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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30. 2022

"임릴", 그 곳의 삶

모로코 여행기 #8

<지난 이야기>

물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아보카도 좋은 산동네 '임릴'.

그중에서도 더 높은 고산지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이 곳의 고도는 해발 3000m에 달한다.


구름을 뚫고 달려 목적지에 다다랐다.

오늘 머물 게스트하우스는 바로 이 곳에 있다.

길을 몰라 잠시 헤매고 있는데 그 동네에 사는 꼬마아이가 주차하는 것, 게스트하우스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많아야 7살이나 되었을 것 같은데 얼마나 똘똘한지 모른다. 덕분에 숙소까지 금방 도착했다. 우리는 작은 용돈으로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을 했다.    


숙소를 찾아 가는 길, 귀여운 꼬마의 뒷모습.



"살라모 알라이쿰~"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 아저씨께서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부엌에서는 손님을 위한 웰컴티와 따진(도자기 쟁반에 고기 또는 생선과 함께 여러 야채, 향신료를 넣고 고깔모자 비슷하게 생긴 뚜껑을 덮어 푸욱 쪄낸 음식. 나는 닭고기 따진을 가장 좋아한다.)이 맛좋은 향을 솔솔 풍기며 만들어지고 있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짐을 풀고 숙소를 구경했다. 아담한 거실, 작은 방들, 조금 낮은 듯한 천장,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계단을 통해 2층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고요한 마을에 홀로 울려퍼지는 아단.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구름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때마침 마을의 작은 제마(이슬람 사원을 일컫는 말)에서 아단이 흘러나와 산골마을의 적막 속으로 울려퍼진다. '아단'은 기도시간이 되었을 때 제마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외치는 소리이다.

아단이 끝나갈 즈음 따진도 완성되어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먹음직스러운 따진.


식사를 마치고 손을 씻는데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나>> 응..? 붑커! 여기 따뜻한 물이 안나오는 것 같아.

붑커>> 맞아 여기 온수 안나와.

띠용.

나>> ...여기 혹시 난방도 안돼..?

붑커>> 맞아 여기 난방시설 없어.

띠용.

뭐라구?! 지금 내가 잘못들은건가? 잘못들은거지? 그렇다고 해줘...

마라케시의 도심은 초여름 날씨여서 한낮이면 반팔차림으로 돌아다녔지만, 이곳은 눈 쌓인 해발 3000m의 고산지대라 우리나라 12월의 날씨와 비슷하다. 그런데 난방이 안된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샤워는 당연히 할 수 없었고 결국 찬물로 어찌어찌 세수만 했다. 윽 볼이 얼어버릴 것 같아. 아까 만난 꼬마의 양 볼이 발갛게 터 있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나>> 붑커, 그럼 여기 사는 사람들은 추워서 어떻게 살아?

붑커>> 다 그렇게 적응하고 살아. 여긴 무척 가난한 곳이야. 전기도 겨우 들여와서 쓰고, 보일러는 없는 집이 대부분이지.  

나>> 그렇구나...

'다 그렇게 적응하고 살아간다'는 붑커의 말은 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붑커는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삶에 여유가 생겼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매일같이 울었다고 한다. 붑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써보고 싶지만 당사자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하다. 후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게 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유년기를 주제로도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내 친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그 고비를 지혜롭게 이겨낸 그와 그의 가족모두가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시기에도 붑커의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이 학교만은 절대 빠지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더 긴 이야기를 쓸 수는 없으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붑커의 유년기는 그야말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극심한 가난'을 뛰어넘는 정도였다.



임릴 고산마을의 베르베르인들도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엽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외부인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들의 삶이 풍족하지 않아보이는 것 뿐, 그들은 이미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지만 몸을 누이고 쉬어갈 집이 있고, 순박한 이웃들이 있으며,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보다 과연 내가 더 '잘' 살고 있는 것이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들만의 방식과 지혜가 담긴 고유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멋있기도 하다.





"읍.. 아이고 추워."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냉기가 가시질 않아 방에 있던 이불 6장을 겹쳐 덮었다. 모로코의 이불은 두텁기도 한데 그것을 6장이나 덮으니 그 무게에 약간 숨이 막힌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손발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조금은 아늑해진 이불 속에서 나는 번데기처럼 웅크리며 달콤한 잠에 빠졌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니까.

그치만 '이런 날씨에는 뜨끈한 온돌방에서 등도 지지고 이불속에서 귤 까먹다가 자야되는데'하는 생각도 드는 걸 보면 역시 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다음 이야기>

다음 날.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차를 타고 내려가는 중. 내리막길이 더해주는 속도감에 한껏 스릴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느낌이 쎄하다.    

붑커>> 브레이크가 안 밟히는데?

뭐?!

우리... 돌아갈 수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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