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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22. 2024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

    

말과 글은 언어를 표현하는 두 가지 주요 방식이다. 말은 일상 대화나 구두로 이루어지는 언어 형식이며, 글은 문자로 쓰여서 표현되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식을 다 조합해야만 했던 사람이 있으니 이른바 연설문 작성가다. 말로 전달해야 하는 연설을 글로 쓰는 사람이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의 저자 강원국은 대우 김우중 회장,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사람이다.    

그는 기업의 회장과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며 나름 깨우친 ‘말과 글은 한 쌍’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에 대해 얘기한다.           


말처럼 술술 나오고 이해가 잘 되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     


나는 내 글쓰기 원칙으로 KISS~Keeo it simple and short를 언급하기도 했다. 복잡한 묘사나 긴 문장 대신 가능한 짧은 문장으로 전달하기는 어쩌면 말하기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입으로 말을 하거나 손으로 말을 하는 글쓰기나 다 같이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이라 본다. 둘이 표현 형식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은 생각의 회로와 추론 과정을 거쳐 나오는 결과물이다.


그래서 나도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본다.
왜냐면 사고력과 추리력에다 어휘력, 표현력이
말하기와 글쓰기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알고 생각하는 만큼 말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내성적인 수줍은 성격이나 말하는 방식과도 연관이 있기에 말과 글의 표현능력이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뛰어난 작가들이 다 달변가는 아닐 것이고 말이 다소 어눌하게 들릴지라도 글의 깊이나 작품은 뛰어날 수 있다. 반면 정작 자신의 글보다도 수사적 즉흥적 표현이 뛰어나 말이 더 화려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말과 글을 같이 보기에 예로부터 사람의 용모와 말과 글로써 판단하는 신. 언. 서. 판이란 인재등용의 기준이 있었다 본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책 내용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참고로 언어의 두 가지 기능인 말과 글, 즉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를 언급하고 지나가려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구어체인 말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나 모든 일상적인 상황에서 사용되는 언어 소통 형식이다. 해서 누구나 쉽게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어휘를 사용한다.

반면에 글은 정확하고 보다 격식 있는 어휘를 사용하여 말보다는 보다 구조적인 문장으로 글의 목적과 내용을 전달 한다.      


그러니 여기서 저자가 ‘말하듯이 쓴다’고 해서 서로 다른 두 언어형식을 모르고 글을 쓰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님을 알고 책을 읽어야겠다.     


저자의 의도가 두 차이를 모르고 하는 글쓰기 조언이 아니고 다만 어차피 말로 전달될 글을 썼던 저자의 직업이 전직 연설문 작성가였던 것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본다. 그래서 그는 연설처럼 전달이 가장 쉽고 명확하며 효과적인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글이 논리적인 문장 구조로 명확하고 문법에 맞는 표현을 사용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에 말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말은 줄임말, 감탄사와 감정을 나타내는 몸짓이나 억양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도 함께 사용한다. 그러니 글 보다도 말로써 훨씬 생동감 있고 친밀한 느낌으로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듯이 쓴다’는 것에는 이러한 언어의 두 기능을 다 사용하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름 짐작해 보았다.


책 서두에서 저자는  제목의 뜻을  ‘말하듯 자주 글을 쓴다 , 말하듯 구어체로 자연스럽게 쓴다, 먼저 쓸 내용을 말해보고 쓴다’ 등으로 밝혔다.     



     

저자는 말하듯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세심히 잘 관찰하고 나아가 공부한 것을 자기화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부한 내용을 연결, 결합, 융합해 보는 사유와 사색의 시간을 거쳐야 하고 그에 대해 반론, 비판, 반박, 비평도 해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말하듯 자연스럽게 자기화된 글이 흘러나올 수 있을것이기에.


그리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나 또한 격하게 동감한다.


누구나 겪는 일이건 개인적 특별한 경험이건 상관없이 거기서 얻는 통찰이 있을 때 그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이나 감동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글 쓰는 강력한 동기와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

  

통찰은 퍼즐처럼 흩어졌던 조각들이 맞춰지며 갑자기 한 그림으로 떠오르거나, 아 그래, 바로 이거였지 '유레카' 하면서 불현듯 사물의 본질이나 일의 원리,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는구나' 하며 사태나 사건을 일으킨 구성요소 사이의 인과관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이나 시각을 얻기도 하고,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모르고 지나쳤던 일의 의미나 배경, 맥락을 이해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러면 되겠구나' 하며 해법이나 대안을 찾고, 문제의 원인과 이유를 깨닫기도 한다. '앞으로 이렇게 되겠는데' 하며 예상하고 전망하거나, 유추하고 추론하기도 한다. 46쪽  

                  

글을 쓸 때 우리는 누구나 두려움과 주저함이 생긴다. 그런 면에 대해서 저자는 그냥 거침없이 쓰라고 권고하며 자신감이 부족해서 오는 두려움은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다스리라고 말한다.     


