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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04. 2022

알라후 아크바르 -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말

모로코 여행기 #13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는 '신은 위대하다'는 뜻으로, 아단을 시작하는 첫마디이다.  

'아단'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시간이 되었을 때 제마(이슬람 사원)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외치는 알림소리를 말한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는데 이른 새벽에 한 번, 낮에 두 번, 저녁에 한 번, 밤에 한 번인가.. 그렇게 하루 총 다섯 번이다. 요새는 아단도 현대식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알람이 울리도록 할 수 있는데, 붑커 어머니는 핸드폰에서 아단이 나올 때마다 슬라야(기도할 때 바닥에 까는 담요)를 정갈하게 깔고 그 위에서 기도를 하신다. 그리고 아단이 울리거나 말거나 쇼파에서 축구를 보는 한량 붑커...와 그 옆에서 졸고 있는 나. 이렇게 평소 같으면, 신실하신 어머니 빼고는 가족 모두 아단에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일 년에 딱 한 달. 다같이 한마음으로 아단을 목빠져라 기다리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라마단'이다.        


라마단
이슬람에서 일 년에 한 달,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을 하는 기간.
이슬람 달력으로 계산하는 거라서 매 년 그 시기가 바뀐다.
라마단은 음식을 먹을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삶을 짧게나마 느껴보고 그 고충을 공감하는 시간이다.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결코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고 그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금식 자체가 건강에 이롭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금식을 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해 뜨기 전의 이른 새벽에 아단이 울리면 그 때부터 금식이 시작된다. 그리고 저녁 7시 경의 아단이 울리면 금식은 종료된다. 이것이 바로 달콤한 해방의 소리인 저녁 아단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이유이다.     

라마단이 아마도 매년 한 달씩 미뤄지던가.. 그럴거다. 작년에는 3월 한달이었고 올 해는 4월 한달이 라마단, 내년은 5월이 될 것이다. 라마단 기간에는 모두의 삶이 한 템포 (아니 한 열 템포..?) 느려진다. 낮 동안에 금식을 해야하니 최대한 늦게 하루를 시작해서 최대한 늦게까지 야식을 먹다가 자는 생활패턴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거리의 명소들, 음식점들도 라마단에는 문을 열지 않거나 영업을 늦게 시작한다. 따라서 여행자들 입장에서 관광하기 썩 좋은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라마단의 문화를 고스란히 체험해볼 수 있기에 이 시기에 여행을 오는 것도 (배고프고)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나는 금식이라면 자신있었다. 왜냐면 여행 전 한국에 있을 당시 나의 식욕은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까. 원래 많이 먹는 스타일도 아니거니와 그땐 어째서인지 음식이 당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자신있게 붑커와 내기를 했다. 금식에 성공할 때마다 하루에 두 가지씩 나의 소원을 적립하기로. 물론 공평하게, 금식에 실패한 날에는 붑커의 소원이 두 가지 적립되는 것으로 했다. 하지만 금식이 결코 쉽지 않음을 곧 깨닫게 되는데.. 일단 모로코 음식이 입에 너무 잘 맞아서 식사량이 급격히 늘기도 했고, 거기다 라마단 기간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심지어 사진에 나오지 않은 저 옆쪽에는 빵을 위한 작은 탁자가 하나 더 있었다.


라마단의 첫 주를 붑커의 집에서 보내며 거의 모든 종류의 모로코 전통 음식을 먹어본 것 같다. 붑커의 어머니와 막내누나는 음식솜씨가 정말 뛰어난 분들이다. 그 뿐인가.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도 엄청 크셔서 집에 여러 손님이 오더라도 음식이 항상 차고 넘쳤다. 금식으로 위장이 텅텅 비어있는 상태에서 저 맛있는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상상해보시라. 난 말 그대로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었다. 매일 저녁을 그렇게 과식하다보니 자연스레 위장의 용적이 늘어나게 되었고 며칠 새 나는 붑커에 버금가는 대식가가 되어있었다(붑커는 먹어도 너무 많이 먹어서 엄마한테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계속 먹는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금식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다. 혹시나 식욕부진으로 고민이신 분들은 모로코에서 치유해 보실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과연 이 역경(?) 속에서 나는 금식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진수성찬의 유혹을 이겨내고 나는 올해 라마단의 첫날이었던 4월 3일부터 월경 시작일 하루 전날이었던 4월 19일까지 완벽히 금식하는데에 성공하여 34개의 소원권을 획득했다!
라마단일지라도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어린 아이들, 병으로 인해 금식이 어려운 사람, 월경을 하는 여성, 또는 임신한 여성은 건강을 위하여 금식을 하지 않는다. 월경 시작 이후로는 금식중인 붑커 앞에서 일부러 보란듯이 맛난 걸 먹으면서 골리는 재미가 있었다. '월경만 아니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충분히 금식 하고도 남았는데 나의 능력을 맘껏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자만하기도 하면서. 아유 내가 생각해도 내가 얄밉다. 근데 말만 저렇게 했지 실은 누구보다 Iftar (이프타르, breakfast)를 기다렸던 사람이 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붑커에게 지금 몇시냐고, 이프타르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아단소리가 들리면,

