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건강검진날 대장에 4센티로 보여진다는 혹이 조직검사 결과 대장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남편이랑 아들이 부랴부랴 폭풍검색하고 다행히 바로 예약이 되어 며칠 뒤 용인 세브란스로 갔다. 병원 가까운 작은 아들집에 들러 자고 그 곳에서 대장암 관련 명의로 이미 정평이 나신 의사선생님께 진료받고 CT촬영과 각종 검사를 다 하고 왔다. 다음 진료일까지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며칠 머물 서울 큰 아들집에 왔다.
두 번째 진료일인 금요일 다시 병원들러서 원장님과 상의해야한다. 수술은 당연히 하지만 언제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알기위해 여타 절차와 준비과정이 있다한다.
당화혈색소가 높게 나와 그 부분도 상의해야하고 다른 호흡기 알레르기 반응도 재검사해야한다한다.
그간 몸을 너무 쉽게 간과하며 살아온 탓을 이번 기회에 나는 총체적으로 완전히 바꿔가야한다고 받아드린다.
늘 몸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하는 일이 우선이었고 일단 내 사고체계가 Mind over matter라는 식으로 늘 물질보다 정신 우위 였었고 몸 보다 마음 우선이었는데 이번 상황에선 그 주객이 전도되어야한다는 걸 처음으로 여실히 느낀다.
그리고 일단 암 판정 이후 시간이 쏜쌀같이 흘러가면서 가장 먼저 가족이란 게 무엇인 지 정말 절실히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남편과 아들이 나 보다 더 마음 모으며 지극정성이다. 오늘 아침에는 대장암에 좋은 음식이라며 둘 다 쿠팡 새벽배송을 각자 시켰다. 캔 베리 포도랑 두부, 연어에 청국장에 열무....남편은 당장 며칠 있을 아들집에서도 갈아먹어야 한다며 마와 믹서기까지 따로 주문하고...
이런 가족들 정성을 봐서라도 이제부터 내 몸 치료를 잘 받아서 건강백세 두루 잘 살다 가야겠다며 다시 한번 몸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져본다.
그간 결혼생활 33년동안 늘 남편이랑 티격태격한 부분이 건강관련 문제였다. 식생활이나 식단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남편보다 나는 내가 하고싶은 일이 우선이어서 그를 경시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내가 음식을 안 한다거나 요리를 못한다는 게 아니라 내게 우선 순위가 식생활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모든 면에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한다. 평화로울때와 전시체재일때는 모든 체계적 일의 순서와 우선순위가 바뀌듯 말이다.
남편은 내가 보기에는 건강염려자 수준으로 좀 지나치게 까다로운 편이다. 식성이 까다로운 게 아니라 식사시간 엄수 이런 면에서 규칙적인 걸 원하고 나는 그와는 완전 반대형이었다.
배가 고파야 밥을 먹게되는 식이니 뭐든 일을 하다 중간에 식탁 차리는 걸 스트레스로 여기고 맛있게 먹는 한 끼 식사가 정신적 충만감도 채워 주기에 그렇게 준비하면 되지 식으로 하니 때로 불규칙적인 주먹구구식 식사로 보여 남편에게 건강불안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아이들 어렸을 적 부터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바쁜 워킹맘으로서 요리를 하는 기준이 speedy, tasty and healthy 였다.
절대 배달음식은 안 먹는 기준하에 가능한 빨리 맛있게 건강식으로 먹게 하자는 식이었고 식사시간을 지키는 것은 무슨 병원 환자식도 아닌데 때로 늦게 먹을 수도 있다 였는데 남편은 그 점에 대해 강한 부정적 반응을 가지고 있었기에 트러블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암 환자가 되고나니 일체 이런 크고 작은 부분을 다 내려놓게 되었고 온전히 남편에게 모든 걸 맡기기로 하고 따르니 사실 넘 맘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