1. 이것 못 쓴다고 죽고 살 일 아니다.

2. 양으로 승부를 가리자.

3. 말하듯 쓰자.

4. 글은 쓰다 보면 언젠가 써진다.

5. 글쓰기는 뒤로 갈수록 속도가 난다.

6. 지금까지 늘 써왔고 반드시 썼으므로 나는 나를 믿는다. 등등     




이 외에 내가 책에서 도움을 얻은 은 저자의 창조를 위한 모방에 관한 부분이었다.     


모방의 네 가지 유형     

첫째, 바꾸기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변형하고 응용하며 재배열한다.
줄이거나 쪼개서 A를 'a'나 'A+'로 만든다.
새로운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바꾸고 변형한 끝에 나온다.
돌덩이가 구르는 것을 보고 바퀴가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둘째, 섞기다. 이미 있는 A와 B를 결합해 'A+B'를 만든다.
이때 A와 B는 여전히 내 글 안에 존재한다. 일종의 편집이고 물리적 결합이다.
이를 위해 나는 쓰려는 글과 비슷한 주제의 글을 먼저 스무 편 정도 읽는다.
파스칼은 배치만 바꿔도 새로운 것이라고 했고
몽테뉴도 꿀벌은 이 꽃 저 꽃에게서 꿀을 얻지만, 꿀은 꽃이 아니라 벌의 것이라고 했다.     
셋째, 녹이기다. A와 B를 융합해 'AB'를 만든다.
이렇게 녹여낸 글에서 A와 B는 보이지 않는다. AB가 있을 뿐이다.
나는 2019년 SNS에 2,000개가 넘는 글을 썼다. 이 조각들이 녹아 지금 이 책이 되었다.      
넷째, 낳기다. A와 B가 결합해 'C'를 잉태하는 경우다.
생물학적 해산과 같으나
산고대신 고찰하고 생각이 발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 112쪽 참조   



이는 저자가 회사에서 보고서 쓸 때 주로 사용했던 방법인데 사실 지금 쳇 지피티를 이용 검색해서 나오는 다량의 정보를 기반으로 글쓰기를 할 때도 이 네 가지 방법은 다 무척 필요하고 유용하다 본다.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방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안에 있다. 그러나 모방이 단순한 복제여서는 안 된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 들어가야 하고, 그래서 이전 것보다 더 뛰어난 창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저자는 <불후의 명곡> 프로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래에 비유한다. 가수들이 나와 '명곡'을 다시 부를 때 원곡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것이 가미되어야 창조적 모방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모방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나은 것을 따라 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충동이고 배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글쓰기도 그렇게 서로 좋은 것을 모방하며 자라 간다.      


어쩌면 모방은
신의 창조를 감상하고 공감하며
자신 또한 이상적인 작품을 통해
신께 나아가려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말하는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글쓰기     


흔히 "중학교 2학년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라."라고 하는데 지금은 중학생들 수준이 높아져서 더 낮춰서 초등학교 2학년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세 유형의 사람이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사람, 어려운 걸 더 어렵게 말하는 사람,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통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에 말을 어렵게 하는 세 번째 유형이 가장 유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말이나 글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청자나 독자의 책임이 아니라 말하고 글을 쓴 사람의 잘못이다. 왜냐면 독백이나 일기장이 아니라면 일단 발화된 말이나 발행된 글은 읽는 독자나 청자를 염두에 두고 일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개요 짜기     


개인적으로 나는 머리가 아닌 손으로 쓰기를 믿는다. 열 번 중 한 번 정도만 개요를 적고 시작한다. 대부분 개요 없이 그냥 신속하게 써 내려가는 편이다. 마치 자동기술처럼 그냥 써 내려간다.

뉴런 신경회로처럼 쭉쭉 뻗어나가는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때론 미친 속도로 단락도 없이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다 다 쏟아내고 나면 한숨 돌리고 문단을 나누고 빠진 연결어도 넣고 그 다음에 차례로 반복된 표현, 앞뒤가 안 맞는 표현들을 고르고 수정한다.     


