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집 앞에 있던 작은 공원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한적한 공간. 왁자지껄하지만 과하지 않은 분위기. 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모습. 집 앞의 놀이터는 나에게 이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부근에서 벗어나 동네의 안쪽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좋았던 한 가지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유년 시절 지냈던 집은 동네 내에서 한 구역을 통과하는 큰 길가의 한 켠에 위치해 있어 집으로 가는 길은 온갖 복잡한 것들 투성이었다. 양쪽에 차가 주차된 골목을 비집고 움직이는 자동차들,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트와 음식점들은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요소이긴 했지만 당시의 나에겐 달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새롭게 이사를 가게 된 집에서 도보로 2분 정도 거리에 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던 동네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정자와 운동기구 및 벤치, 그리고 놀이 기구가 있는 전형적인 동네 공원이었지만, 골목길에서 확 트인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대로변에서는 4블록, 큰 길가에서는 한 블록 떨어진 거리에 놓인 공원은 오래된 빌라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앞에는 어린이집과 편의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편의점은 ‘이게 여기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뜬금없는 곳에 있었는데, 주변 빌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었다.
공원은 동네 주민만의 벚꽃 명소이기도 했는데,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에 하나둘씩 벚꽃 몽우리가 피고, 봄이 완연하게 다가오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석촌호수 부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원이 분홍빛으로 물들면 동네 주민들이 공원에 모였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나들이를 나와 한적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정자 밑의 어르신들은 음식을 싸 들고 나와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셨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 눈에 보이는 풍경을 담으려고 했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나에게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풍경은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벚꽃은 일주일을 채 가지 못했는데, 꽃잎이 바닥에 떨어지고 푸른 나뭇잎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그늘을 찾아 정자 아래로 들어왔는데, 그 때문에 그 밑은 항상 북적거렸다. 잎이 전부 떨어지고 나뭇가지만 남게 되는 시기가 오면 한 해를 마무리 지을 준비를 해야 했다. 학교와 집만 왕복하길 반복했던 나에게 공원은 계절을 알려주는 공간이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는 집 밖에 나와 공원을 따라 몇 바퀴이건 계속 걸었는데, 온 동네가 잠에 든 자정에 많이 걸었다. 그 시간대의 공원은 완전히 나만의 것이었는데, 가로등이 밝혀주는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어두컴컴한 놀이터는 탁 트인 사적인 공간과 마찬가지였다. 낮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올라가지 못했던 놀이 기구도 이때를 틈타 종종 타곤 했다. 그네를 탄 채로 하늘을 보며 멍 때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는데, 앞뒤로 흔들리는 움직임에 나를 맡기면 걱정거리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친구와 종종 오기도 했는데, 근처 가게에서 산 꽈배기를 뜯으며 앞뒤로 흔들리는 놀이 기구 위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떠들기도 했다. 새벽까지 대학교 과제를 하다 막막할 땐 친구를 불러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야식을 먹곤 했다. 야식의 주 메뉴는 치킨이었는데, 2시까지 여는 동네 치킨집에서 포장해 온 치킨을 남들 몰래 미끄럼틀 위에서 먹는 것은 꽤나 큰 행복이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편한 사람과 맘껏 먹고 떠들었던 기억 때문에 버티지 않았나 싶다.
다른 집보다 높은 곳에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주변 시야가 탁 트인 공간에서 밤늦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대나무숲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삼전동을 거쳐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일부러 그 공원을 거쳐 걸어가는데, 그때마다 비슷한 느낌을 받아 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