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베덴보리를 접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는다. 그는 나에게 기독교의 편협한 틀에서 벗어나게 하고 예수천당 불신지옥같은 잘못된 맹신의 독을 빼 준 귀한 분이다.
집안이 온통 교회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성경을 읽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 30대까지 15년 정도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 기독교란 종교에 대해 회의가 왔고 그 때 스베덴보리의 책을 보면서 내 종교적 방황의 종지부를 찍었고 그는 내게 신앙의 귀결점이 되었다.
사람의 주인은 정신이다. 몸은 그 정신을 살게하는 도구일 뿐이다. 신지학에서는 간단히 탈 것이라고 한다. 주인인 영혼을 태우고 다니는 탈 것. 그리고 정신이란 우리의 생각,감정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깊고도 큰 것이다. 그냥 영혼이라 아니면 영이라 해 두자.
스베덴보리는 17세기 스웨덴의 귀족 가문 출신에 고급 공무원이었고 당대의 과학자 뉴튼과 교류하던 뛰어난 과학자였다. 아인쉬타인보다 200년 앞서 상대성 원리의 기본 원리를 발표했고 150편의 논문을 낸 그를 사람들은 북유럽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불렀다. 그의 저서는 그런 그가 한 영계체험과 기록이라 더욱 신뢰감이 갔다.
그는 과학자로서 살다가 57세에 처음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 즉 영계를 오가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 후 27년 동안 그의 이러한 체험은 계속되었다. 이에 그는 과학을 완전히 접고 그의 영적체험의 그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의 획기적인 변화에 대해 놀라는 세상사람들에게 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나와 같은 과학자는 얼마든지 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영계의 진리를 알고 보니 이는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이 특별한 소명은 내가 과학자로 공헌하는 것보다 수천, 수만 배 더 중요하다"
“나는 신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다.내 사명은 지상인들에게 사후의 세계가 분명히 있음을 알리고,
그들이 몰라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이 모두 천국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신' 또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신의 섭리로 작동되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생생히 보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전달한다고 했다.
20대 중반 이후로 십수년 교회란 좁은 틀안에 갇혀 있던 내게 스베덴보리가 시원한 해답이 된 것은 교회를 다녔지만 늘 궁금하고 갈급했던 의문점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슬람이나 불교등지구상 여타 다른 종교들, 그리고 종교생활을 하지않는 사람들의 영혼문제였다.
그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해답은기독교란 특정종교에 편향되지 않고 지극히 상식적이어서내게 무엇보다 ‘합리적’으로 다가왔다.
질문~ “하나님을 모르고 산 사람들은 천국에 못 가나요?”
스베덴보리~ 본인의 양심에 비추어 옳게 살았다면 천국에 간다. 그래서 많은 원시민족들이 천국에 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이며 다시 말하면 교회를 가야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사회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천국 가는 기초라는 거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나 당시 그가 살던 17세기에는 정말 획기적인 말이었다.
스베덴보리는 그의 저서 ‘위대한 선물’ 에서 우리가 지상에서 천국같은 삶을 살 수 있는 6가지 지침을 말한다.
스베덴보리의 여섯 가지 권고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실 나는 예수의 모든 가르침은 이 한마디에 다 들어있다고 본다. 우리는 아무리 이웃을 생각해도 내 배 고픈 거 처럼 내가 아픈 거 처럼 그렇게 사랑하지 못한다. 물론 이 때 이웃을 내 바로 옆에 남편과 자식도 포함하는 말로 봐도 그렇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부 희생은 하지만 자신의 몸 만큼 직접적으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먼저 돌보듯 하진 못한다.
셋째, 매사에 양심을 지켜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말의 양심은 있다 한다. 모세의 10계명이나 양피지에 기록되었던 성경이 아니어도 각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타고난 계명이다.
넷째, 남을 심판하지 말라.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용서다.
사랑은상대의 잘못과 실수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동의어는 '용서'다.
그런데 인간이 지상에서 저지른 크고 작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곳도 지상뿐이다.한번 육신을 벗고 영계에 들어가면 지상에서의 모든 죄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받으려면 뉘우침이나 참회만 가지고는 안 된다. 뉘우침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곧 선을 행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섯째, 자기 생명까지 희생하는 사랑은 사랑의 극치이다.