나>> 알라후 아크바르!!! Yay! My favorite song!

기쁘게 소리치며 식탁에 앉는 나였다.


알라후 아크바르
아단의 첫 시작부분이자 '신은 위대하다'는 뜻.
라마단 동안 Iftar(이프타르, breakfast)를 알리는
'알라후 아크바르'는 나의 favorite word,
아단 소리는 나의 favorite song이었다.


-여담 1-

Q. 붑커는 대체 얼마나 많이 먹길래 뒤통수까지 맞나요?

A. 어느 날, 가족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날도 한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차려먹었지요. 붑커는 뿌듯한 얼굴로, "이거 봐. 우리집은 항상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 누군가가 연락없이 갑자기 찾아와도 음식이 부족할 일이 없다구."라며 저에게 자랑을 했지요. 그 때 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어요. "그럼 너는 집에 오기 전에 꼭 좀 연락해라. 너 겁나 많이 먹어서 음식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제 말에 온 가족이 빵터지며 공감해주었답니다. 네. 이 정도입니다.  


Q. 금식을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금식 자체가 건강에 좋기 때문'인것도 있다고 하셨는데. 어차피 저녁 아단이 울리면 저렇게 많이 먹을건데 뭐하러 금식을 하나요?

A. 저녁 아단 이후에 먹는 Iftar(이프타르, breakfast)는 그날 낮에 못먹었던 끼니까지 보충하여 먹게 되므로 평소의 두배 가까이 많이 먹게 되는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마단은 이슬람 교도들이 낮은 암유병률을 보이는 이유로도 꼽힌다고 합니다. 이프타르 후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낮 동안의 금식의 효과는 있는가 봅니다. 간헐적 단식과 비슷한 원리인걸까요.    


Q. 사진 속 음식들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해요!

A.


① 르반: 묽은 플레인 요거트. 맛이 시큼하고 진하다. 사진 속의 르반은 바나나맛 르반.

② 멸치 튀김: 우리나라 추어탕집에 가면 사이드로 주는 미꾸라지 튀김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③ 슬라다 자르다: 감자, 당근, 오이, 비트 등 여러가지 야채를 가장자리에 얹고, 가운데에는 밥(옥수수, 파프리카, 참치캔, 마요네즈 등을 넣고 버무린 고소한 밥)을 놓아 알록달록하게 만든 영양만점 샐러드. 보통은 가운데에 밥이 놓이지만 사진 속의 샐러드는 특별히 생선찜을 가운데에 두었다.  
④ 넴즈: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그 안에 새우, 야채, 고기 등을 넣고 한입크기로 돌돌 말아 오븐에 구운 겉바속촉 .  
⑤ 쉬빠끼야: 모로코 전통 과자. 계피와 꿀이 들어가 우리나라의 약과와 비슷한 맛이 난다.  
⑥ 츠마라: 대추야자.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기로 유명한 과일. 이슬람 성인인 무함마드는 이프타르로 가장 먼저 츠마라 3개와 물 한잔을 마시곤 했다고 한다.  
⑦ 딸기와 오렌지를 갈아 만든 생과일 주스

⑧ 내가 만든 양파덮밥

⑨ 내가 만든 마늘볶음밥



-여담 2-

월경으로 금식을 며칠간 안하게 된다고 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어차피 월경이 끝난 후에 그 기간만큼 자발적으로 금식을 해야하거든요. 그야말로 조삼모사이지요. 남들 다 먹을 때 나 혼자 금식해야한다니 그게 더 슬플 거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했냐구요? 저는 월경을 마치기 전에 한국으로 도망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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