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메이트 Jun 05. 2022

"라 헤브덱" - 모두를 웃게하는 마법의 인삿말

모로코 여행기 #14

외국여행을 할 때 알아두면 편한 기초 표현들이 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너무 비싸요' 등등.

모로코를 여행할 때도 '살라모 알라이쿰 (안녕하세요)', '쇼크란 (고맙습니다)', '스마힐리야 (미안합니다)' 등의 표현을 미리 외워가면 좋을 것인데, 그 중에서도 정말 유용하게 쓰이는 말 딱 하나만 골라달라고 한다면 난 이것을 고르겠다.

"라 헤브덱"

라 헤브덱.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표할 때 쓰인다.
인삿말의 끝에 상용구처럼 붙여서 말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굉장히 자주 쓰이는 말이다.
표기할 때는 'Allah hafdek' 인데, 이대로 읽으면 '알라 하프덱'이다.
하지만 말할 때는 '라'와 '덱'에 강세를 주고 나머지는 약하게 발음하여
라↑ (헤브)덱↑ 이라고 들린다.  


어떨 땐 '쇼크란(고맙습니다)'보다 '라 헤브덱'이 더 자주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작별인사를 할 때에도 현지인들이 "브쓸라마(안녕히가세요)"라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라 헤브덱!"이라고 하는 것을 더 많이 보았다.

라 헤브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4년 전 붑커네 집에 놀러왔을 때였다. 그날은 붑커와 함께 시디 부지드 (Sidi bouzid. 엘 자디다의 아름다운 해변.)로 아침산책을 갔었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 이른 아침의 시디 부지드.


너 거기 왜 올라갔니..? 정답: 붑커가 부추겨서. (초딩 둘이 모이면 이래서 위험하다.)


모래사장을 지나 조금 더 걷다보면 낚시 명당이 나온다.


시디 부지드의 한켠에는 낚시하기 제격인 장소가 있다. 아침 일찍인데도 부지런히 낚싯대를 들고 자리를 잡은 아저씨 두 분이 계셨다. 우리는 뒤쪽의 바위에 앉아서 아저씨들이 낚시하시는 모습을 구경했다. 어렸을 때 아빠따라 갔던 낚시터에서는 아이스크림 푸는 주걱 비슷하게 생긴걸로 떡밥도 떠서 바다에 던지고, 반짝이는 가짜 미끼도 낚싯바늘 끝에 달고, 지렁이도 달고, 새우도 주렁주렁 달아서 온갖 방법으로 물고기를 유인했던 것 같은데. 모로코에서는 다른 방법을 쓰는지 떡밥도 없고 지렁이나 새우도 없었다.

나>> 물고기들을 뭐로 잡는거야? 우리나라에서는 지렁이 많이 쓰던데.

붑커>> 가서 한 번 볼래?

나>> 좋아!

가까이 가보니 바위 틈새에 고여있는 물웅덩이에서 건져낸 미역을 낚싯바늘에 끼워서 고기를 잡고 계셨다.

나>> 미역을 쓰다니 너무 신기해!  

내가 계속 흥미롭게 바라보자 붑커가 말했다.

붑커>> 직접 한 번 해볼래?

나>> 어떻게?

붑커>> 아저씨한테 가서 이렇게 말해. '살라모 알라이쿰. 라 헤브덱. 아 떼이니.'

나>> (뭐..뭔 떼이니?) 응? 살라모 알라이쿰.. 그 다음에 뭐라구?

붑커>> 라 헤브덱. 아 떼이니.

나>> 라 헤브덱. 아 떼이니. 이거 무슨 뜻인데?

붑커>> 라 헤브덱은 God bless you. 아 떼이니는 Give me that please. 가서 그대로 말해봐. 그럼 낚싯대 주실 거야.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붑커가 알려준 그대로 말했더니 활짝 웃으시며 흔쾌히 낚싯대를 건네 주셨다.


시디 부지드의 초보 강태공


바늘에 미역 키우는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아저씨


그 날 이후로 '라 헤브덱'은 내 뇌리에 박혀있었고 며칠 뒤 또 한번 제 역할을 하게된다.

붑커와의 작별 후 마라케시로 가서 여행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야시장을 구경하다가 기념품으로 아르간 오일을 사러 한 가게에 들어갔다. 다 고르고 나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흥정!

나>> 조금만 싸게 주시면 안될까요오오? (최대한 불쌍한 표정)

사장님>> 이게 그래도 싸게 드린건데요오오.. (아주 곤란한 표정)

조금 깎아주시기도 했고 너무 조르기도 민폐같아서 이정도에서 계산해야겠다하고는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나>> 쇼크란. 라 헤브덱. (감사합니다. 복 받으세요.)

그러자 사장님 눈이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졌다.

사장님>> 세상에! 그 말 어디서 배운거예요? 모로코에 친구 있어요?

족집게시네. 나는 붑커와 붑커 가족에 대해 얘기해드렸고, '라 헤브덱'은 붑커로부터 배운거라고 자랑했다.

사장님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나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한쪽에서 뭔가를 갖고오셨다.   

사장님>> 더 깎아주지는 못하지만 선물로 이걸 드릴게요. 색이 변하는 립스틱이에요. 즐거운 여행해요. 라 헤브덱.      

이것이 라 헤브덱의 힘이다.




모로코에 가면,
공항에서 스탬프를 찍어 준 직원분에게
카페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리면서 기사님에게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면서 호스트에게
'라 헤브덱'이라고 한 마디 건네보시라.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오늘의 TMI-

보다 친근한 표현으로 '라 헤브덱 아 셰리'가 있다.

상대방이 남자라면 '라 헤브덱 아 셰리', 여자라면 '라 헤브덱 아 셰르티'.

이 역시 붑커가 알려준 말인데, 무슨 뜻인지 정확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한 번은 카페에서 나오는 길에 직원분에게 '라 헤브덱 아 셰리'라고 했더니 붑커보고 '친구한테 이런말까지 알려줬냐'며 못말린다는 듯 웃으시더라. 아무래도 모로코의 슬랭인가보다. '어이쿠 형씨 복 많이 받으십쇼'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추측만 해볼 뿐이다. 어르신들께는 안 쓰는 것이 좋겠다.

 

이전 13화 알라후 아크바르 -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