여섯째, 마음에 참 평화를 확인하라.
스베덴보리는 영생이나 천국을 얻는 길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땅 위에 있음을 확고히 증언함으로써 인간이
우선 하늘을 쳐다보고 깨닫게 만들고, 그 다음엔 땅을 바라보고 실천하게했다.
진리는 하늘에 있고,
실천은 땅에 있다.
1744년, 그가 57세 때 스베덴보리는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한창 잠을 자던 중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큰 소리가 들리자 그는 두려움을 느꼈는데 그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다가왔음을 느끼고 바닥에 얼굴을 대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신비체험은 그 후 27년간이나 지속되었고 그는 특별히 허락된 영계방문을 통해서 그가 겪고 보고 체험한 모든 것을 30권의 저서로 남겼다.
스웨덴에서 스베덴보리는 신통력이 있는 사람으로더욱 유명해지면서 여왕이나 주요 인물들 앞에서 그의 신비한 능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죽은 자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산자의 죽을 날짜까지 예언하는 그의 이런 능력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에게 매번 그는 이것은 그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고 단순히 허락된체험을 통해서 본 것을 전달할 뿐이라고겸손하게 말했다.
1772년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이 죽을 날짜와 시간까지 예언해서 1년 전한 목사에게 편지로전달했고 그것은 그대로 이뤄졌다.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를 위시한 많은 철학자, 과학자, 시인, 작가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와 헬렌켈러등 특히 헬렌켈러는 사후세계의 진실에 대한 그의 저서를 읽고 나서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다며 이생에서 더 이상 나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그의 저서에서 스베덴보리의 불가사의한 능력에 대해서 인류 역사상 이런 특별한 인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죽는다는 것은 자신의 영체가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분리된 영체는 천사의 안내를 받아 영계로 들어가게 된다. 육신은 영체가 입고 있는 의복과 같다. 그러므로 죽는 것은 오직 육체뿐이다.
진짜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다만 지상을 떠나 영계로 가서 머물 뿐이다.”
육체와 영혼의 삶은 마치 나비와 같다. 나비가 유충으로 살다 나비로 날아가듯이 우리도 한 생애를 살다가 때가 되면 유충의 옷을 벗고 나비가 되어 하늘로 간다. 이렇게 땅 위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영혼으로 이어져 영속되는 삶이란 거다.
사람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후세계 이후의 무지에서 온다. 죽은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데서 공포가 찾아온다. 스베덴보리에 의하면사람이 육체를 벗고 맨 먼저 가는 곳은 '중간영계'인데 이곳은 지상과 천국의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지상생활에서 사랑의 행적에 따라 종국에 자신의 영적인 위치와 신분인 영위가 결정되는데 그전에 중간영계를 거치게 되고 그 중간영계에 머무르는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땅 위에서 선한 사람인 거 마냥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삶을 산 사람들은 겉과 속이 분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져 더 오래 중간영계에 머무르게 된다고 한다.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과 지옥은 중간영계를 기준으로 각각 세 등급으로 이뤄져 있었다. 천국은 1,2,3등급이 있고 지옥도 1,2,3 등급이 있었다.
제3층 천적왕국은
그야말로 하나님과 하나 된 영혼들이 머무는 천국으로서 지상에서 사랑의 온기로 살아온 영혼들이 그와 동질의 파동인 천국사랑의 온기로 가득한 사랑의 왕국이다.
제2층 영적왕국은
영적진리인 빛을 따라 산 영혼들이 가는 곳인 진리의 왕국이다.
제1층 자연왕국은
교회나 하나님을 모르고도 자신 안의 양심을 따라 자연법의 이치를 따라 선한 삶을 산 영혼들이 가는 곳이었다.
~천국의 3등급을 보면 결국진리의 빛 보다사랑의 봉사와 온기를 나누는 일이 더 귀하고 중함을 볼 수 있다.
