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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Aug 26. 2024

지혜의 주문

반야심경


가자가자 피안으로 깨달음으로 아주 가자

영원한 깨달음으로 완성하자



반야란 ‘지혜’를 뜻한다. 해서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경전인 반야심경(般若心經)은 가장 큰 깨달음인 지혜를 얻는 주문이다.      


한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나는 성경공부도 많이 했다. 그러나 도마복음과 새로운 성경 원본들이 나타나자 성경 무오설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 지금 우리가 보는  신구약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그들의 종교로 받아들이고 난 후 교부들이 정리한 성경이다.

그래서 예수의 본질적인 가르침이 중요하지 그깟 교부들이나 가톨릭 공의회에서 정리한 문자적 성경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마복음은 114개의 어록 형식으로 구성된 외경 복음서다. 1945년 콥트어로 적힌 온전한 문서가 발견됐고 이후 연구를 통해 1898년 이집트에서 일부가 발견됐던 그리스어 문헌과도 대조한 결과 내용이 일치함이 확인되었다. 이후 2010년을 전후로 한국에 쏟아져 나온 도마복음 관련 서적들은 교계 안팎으로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의 중심에는 '예수는 없다'로 잘 알려진 오강남 교수의 '또 다른 예수'( 2009)와 도올 김용옥 교수의 '도마복음 한글역주 1,2,3'( 2010) 등이 있다.

오교수는 도마복음에서 발견되는 예수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기존 성경에서 예수는 ‘나를 따르라’, ‘나의 제자가 돼라’, ‘나를 믿으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서는 ‘깨달아라’,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한다.  이는 그간 기독교에서 듣지 못했던 새로운 예수님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 한 줄로 요약한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나 이 한 줄 살아내는 것이 말처럼 쉽지않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내 이웃을 나처럼 사랑하 살기 어려운 것이 3차원적 삶의 현실이다.     




불경은 성경보다 더 복잡하고 방대하다. 예수는 3 년동안 설교하며 33세에 돌아가신 걸로 되어있다. 하지만 붓다는 2600여 년 전에 예수보다 두 배나 더 오래 살았다.  당시 80세라는 고령의 나이까지 그가 설법하며 가르친 양은 엄청나다.      


붓다가 설파한 그 모든 말씀들을 제자들이 여시아문 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 하며 적어둔 것이 불경이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인 경장 외에도 불제자들의 실천규율을 적은 율장, 그리고 그에 대한 주석과 해설을 담은 논장까지 포함한 것을 대장경이라 한다. 그래서 해인사에 인간의 8만 4천 번뇌에 대한 가르침을 담은 팔만대장경이 있다. 그러니 그 많은 경전도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평생 연구하고 공부해도 모자랄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니 성경에서 찾지 못한 해답을 나는 불교에서 한번 찾아보려 했다. 그래서 절에도 안 가는 나는 반야심경을 외우고 묵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주문을 외우고 차 안에서 운전하면서도 외우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심경은 내가 이 현상이란 환의 세계, 그 매트릭스를 찢고 나오는데 일조를 했다.


드디어 나는 자유함을 찾았다.      


기독교가 사랑, 구원, 용서의 개념으로 나를 사후와 신의 세계로 이끌었다면 반야심경은 내게 이 보이는 물질과 현상 너머의 세계인 공과 영원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이제는 신과 인간이 나뉘어진 이원적 세계관이 아닌 신적자아로 하나인 일원의 세계 안에서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결론은 예수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붓다의 깨달음이 나를 자유케 했다.      


사십 대 그토록 목말라 찾아 헤맸던 이 진리와 자유함에 대해 혹시라도 그때의 나처럼 길 위에서 갈급한 사람이 있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되라는 바람으로 내가 특별히 도움을 받은 반야심경을 정리해 봤다.      




반야심경은 공(空)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다. 관자재보살이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깨닫고 그 내용을 당시 가장 지혜로웠던 제자인 사리자에게 전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반야심경의 묘미랄까? 가장 큰 파워는 역시 불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12처・18계・12 연기법뿐 아니라 고집멸도인 사성제를 다 파破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조차도 공하다며 일축하고 깨뜨려 버린다.

그러고 나서 보살도 삼세의 모든 부처도 다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함으로써 마음의 장애와 두려움을 없애고 궁극적인 열반을 얻는다고 설한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깨달음을 위한 깊은 수행을 할 때에

존재를 이루고 있는 5가지의 형상 감각 생각 의지

인식 작용이 모두 공하여 텅 빈 것을 보시자

온갖 괴로움과 불행의 강을 건넜다     


舍利子 사리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即是空 空即是色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受想行識 亦復如是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물질과 공이 다르지 않고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느낌과 생각과 의지, 인식도 다 마찬가지로 공이다.   

