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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06. 2022

"움미(엄마)" - 움미는 내 편

모로코 여행기 #15

[잠깐! 욕설주의]

이번편은 비속어가 포함되어 미리 알려드립니다.

상스러운 표현을 하시는 분들은 가급적 읽지 않으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너무 궁금해서 난 꼭 봐야겠다 하시는 분들만 읽어주세요.   



"움미(엄마)~~~~~~!!"

붑커네 집에서 움미를 부르면 어머니께서 한달음에 달려오신다.

움미>> 붑커?!
날 장난으로 괴롭히고 있는 붑커를 발견한 움미는 한쪽 슬리퍼를 벗어들고 붑커의 등짝을 촵촵 때리는 시늉을 해주신다. 움미는 항상 내편이다. 붑커가 괴롭힐 땐 '움미!'를 외치면 당장에 나타나셔서 악당 붑커를 물리쳐주신다.



4년 전, 가족 다 같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붑커가 또 짓궂은 표정으로 나에게 장난을 건다.

붑커>> (다 마신 컵을 나에게 건네며) 나 물 한잔만 떠다 줘봐.

나>> 허얼. 

아오 저걸 때려 말어. 붑커를 한껏 째려보고 있던 그 때, 움미가 붑커의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따악' 소리까지 나도록 맘스터치해주셨다. 악당 붑커의 패배. 움미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하루는 붑커가 라바트(모로코의 수도, 붑커의 직장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동안 엘자디다 붑커네 집에서 나머지 식구들끼리만 맛있는 쿠스쿠스를 먹은 적이 있었다. 쿠스쿠스는 '스미다'라는 노란 좁쌀처럼 생긴 곡물과 함께 호박, 당근, 감자, 가지, 고기 또는 생선 등을 쪄서 커다란 쟁반에 담아 먹는 모로코의 전통 음식이다. 포슬포슬한 스미다에 촉촉한 야채를 올려서 뜨끈뜨끈 김이 올라올 때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달큰한 맛이 입안에 따뜻하게 퍼진다. 쿠스쿠스는 붑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해서, 우리가 쿠스쿠스를 만들어 먹은 사진을 보면 붑커가 몹시 배아파 할 것이 분명했다. 붑커의 막내누나와 나는 다 먹은 쿠스쿠스의 잔해를 찍어 붑커에게 보내서 골려주기로 했다.

찰칵. 텅 빈 쿠스쿠스 쟁반을 찍어서 붑커에게 전송.

흠. 그치만 뭔가 부족하다. 나는 누나에게 한장만 더 찍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진.

짠, Fxxx you 붑커. 약오르지?


붑커한테 배운 모로코식 Fxxx you다. 나는 배운 것을 잘 응용하는 편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밴댕이보다 소갈딱지가 좁은 붑커는 내가 보낸 사진을 고이 저장해두었다가 움미에게 일러바쳤다.

붑커>> 움미, 이거봐요. 얘가 나한테 이 사진을 보냈다니까 글쎄?

나>> 악 안돼! 움미한테는 비밀이라고..!

그렇게 나의 손가락 욕을 보고 만 움미. 하지만 움미의 등짝 스매싱은 붑커를 향했다. '너 이녀석 착한 친구한테 못된거나 가르쳐줬냐'고 하시며. 하하하. 자승자박이구나 어리석은 붑커야. 움미는 내 편이시란다 하하.     




움미는 나의 darija(모로코의 언어, 데리쟈)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나는 한국어와 영어밖에 모르고 움미는 데리쟈만 쓰시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에는 붑커의 통역이 필요했다. 하지만 움미와 단 둘이만 있을 때도 우리는 대화가 꽤 잘 통했다. 를 들면 이런식이다.


<예1>

움미네 옥상에는 작은 화분 네개가 나란히 서있는데 왼쪽부터 질베나(완두콩), 헤박(허브의 한 종류), 베본지(또 다른 허브), 스바르(선인장) 이다. 미가 하나씩 짚으면서 알려주시면 나는 그대로 따라한다. 그 중에 베본지를 가리키며 움미가 말씀하신다.

움미>> 베본지! 이스난!

그러면서 이 닦는 시늉을 하시는 움미. '이스난'은 '치아'라는 뜻이다. 아하! 베본지는 이를 닦을 때 쓰는건가?

나>> 이스난?! (똑같이 이 닦는 시늉 중)

움미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베본지 이파리 하나를 떼어서 나에게 씹어보라고 주신다. 아작아작 씹으니 치약처럼 상쾌한 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아하! 베본지를 씹으면 이 닦는 것과 비슷한 효과인가보군.

며칠 뒤 붑커가 집에 왔을 때 나는 베본지 이파리를 씹으라고 주었다.

붑커>> 이거 씹으면 이에 좋다고 누가 알려줬어?

나>> 움미가 알려주셨지.

붑커>> 오오. 근데 이거 나 주는거야?

나>> 응. 입냄새 제거에 좋다길래. 너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배운 것을 잘 응용하는 편이다.


<예2>

움미랑 바닷가로 산책가는길. 집에서 바다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이다.

움미>> (걷는 시늉을 하시며) 호르죠. 호르죠.

호르죠? 산책이라는 뜻인가.

나>> (똑같이 따라하며) 호르죠? 호르죠? 

움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호르죠'는 '밖으로 나가자'라는 뜻이다.

그렇게 움미와 손을 잡고 호르죠를 하던 중 길 건너편에 고양이가 보였다. 내가 고양이를 손으로 가리키자,

움미>> 므시샤! 므시샤!

라고 알려주신다. 고양이는 '므시샤'이다. 그런데 수신오류가 생겼다.

나>> 시샤?! (담배 피우는 시늉 중)

시샤는 물담배를 말한다. '므시샤'를 '시샤'로 잘못알아들은 나는 '오~ 고양이랑 물담배랑 똑같네?' 하면서 움미에게 열심히 담배피우는 흉내를 냈던 것. 두 단어가 다르다는 것은 나중에 붑커가 알려주서 알게 되었다.


이렇게 가끔 통신오류가 있기도 지만, 움미와 함께 있는 동안 데리쟈 실력이 실로 가장 많이 늘었다. 나를 마치 친딸처럼 아껴주시고 친근하게 대해주신 움미 덕분에 나의 마음도 활짝 열렸기 때문이 아닐까. 언어보다는 마음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면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움미. 바닷가에서 푸른 바다 빛깔 옷을 입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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