지옥의 세 등급은 악령과 악마와 악귀의 세 등급으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형체가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고약한 악취가 진동을 했다 한다. 그런데 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다들 자신들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착각하며 지내고있었다 한다.
~이를 보며 나는 어쩌면 지상에서도 자신이 저지르는 잘못의 흉악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그리 같을까 싶었다!!
우리네 지상 백 년은 영원에서 보면 찰나도 못 된다. 그러니 "인간의 지상 백 년은 훈련을 통한 인격테스트 기간이요,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이라 봐야 한다.
결국 천국은 하늘에 있어도, 천국 가는 길은 지금 땅 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우리의 지상에서의 사랑의 실적만이 천계에 가지고 가는 자산이라고 했다.
결국,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인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선을 택하고 실행함으로써 천사가 되어가고죽음을 맞이하여 육체의 껍질을 벗고 천국으로 이동한다.
천국의 빛과 열은지상의 7배라고 한다.
나는 요즘 티브이 화면에서 처음에는 4K로만 봐도 좋았는데 이제 12K화면으로 보는 영상의 선명함과 화려함의 차이를 보면서 천국의 빛이 더 밝아지는 것도 이와 같지않을까 추측해보았다. 그러니 천국에 비하면 그림자 왕국인 지상의 생활을 통해서 장래의 실체를 그려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철학자들도 천국의 실체같은 이데아론을 펼쳤는데 그게 사실이다.
천국의 그림자가 이 세상이니 이 그림자 세상을 잘 살다가는 것은 바로 우리가 천사가 되기 위한 준비라는 것이다.
영적, 물적 왕국 두 세계가 존재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직 보이는 세계 자연계의 삶, 그 겉모습만 보고 받아들이는 자는 천국에 가더라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같은 파장이 아니기에 천국의 빛과 열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돼지를 깨끗하게 씻어서 아파트 거실에 두어도 그 스스로 견디지 못해 더럽고 축축한 돼지우리로 도망쳐 달아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것이다.
* 천국의 기쁨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국의 기쁨이란 무엇입니까?” 천사에게 물었다. 천사는 다음과 같이 짧게 대답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즐거움입니다.
쓰임에 대한 기쁨은 모든 천국의 기쁨의 생명이자 혼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내려주는 빛과 열로 된 세계이다. 이 빛과 열은 천사들에게 지혜와 사랑을 선사하고, 지혜와 사랑은 그 사람에게 맞는 쓰임으로 발현되어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천국의 기쁨도 고통이 될 수 있다.
지혜는 빛이요 사랑은 열이다. 우리가 흔히 인사이트 통찰이라 하는 빛이 바로 지혜다. 지식에 자신의 경험이 더 해져 빛으로 우릴 비춰주는 것이 인사이트 통찰, 지혜다. 그러나 지혜로만 생명이 유지되지않는다. 지혜가 현실속에서 사랑으로 구현될 때 그것이 열이요 온기다. 식물도 빛과 열로 자라듯 사람도 영혼도 마찬가지리라.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삶을 한마디로 지혜와 사랑이 발현되는 <<<쓰임>>>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니 지상에서 우리의 삶은 바로 잘 쓰이다 가는 것이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비춰준 빛과 온기를 따라 얼만큼의 사랑의 복리를 남겼는가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후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다. 얼마나 사랑을 베풀고 살았느냐는 결산일 것이다. 오늘 내가 가진 지혜만큼 사랑을 베풀고 나눔으로써 매일 우리는 신의 통장 잔고에 저축과 이자인 복리를 쌓아가는 삶이 될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행과 적선과도 연관이 있다본다.
쓰임 없는 사랑과 지혜는 아무것도 아니다.
“천국 가는 삶을 살아라!”
사랑과 지혜, 자유의지로 행하는 선행이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삶이라고 그는 메아리친다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지도. 영계태양의 사랑이 직,간접적으로 인간과 영혼들에게 흘러든다. 마치 지상의 태양이 선인과 악인을 구분없이 비추고 쪼이듯이 사후세계에서도 그러하다
천국도 지옥도 3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성경에도 삼층천 하늘로 나오듯이 사후에도 영혼들은 각자 레벨에 따라 가는 곳이 다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