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시티투어
멀리서부터 사원의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태양 아래 반짝였을 색은 이제 시간의 그늘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고, 붉은빛이 감돌던 지붕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검붉게 바래 있었다.
마치 한 시대를 지나온 낡은 책처럼 바람과 햇살,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이 겹겹이 쌓이며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새겨놓은 듯했다.
곳곳에 내려앉은 먼지와 이끼들은 이곳이 지나온 나날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비엔티안의 맑은 하늘 아래, 사원은 마치 그곳에서 자라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멀리에서도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거의 온 것 같은데?”
“그러게, 진짜 너무 덥다.”
우리는 한 걸음씩 사원에 다가갔다.
공기는 여전히 뜨겁고 바람은 무거웠지만 사원 입구에 다다르자 오랜 시간을 견뎌온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벽면마다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 바람결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깃발, 닳고 닳은 돌바닥까지.
그 모든 것이 이곳의 흘러간 세월을 고스란히 품어내고 있었다.
문지방을 넘는 순간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장료를 지불한 뒤 문을 지나니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화랑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불상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정교하게 조각된 불상들 사이로 세월이 새겨놓은 흔적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떤 불상은 오랜 기도의 힘으로 단단해졌고, 어떤 것은 시간이 남긴 상처처럼 금이 가 있었다.
한때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이었을 불상들.
사람들의 손길을 타고, 바람과 빛을 맞으며, 기도가 차곡차곡 쌓여 이곳을 지켜온 존재들이었다.
햇살이 화랑을 부드럽게 비추며, 공간을 은은한 금빛으로 물들였다.
우리는 말없이 불상들 사이를 걸었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불상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뒤쪽 벽에는 은과 도기로 만든 작은 불상들이 칸마다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엄청 많다, 몇 개나 되려나?”
누군가 호기심이 가득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 답은 영어로 쓰인 작은 안내판에 쓰여있었다.
총 만여 개.
10,000개의 불상과, 10,000개의 이야기들.
각각의 불상들은 저마다의 염원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것은 사랑을, 또 어떤 것은 잃어버린 이를 향한 그리움을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불상이 있는가 하면, 금이 가고 일부가 떨어져 나간 불상도 있었다.
마치 사람들처럼.
어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단단해지고, 또 어떤 이는 조용히 흩어지고 있었다.
불상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공간 가운데에는 법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장난스러운 모습을 거두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었다.
소복이 쌓인 첫눈을 밟듯 사뿐히 걸음을 옮겼다.
오랜 세월에 대한 예의였고 이곳을 지켜온 존재들에 대한 존중이었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바닥의 촉감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오래된 나무바닥은 부드러웠고, 햇볕을 머금은 채 기분 좋은 따스함을 품고 있었다.
법당 내부는 숨결조차 조용히 퍼졌다.
벽면에는 부처님의 전생을 담은 벽화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색채와 디테일은 여전히 생생했다.
마치 벽화를 그린 이의 손길이 아직도 이곳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바람이 스쳐가면서 촛불이 조금씩 흔들렸다.
은은한 향이 공기 속에 퍼졌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공간.
우리는 불상들과 함께 공간을 거닐었고 그들과 함께 이곳의 향을 음미했다.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여행자가 아닌 오랜 시간 속을 함께 지나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원을 나서자 뜨거운 햇볕이 우리를 맞이했다.
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사원 밖의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빠뚜싸이’였다.
그곳까지 걸어가자고 했던 생각은 도로를 쌩쌩 달리는 택시가 보이는 순간 망설임 없이 사라졌다.
거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피부를 그대로 태워버릴 듯 뜨거웠고, 뜨거운 공기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을 바짝바짝 마르게 했다.
“택시 타자.”
“솔로몬이네. 걷는건 무리다.”
짧고 간결한 생각들이 오고 갔고 그 대화보다 빠르게 움직인 손은 이미 택시를 잡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택시에 오르자, 온몸을 감싸는 시원한 바람이 밀려왔다.
한순간에 모든 세상이 서늘해졌다.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대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창문 너머로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렸지만, 에어컨이 빵빵한 이곳에서는 그것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된 여정을 달래주는 작은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택시는 빠뚜싸이 앞까지 가는 대신, 옆 도로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정문 앞에는 차가 정차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가야 했다.
문제는 신호등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멋대로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들 틈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Go go, now!”
길가에 서있던 현지인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한 박자 늦었다간 차들이 다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뛰어들어갔다.
빠르게 건너간 뒤 뒤를 돌아보자,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있었다.
나 또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감사를 전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길 건너편에서 마주한 그 미소가 이곳에서의 기억을 더 좋게 남겨주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빠뚜싸이는 멀리서 볼 때보다도 훨씬 웅장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묵직한 실루엣이 우뚝 솟아 있었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닮았지만, 어디까지나 ‘라오스의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섬세한 조각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전통적인 라오스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단순한 기념비가 아닌 오랜 이야기를 간직한 성채처럼 보였다.
아치형 입구를 따라 시건을 올리니, 꼭대기의 작은 탑들이 한층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쟁과 독립,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빠뚜싸이는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었다.
마치 거친 역사 속에서도 묵묵히 서있던 성채처럼 이곳은 하나의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돌벽에 새겨진 문양들은 바람에 스치듯 속삭였고, 꼭대기에 자리한 작은 탑들은 하늘을 향해 조용한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
천천히 주변을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치 내부의 천장을 배경으로 바닥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진을 찍는 일본인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귀여운 그들의 모습에 셔터가 눌리기 직전, 그 앵글 안으로 슬쩍 얼굴을 밀어 넣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을 확인한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나를 보며 재밌다는 듯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즐거운 얼굴로 다시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함께 사진을 남겼다.
“뭐야, 우리도 같이 찍을래!”
다른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나를 본 친구들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낯선 나라, 처음 만난 사람들, 그러나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친구처럼 느껴졌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간다는 사실마저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은 언젠가 각자의 삶에서 우연히 꺼내볼 소중한 한 조각으로 남을지도 몰랐다.
여행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 하나는, 이렇게 우연한 만남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순간이 아닐까.
조금 용기를 냈을 뿐인데 좋은 기억이 생겼다.
나는 앞으로도 이 작은 용기를 언제든 꺼낼 것이다.
이곳은 이제 구경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이곳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배낭을 멘 어린 여행자들.
거대한 배낭을 메고 장난을 치며 걸어가는 그들이 눈에 띄었다.
한때는 저런 모습이 부러웠다.
그들과 같은 나이에, 같은 시기에, 같은 곳을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저 청춘을 허비하는 것을 시기했었고 새빨간 청춘의 색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그들이 예뻐 보였다.
마음껏 흔들리고 부서지고 또다시 일어설 그들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들의 젊음을 그저 안아주고 싶어졌다.
나에게 청춘은 더 이상 젊음의 한 시기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청춘은 특정한 나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깃드는 빛이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나는 내 나이의 여행을 하고 있었고 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도 물론 반짝이고 있음에 분명했지만, 이제 나 또한 반짝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나는 것일 뿐.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