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는 항상 좋은 것일까?
나의 취미는 카페에 가는 것이다.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거나, 글을 쓰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학부 시절 공부할 땐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갔다. 특히 스타벅스에 가 콜드 브루 벤티 사이즈 그리고 클라우드 치즈 케이크로 하루 종일 공부하다 보면 온 몸에는 커피 냄새로 가득했다. 마치 걸어 다니는 카페 같았다. 요즘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에 개인 카페를 종종 찾는다.
주말이라 낮잠을 푹 자고 집 근처 새롭게 생긴 개인 카페를 찾았다. 플랫화이트에 꽂혀 주문을 하고 노트북을 켜고 앉았는데 달콤한 냄새가 널리 퍼졌다. 그래서 판매하고 있는 디저트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왜냐면 주문할 때 디저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현재 디저트는 준비 중이라 판매하는 것이 없고 테스트로 구운 쿠키뿐이라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지금 구운 쿠키를 맛 볼 생각이 없냐고 말씀하셨다. 난 돈을 주고 사 먹을 생각이었기에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데 쿠키를 맛보라고 가져다주셨다. 괜찮다고 또 말씀드렸으나, 자리에 올려주시길래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너무 부담스러워 결국 쿠키는 건드리지 않고 음료만 마신 후 가게를 나와버렸다.
이런 나의 선택을 보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공감'과 무례하게 굴었다는 '비판'이 공존할 것이다. 먼저 내가 이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난 호의를 얻었으나, 원치 않은 베풂이라 부담을 느꼈다. 분명 쿠키를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나의 의견은 호의라는 이유로 묵살되었다. 갈등 상황에서 나의 주장이 묵살당하면 왜 무시하냐고 화를 낼 수 있지만, 베풂 속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먹으라고 준 쿠키를 보고 괜찮다고 이야기한 날 무시하냐고 따지는 건 미친놈이나 다를 게 없다.
물론 사장님 입장에서 맛보라고 준 쿠키가 그대로인 모습을 보고 속상하셨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면 판매하기 전 쿠키 맛은 어떤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을 것이고, 새롭게 오픈한 카페를 찾는 손님을 유지하기 위한 사장님의 노력을 무시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싫었으면 받자마자 바로 돌려주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저 덩그렇게 놔둔 것은 실례한 것이다.
그리고 디저트를 판매하냐고 물어본 것은 내가 디저트를 먹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장님은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채시고 디저트를 가져다준 것이라 짐작해본다. 디저트 먹고 싶은 사람에게 디저트를 공짜로 주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취미 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베풀어준 사장님을 생각해 쿠키를 먹어야 하는 게 맞는지, 처음에 한 내 주장을 굳히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음료 하나 더 주문해 쿠키 값을 간접적으로 지불하고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도 생각해보았다. 두 번 다시는 이 고민에 빠지기 싫었기에 결국 난 이 카페를 다시 찾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게를 나갔다.
업무를 수행할 때도 예기치 못한 호의가 종종 찾아온다. 특히 난 구매 관련 업무를 하고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입사하자마자 받은 교육 중 하나는 바로 '리베이트 쌍벌제'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일 할 때 업체로부터 뇌물 받지 마라'이다. 적게는 몇백만 원, 많게는 몇십억이 오가는 거래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에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였다. 중앙일보에서 쓴 '선물, 호의 베푸는 건 좋지만 …'이라는 글이다. 아래는 글을 읽고 공감이 간 부분을 발췌해온 것이다. (발췌한 글은「」로 표시했다.)
「흔히 대가 없이 제공되는 금품은 뇌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 프린스턴대 석좌교수(역사학)는 그의 저서 『선물의 역사』를 통해 ‘목적 없는 선물은 없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1872~1950)도 선물을 뜻하는 영어의 ‘gift’가 독일어에선 ‘독약’이라 해석된다며 “받고도 답례를 하지 않는 선물은 예속이나 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효도나 박애, 모성애마저도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으면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느낀 부담감은 주말에 카페를 갈 때마다 쿠키를 받은 호의로 이 카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발생했다. 물론 사장님의 호의가 넌 쿠키를 받았으니 다음에도 와야 해!라는 생각으로 베풀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난 그렇게 느꼈으니 위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항상 카페 사장님처럼 행동해왔다. 아니 카페 사장님보다 더 심했다. 친하든 처음 보는 사이든 무조건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다. 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한 것이 바로 과도하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를 돕는 걸 정말 좋아한다. 어려움에 빠진 누군가를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돕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그때 따라오는 성취감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코로나로 교환학생이 취소되고 갑작스럽게 취업준비를 할 때 대학교와 대학병원 교직원을 준비한 이유도 학생과 환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런 내 모습으로 생긴 오해가 나에게 정말 큰 상처로 돌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난 뼈저리게 후회했고, 스스로 심하게 자책하게 되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다 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날 바꾸려고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과 말을 하곤 했다.
나 자신을 부정하고 방황하는 과정은 정말 최악이었다. 청소년기도 아닌 데다 일과 이직 준비를 병행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 안되면 그 당시 근무하던 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지라는 나약한 생각을 항상 해왔다. 그러나 너무 감사하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렸고, 2021년이 끝나기 전 이직을 성공하였다.
최근 유튜브에서 '바퀴 달린 입'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가장 최근에 본 회차에서 서툰 연인과 능숙한 연인 중 누구를 선호하냐는 주제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였고, 곽튜브를 제외한 모든 참가자는 능숙한 연인을 선택했다. 이용진은 서툰 연인을 선택한 곽튜브와 이야기하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배드민턴을 칠 때 서로 치고 받아칠 줄 알아야 배드민턴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할 줄 모른다고 가만히 서 있는 상대방을 보면 답답하지 않냐?'
이야기한 내용과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난 저 말에 너무 공감이 갔다. 상대방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먼저 파악한 후 호의를 베푸는 게 당연하다. 상대방이 배드민턴을 칠 줄 아는지 모를뿐더러, 배드민턴을 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배드민턴을 가르쳐 주겠다고 접근하면 그건 도움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돕고 싶은 마음으로 다가갈지언정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일관되게 하는 말씀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실수를 반복해서 똑같은 상처를 받는 멍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