  

舍利子 사리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또한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그러므로 사리자여

공함에는 물질적 현상도 없고 느낌, 생각, 의지, 인식작용도 없다.

눈 귀 코 혀 몸 은 물론이고 의식조차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과 소리 냄새 맛 감촉도 없고

의식의 분별 대상도 없다.

눈의 영역부터 의식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없는 것이다.

어리석은 착각으로 가려진 어둠도 없고 그 어둠의 사라짐도 없다.

늙고 죽는 것도 없기에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다.

고통의 실체가 없으니 그에 대한 집착 또한 없고 그를 멸할 도도 없다.

또 공의 세계에서는 지혜란 것도 없기에 지혜를 얻지 못함도 없다.     


菩提薩埵 보리살타

依般若波羅蜜多 故心無罣礙  無罣礙故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無有恐怖 遠離顛倒夢想 究竟涅槃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沸 依般若波羅蜜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故知 般若波羅蜜多 고지 반야바라밀다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것 )

오직 이것에 의지하고 나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다

이제 보살은 꿈이 진짜라는 뒤바뀐 생각을 멀리 하여

마침내 완전한 열반에 이르렀다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의 모든 부처님도

저 열반의 언덕으로 가는 이 지혜에 의지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即說呪曰 즉설주왈

揭諦揭諦波羅揭諦 波羅懀揭諦 菩提娑婆訶(3회)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어서

능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거짓이 없나니


부처님도 일러가로되



가자 가자 저 완전한 피안의 세계로     

가자가자 피안으로 깨달음으로 아주 가자

영원한 깨달음으로 완성하자~!




반야심경의 공은 모든 현상(색), 물질이 본질적으로 비어 있다 거다. 즉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을 통해 물질과 정신 모두가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강조한다.      


2천 년 전 불교의 공을 이제 21세기의 양자학에서 과학자들이 입증하고 있다. 양자들의 세계에서 핵의 양자와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 사이의 거리는 99.9999% 비어 있다. 모든 물질의 기본 요소는 원자이고 그 원자 속의 양자, 전자, 중성자들 사이는 비어 있다는 것은 바로 물질이 공임을 설파한 불교와 일치한다.    


이전에 썼던 글을 첨부한다 모두가 공이라 


그리고 사람의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인 오온(五蘊) 역시 모두 비어있다는 것은 이들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지만, 별도의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말한다.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는 색(물질), 수(감각), 상(지각), 행(의지), 식(인식)인데 이들은 모두 무상하여 서로 의존적일 뿐 고정된 자아가 없다. 모든 현상은 상호 의존성으로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니 이는 '관계적 존재'일 뿐이며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오직 다양한 요소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 공의 개념은 자아의 비어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즉 고정된 자아, 즉 나라는 실체가 없다. 우리가 느끼는 '나'라는 감정이나 개념도 사실은 여러 요소의 집합체일 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반야심경은 진정한 지혜를 통해 공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지혜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해탈의 길로 안내하여 우리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한다.

    

진공묘유 眞空妙有란 말이 있다. 텅 비어있는 듯 하나 비어있지 않다는 말이다. 현대에 와서 과학자들이 입증한 양자와 전자의 거리는 99.9999% 비어 있으나 사실은 비어 있지  있지 않다.     





사족)

나는 가족중에도 교회다니는 사람과 절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 주위의 지인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 마음안에 어느 특정 종교로 인한 나뉨이나 분리를 원치 않는다. 전쟁중에서도 가장 잔인했고 부조리했던 전쟁이 역사가들도 인정하는 십자군전쟁이다. 지금도 중동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서로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전쟁과 충돌이 끊이지않는 현실이다.     


나는 어느 특정 종교란 틀에 갇히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는 초종교주의자다. 종교란 틀을 초월한 자라 생각한다. 굳이 말을 하라면 사람은 누구나 영혼이 있기에 나중 육체인 이 단백질 옷의 형체는 지수화풍으로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안의 본질인 영성을 귀히 여긴다.


우리는 길지 않는 시간동안 이번 생 살다가는 이 체험활동을 통해서 쌓은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베일너머 죽음이후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십자가도 불상도 다 우상이다. 오직 마음안에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적자아, 신성, 불성, 영혼 자아를 돌보며 각자 잘 살다가면 될 것이다.


예수의 용서도 붓다의 자비도 다 본질 같은 사랑이기에!






https://youtu.be/tr8Jtmki7rU?si=34pyWyLVi_48eb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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