내 옆에서 경매를 지켜보시던 한 아저씨가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다. 모로코에는 동양인이 거의 없어서인지 여행 중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자주 느낄 수 있다. 아저씨는 나의 국적이 궁금했는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신다.

나>> 아나 쿠리야 (저는 한국사람이에요).

며칠 전 붑커가 알려준 아랍어를 써먹고는 우쭐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한번 더 묻는다.

"제노비아? 샤말리아? (남쪽이요 북쪽이요?)"

남한이냐 북한이냐. 가끔가다 정말 몰라서인지 아니면 괜한 농담인건지 모를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막 대답하려는 찰나 붑커가 갑자기 끼어든다.

붑커>> 샤말리아 (북쪽).

아저씨 눈이 커진다. 아니 이걸 믿는다고?   

붑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뭐라뭐라 설명을 덧붙인다. 아저씨 눈이 점점 더 커지더니 "허이허이.. (모로코에서 '워메', '아이고' 이런 의미로 쓰이는 일종의 감탄사)" 이러시며 자리를 피하신다.

나>> 너 대체 뭐라고 한거야?

붑커>> '얘 북한에서 왔는데 사실 김정은 딸이고 지금 잠시 여행중이에요. 말 잘못 걸었다가 큰일날 수도 있어요.'라고 했어.

그날 나는 졸지에 김정은 딸이 됐다.   


"아나 쿠리야 (나는 한국인입니다)."

그 뒤에 이따금 따라붙는 'North or South?'라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짓게 되곤 한다.
부디 '아나 쿠리야'라는 한마디로 한반도 전체가 정의될 수 있는 날,   
더 이상 '제노비아(남쪽)' 또는 '샤말리아(북쪽)'라고 부연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인샤알라.    



[오랜만의 TMI]

아나 (나) 쿠리야 (한국인)

아랍어에는 be동사가 없어서 편하다.

그 대신 말하는 주체에 따라 그 뒤에 오는 명사 또는 동사가 변하기 때문에 배우기 참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힌다. 예를 들면 성별에 따라, '나는 한국인입니다.'를 말할 때 남성은 '아나 쿠리', 여성은 '아나 쿠리야'라고 한다. '나는 모로코인입니다.'를 말할 때도 남성은 '아나 마그리비', 여성은 '아나 마그리비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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