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_길을 밝히는 미소

낯선 길에서 만난 익숙한 온기들

by 한경환

햇살이 부드럽게 바닥을 감싸고 바람이 천천히 몸을 스쳤다.

정오의 뜨겁던 열기가 누그러지고 태양은 서서히 오후로 기울고 있었고 그에 맞춰 불어오는 바람에도 따뜻함과 시원함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마치 태양과 구름이 서로 조율하듯, 그 두 개의 감각이 적당한 균형을 이룬 오후였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팍슨 라오스‘였다.

선물할 간식거리나 작은 기념품을 살 계획이었지만 택시를 타기엔 조금 아쉬웠다.

우리는 이 길 위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 아쉬운 풍경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서두를 필요 없는 길이었고 걷기 좋은 오후였다.

마음이 발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발걸음이 시선을 이끄는 길.

차창 너머로 스치듯 보았던 거리들이 이제는 눈앞에 펼쳐졌다.

꼭 펼쳐 읽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풍경들.

마치 책을 넘겨 읽듯 한 장 한 장, 조금씩 길을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도로 옆, 낮은 담장 너머로 줄줄이 널린 빨래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셔츠, 바지, 옷가지들, 색이 바랜 천 조각들. 햇볕에 마르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시간을 천천히 말리는 듯 보였다.

그 옆으로 키 큰 풀들이 무성히 자라 있었고 한동안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한 작은 길목에는 흙먼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오고 가는 차들조차 느릿하게 달리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더욱 천천히 걸었다.

마치 우리와는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손에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모자를 눌러쓴 채 어깨에 가방을 멘 학생, 우릴 보며 어색하게 웃으며 걸어가던 할아버지까지.

모든 것이 여유로웠고, 평화로웠다.


대부분의 집들이 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였다.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작은 집 앞을 지났다.

문 앞에서 아주머니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작은 화로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바람이 연기를 부드럽게 밀어 올렸다.

누군가를 위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을까.

아주머니는 부채질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우리에게 시선을 주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에게 보낼 법한 따듯한 미소였다.


“사비이디(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건넨 인사였다.

미소를 먼저 받았으니 인사는 내가 먼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인사에 그녀 또한 웃으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답했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낯설지 않은 온기.

현지의 언어로 건네는 인사엔 낯섦을 풀어주는 무언가가 들어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현지의 인사말을 외워두는 이유는 단순한 소통을 위해서가 아닌 이런 순간들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저 앞에서 다가오는 자전거 하나가 보였다.

네 명의 꼬마들이 바짝 붙은 채 올라타 있었다.

낯선 우리를 경계하는 눈초리였지만 흔들며 인사하는 손짓에 그 작은 미간의 주름이 풀어졌다.

네 개의 작은 손이 내가 흘려보낸 인사보다 더 빠르게 흔들거렸다.

자전거가 덜컹거리며 기 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사비이디!”


이번에도 역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를 지나친 아이들은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본 채로 인사를 되돌려주었다.


“사비이디!”


우리가 주고받은 인사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맨 뒤의 아이는 시야에서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길을 걷는 내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미소와 마주했다.

눈이 마주치면 피어나는 짧은 미소, 눈길이 머무르는 순간에 깃드는 작은 웃음들.

그것은 의례적인 인사도 어색한 미소도 아니었다.

그 웃음은 마치 하루의 햇살처럼, 또는 바람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었다.


“여기는 다들 웃고 있다.”

“그렇지, 괜히 따라 웃게 된다니까.”


처음 걸어보는 거리에서 마주한 낯선 이들의 미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환한 미소가 어쩌면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하늘, 끝없이 펼쳐진 푸른빛. 낮게 깔린 구름들이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며 천천히 흘러갔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햇살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냥 그대로 멈추어도 좋을 순간이었다.

하늘도 마치 우리가 머물기를 바란다는 듯 조용하고 따뜻했다.

그 안에 섞인 우리도 한동안 멈춰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길가의 한적한 풍경을 지나자, 어느새 쇼핑몰 앞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더 깔끔하고 현대적인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매끈한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안으로 들어서자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감쌌다.

실내는 완벽하게 쾌적했고 정돈된 인테리어와 깔끔한 조명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식품 코너에서 기념품으로 사갈만한 물건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선물할 만한 티백이나, 과자, 라오스에서만 파는 것들. 우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거 어때? 맛있어 보이지 않아?”

“이거랑 저것도 사야겠어.”

“솔직히 말해. 선물용 아니라 네가 먹을 거 사는 거지?”


카트 안으로 던져지는 과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각자 고른 선물들을 계산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나 소요될 정도였다.

각자 산 것들을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비닐을 채우면서도 어쩐지 더 오래 이곳의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까지 걸어온 길이 우리에게 주었던 따뜻함,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이 건넨 웃음들까지.

푸르던 하늘 아래 우리는 낯설지만 평온한 오후를 걸어왔고, 그 풍경들은 마음속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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