글을 쓰기 전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개요를 짜는 것은 가장 전통적인 글쓰기 방법이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요를 짜고, 그러고 나서 글을 쓰고, 고치라는 게 글쓰기의 정석이다.     

이렇게 집을 지을 때 설계도가 필요하듯, 글을 쓸 때도 설계도인 개요가 있어야 한다는데 사실 나 자신도 정확한 설계도 없이 조립식 집 짓기처럼 글을 쓰는 편이다.

집 지으면서 별채도 창고건물도 덧 붙여 나가는 식으로 하듯 글쓰기를 한다.     


저자도 개요를 굳이 쓰지 않는다며 때로 개요작성에 드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 작가 EL 닥터로의 말은 아름다운 인용이 될 듯하다 

"소설 쓰는 일은 밤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데까지만 보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게 소설 쓰기다."

유명한 소설가 하루키도 개요 없이 써 내려가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다 작가적 영감과 타고난 감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어느 정도의 글쓰기의 개요는 필요하다 본다.    

 

쓸데없는 말, 군더더기가 없이 바로 직격탄으로 날아와 감동을 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을 생각하며 그런 대통령의 연설문을 위해 사용하던 개요 짜는 방법을 소개해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번호로 개요를 작성했다.

큰 줄기가 되는 단어나 문구에는 '1번', '2번', '3번' 등으로 번호를 매기고, 그 아래로 들어갈 하위 항목은 '1-1번', '1-2번', '1-3번' 등으로 표기했다. 생각이 더 새끼를 치면 '1- 1-1번', '1-1-2번', '1-1-3번' 등까지 쓰기도 했다.     


마치 논문 쓰듯 구체적, 계획적이고 논리적이었던 개요방식 덕분에 그런 촌철살인의 명확한 표현과 논리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연설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저자는 말하듯 편하게 글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처음부터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아주 못 쓰지만 않으면 된다. 쓰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고, 때론 맨땅에 머리 박는 일이라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쓰고 나서는 고칠 수 있다. 어차피 나 외에는 아무도 나의 초고를 보는 사람은 없다.      


헤밍웨이는 "내 초고는 다 걸레요 쓰레기다" 라며 수십, 수백 번을 고쳤다. 원래부터 잘 쓴 글은 없다. 다 잘 고쳐 쓴 글만 있다. 그러니 좋은 글은 얼마나 잘 고치는 가에 달려있다.    

 

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고친다. 모니터로 보면서 고치고, 출력한 종이로 보면서 고치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고친다. 처음부터 보기도 하고 뒤에서부터 보기도 하고, 그래도 안심이 안 되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시차를 두고 고치는 걸 권한다. 그러나 매 번 당일이나 전날 글을 쓰기에 퇴고시간이 부족하다. (오늘 이 글은  브런치 글쓰기 사상 처음으로 저녁에 발행하는 글이다. 주말일정 후 피곤하기도 했고 어젯밤 이 책을 겨우 완독하고 나서 쓰기 시작한 탓에 글 발행이 더 늦어졌다 ㅠㅜ)      


실제로 아무리 완벽한 글도 다시 보면 반드시 고칠 대목이 있다. 그러니 퇴고는 걸리는 시간보다는 횟수가 중요하다. 글과 멀어졌다가 다시 보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저자가 책상에 붙여두고 보던  퇴고 목록이다.     


1. 제목은 적절한가.

2. 사실에 오류는 없는가.

3. 빠뜨린 내용은 없는가.

4. 핵심 메시지나 결론은 명확한가.

5. 글의 목적에 부합하는가, 등등인데 내 경우엔 이 밖에도 조사나 어색한 연결어등을 주로 많이 고친다.      

   


말하듯이 쓰는 법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왜 우리는 그렇게 쓰지 않을까.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듣고 따르는 데만 익숙하다. 저자 본인도 그랬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혼잣말이라도 열심히 해보니 말과 글이 늘더란다.  

    


기업체의 회장 밑에서 쓰고
두 대통령 곁에서 쓰다가
이제는 한 자유인으로 돌아와서
말하고 쓰기 시작한 작가,
그의 말처럼 그 전에는 평생 눈치 보며
말 제대로 하지 않고 산 작가의 기록이라
더 마음에 와닿는 내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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