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뭐든 시작은 잘 하지만 배우는데 진득함이 없는 나는 요가는 조금만 했다. 수영은 아직도 머리에 물 적시고 옷 갈아입는 수고가 버거워 미루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마침 집 앞이 복지관이라 수강신청하고 시작했다. 워낙 인기 있는 과목 이어서 경쟁자가 많아 같이 신청한 남편은 떨어지고 나는 추첨으로 당첨 되었다. 3월에 시작해서 결석도 했으니 약 두 달을 한 셈인데 강사샘이 액자로 만들어볼 사람 해서 나는 저요, 저요 했다.
나는 준비가 되든 아니든 일단 뭔가를 창출해 보는 걸 좋아한다. 40대에는 한 달 배운 벨리댄스로 학교 축제무대에서 공연도 해 보았다. 그래서 잘 하든 못 하든 시도하기를 좋아하고 완벽보다는 완성을 더 좋아한다. 해 보지 않으면 이게 나랑 맞는 지 아닌 지 내가 정말 원하던 건 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시간만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무엇이든 부딪혀 해 보면 내 부족한 부분을 가장 잘 알 수 있기에 발전에 가속도가 붙는다.
교사시절 중간, 기말고사 때면 나는 학생들에게 시험은 내가 무얼 알고 무얼 모르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라며 시험의 필요성을 말해주곤 했다. 몸으로 하든 머리로 하든 해 보면 안다. 자신의 현 위치와 수준을. 그래서 안 하고 마음에 두고 있기보다 그냥 Test 해 보는 걸 선택하고 추천하는 편이다.
같은 캘리반에서 나는 글을 잘 못 쓰는 왕초보에 속한다. 그래도 강사님이 액자 하실 분 하시기에 일단 오케이 하고 덤볐다. 나는 강의 시간에만 글을 쓰고 집에서는 따로 연습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집에 가면 티브이 드라마도 안 보고 글자 연습만 하신다는 분은 좀 더 다듬어서 다음에 할게요 라고 했다. 나보다 글을 잘 쓰시는 그분도 충분히 옳으시다. 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하시고 싶은 마음에서는.
그런데 개인적으로 성취감과 만족도는 내가 잘 못하고 초보일 때 뭔가를 이뤄내면 더 크다 본다. 이것도 성격유형인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시동이 천천히 걸린다. 그래서 자신이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옆에서 누가 무얼 하라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치 호랑이굴로 억지로 집어넣는 것 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MBTI 유형이 나랑 확연히 다른 남편이 그런 쪽에 속한다.
그런데 반대로 막무가내 직진형인 좋게 말하면 진취적인 우리 같은 유형들은 더 열심히 연습해서 하라 하면 인내심 부족으로 지레 포기하거나 지루해서 붙들고 있질 못한다. 해서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좋아하고 설령 잘못해서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느리게 가기보다는 일단 해 보는 걸 더 선호한다.
그래서 내 여행기 책 제목도 '일단 떠나라'였다.일단 집 밖을 나서면 여행도 한 달이 다섯 달이 되고 그런 거다.
'별'글자가 생각보다 이쁘게 써 지진 않는다 ㅠㅜ 그래도 이러케 ㅋㅎ
저녁에 일란성 세 쌍둥이가 각자 다른 집으로 입양되었던 다큐영화를 보았다. 유전이냐 환경이냐?를 놓고 연구해 본 결과 놀랍게도 성격, 성향은 환경적인 것보다 유전적인 것이 더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사람의 개별성도 타고나는 것이 환경적 요인보다 더 지배적이라 봐야할 것이다. 특히 한 부모 아래 같은 가정교육을 받은 형제자매도 각자 성격이 다른 것을 보면 인간은 타고나는 천성적 요인이 환경적 요인보다 더 결정적인 게 맞다.
암튼 그렇게 액자 두 개를 후딱 만들었더니 글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성취감이 있었다. 그래서 주 1회 캘리그래피 강의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게 여겨지고 좀 더 차근히 글자연습을 해야겠다는 동기 유발도 되었다.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은 요리 외에는 별 재능이 없는 편이라 남들처럼 배움이 빠르진 않다. 그래서 악기연주는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캘리는 글자자체를 좋아하는 데다 내가 쓰고 싶은 문구를 멋들어지게 쓰고 싶기 때문에 계속할 생각이다. 이제 캘리 하는 법, 가는 길은 알았으니 얼마의 시간을 투자해서 얼마나 연습할 것인가는 내 몫이라 본다.
명퇴 후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간적 자유가 있는 지금의 나는 시간부자로서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다. 노래를 잘 하든 못 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게 노래라면 해 보면 되고 춤도 마찬가지다.
복지관에서 트롯댄스를 같이 배우는데 나는 매번 발동작 순서를 못 외워 동작이 꼬인다. 물론 춤을 운동으로 생각하고 시작했으니 땀 흘리는 효과는 있다. 그래도 복지관 막내면서 칠팔십 대 언니들보다 못한 나는 그냥 웃으며 따라 한다.
남들보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나 남들 눈에 비칠 내 모습만 신경 안 쓰도 그저 세상은 더 즐겁고 재미있고 마음도 평화롭다.
인생은 남 눈치 보고 남 칭찬과 인정에 목메기에는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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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too short to clear my Bucket List 인생은 너무 짧아서 버킷 리스트도 다 못하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