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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02. 2022

께치프 - 이웃에게 내어주는 나의 어깨

모로코 여행기 #11

해안 도시 '에사우이라'에 가기 위해서는 마라케시에서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남서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국도를 타고 달리다 보면 우리가 구글에 '모로코 나무'라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바로 그 사진 속 나무. '염소 나무'를 만나게 된다.

 

염소가 주렁주렁


저 나무는 아르간 나무이다. 아르간 열매를 먹으려고 올라간 염소들이 마치 나무에 열린 것처럼 보인다. 나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차를 세우자 나무 옆에 서 계시던 염소의 주인이 아기 염소 한마리를 품에 안고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밝은 누런색을 띤 아기 염소는 가늘게 메~~~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염소에게 심쿵당한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나는 홀린듯이 염소를 받아들었다.

나>> 얘 좀 봐! 너무 귀여워. 너무 귀여워!!


사랑스러운 아기 염소


모로코에서 염소는 '메쟈'라고 한다. 아기 메쟈는 낯가림도 없는지, 보들보들한 털을 쓰다듬어주자 쪼그만 혀를 내밀고 내 얼굴을 핥는다. 본래 동물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 이번만큼은 아기 메쟈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메쟈의 주인 아저씨는 나의 손에 아르간 열매 하나를 쥐어주시며 염소에게 먹이로 줘보라고 하신다. 나무에 올라가있던 메쟈 여러마리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애한테 열매를 쥔 손을 내밀었더니 날름 받아서 냠냠 맛있게도 먹는다.      


아기 메쟈의 메~ 소리가 귀엽다.


영상 속 대화를 짧은 darija(데리쟈, 모로코 언어) 실력으로 통역하자면,

붑커>> 쟤들이 먹는게 올리브(지툰) 인가요?

주인 아저씨>> 아뇨. 아르간이에요.

붑커>> 아~ 아르간.  

메쟈와의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준 아저씨께 사례를 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난다. 잘 있어 아기 메쟈.





에사우이라는 바다와 바람의 도시다. 역사 깊은 성곽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찬 바람이 밀어올린 드높은 파도가 철썩이며 성벽을 치고 올라온다. 일 년 내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에사우이라에서는 짓궂은 바람이 쓰고 있던 모자마저 날려버릴 수 있으니 꽉 잡고 있어야 한다.   


뒤늦게 자신의 모자가 날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챈 붑커 (=바보).


에사우이라에서는 하늘의 구름도 바람을 못 이기고 휘날리는 모양이다.


높은 성벽 사이로 보이는 하늘조각과 그 안에 그림처럼 날아가는 갈매기들.


황금빛 성벽을 따라 걷다가 왼편으로 보이는 터널같은 공간을 발견했다.

붑커>> 이런 걸 어깨 (shoulder, 께치프)라고 해.

나>> 어깨?

붑커>> 응. 께치프. 이웃을 위해 빈 공간을 남겨두는 거야. 옛날에 모로코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이웃집과의 사이에 일부러 이런 공간을 두었어. 꼭 필요한 때에 께치프를 이웃과 공유하기 위해서야. 예를 들면 너의 이웃집 딸이 결혼을 했는데 신혼집을 마련할 여유가 없을 때, 께치프에 그들이 집을 꾸릴 수 있도록 해주는 거지. 


지금은 남아 있는 께치프가 과거만큼 많지는 않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한번씩 보이는 께치프에서 여전히 모로코 사람들의 정을 느낄 수 있다.


'께치프'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을 때 우리는 '내 어깨에 기대'라고 말한다.
바쁜 세상살이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내어줄 수 있는 작은 '께치프' 하나쯤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채 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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