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어릴 적 정든 집을 떠나 새롭게 정착한 곳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친구들과 놀러 나가거나 학원을 가는 일상의 반복이라 집에서 보낸 시간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이사 간 집은 기존에 살던 곳으로부터 한 블록 뒤에 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와 거리가 더 멀어진다는 이유로 이사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이사를 가면서 익숙한 공간과 멀어진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집은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5층짜리 빌라의 3번째 층에 위치했는데, 다른 층과 다르게 한 층에 한 호수만 있던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관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들어가야 거실이 나왔다. 거실에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 하나와 소파가 있었고, 그 뒤에 나 있는 창문 너머로는 옆집의 벽돌이 코앞에 있어 손만 뻗으면 닿을 듯했다. 우리는 그것을 ‘옆집뷰’라고 말하곤 했다. 대낮에도 햇빛이 집 안에 들어오지 않아 정오에도 불을 켜고 살았는데, 이 때문에 종종 불평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거실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가면 침실이 나오는데, 그 너머로 다용도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왼편에는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화장실을 기준으로 양쪽에 아빠 방과 내 방이 있는데, 거실과 부엌이 메인 공간으로 붙어있고 4개의 방이 딸린 구조였다. 컴퓨터가 거실에 있고 내 방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중학생 시절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뭔가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었던 성격이 아니었기에 방에 들어가 있는 것들 너무나도 싫어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4블록 뒤에 있는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 역시 오래전에 익숙해진 공간과 더욱 멀어지는 것 같아 딱히 반가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러다 이 동네를 완전히 벗어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5분 거리에 있는 삼전역이 개통되면 다른 데로 가기 훨씬 편할 거라는 부모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도 살짝 무섭다.
기존에 살았던 두 빌라는 동네 내에 위치한 큰 골목길을 따라 들어왔기에 여정에서 오는 와글와글함이 있었다면, 새로이 가게 된 집으로 가는 길은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면 도착했기에 그 특유의 조용함이 있었다. 학원이 끝난 시간의 동네는 불이 다 꺼진 채 몇 개의 가로등만이 그 길을 비추고 있었기에 온통 어둠이 깔린 풍경이었다. 옆에서 무언가 나타나서 나를 덮치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집까지 잰걸음으로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심지어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공포로 다가왔기에, 난간을 잡고 두 계단씩 빠르게 올라가곤 했다.
이번엔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인 5층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5개 층의 계단을 올라가 집 앞에 다다르면 철 창살로 된 문이 계단의 영역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듯했다. 도어록을 누르고 온 복도를 울리는 철컹-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반 층을 올라가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거나 거기서 한 층을 더 올라가 옥상으로 가는 것.
어린 시절에 내가 살던 건물의 옥상을 무던히도 좋아했던 나였기에 처음 이사를 갔던 날, 집에 들어가 가방만 두고 바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대각선으로 채광창이 크게 나 있어 머리를 부딪히지 않게 숙이며 올라가야 했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손잡이가 있어 돌려야 했는데 문이 잘 안 맞아서 그런지 잘 돌아가지 않아 어깨로 힘껏 쳐서 열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바람이 훅 들어오는 순간, ‘아, 이곳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빌라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 큰 길가의 소음이 닿지 않는 위치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피난 삼아 오기에 딱 알맞은 조건이었다. 옥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빨래를 걸어 두고 앉아 있는 모습이나 여러 사람이 모여 바비큐를 하는 모습이 보여 ‘언젠간 나도 여기서 바비큐를 해 먹어야지’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겨울에 접어들어 눈이 내리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간밤에 쌓인 눈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런 면에 있어 옥상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두꺼운 패딩 하나 걸치고 올라가 바닥에 쌓인 눈을 발로 밟기도 하고, 난간에 쌓인 눈을 괜스레 쓸어 보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두꺼운 옷을 걸치고 눈 내리는 것을 구경하기라도 하는 날엔, 엄마는 춥다며 얼른 들어가자는 말을 남기고 먼저 내려가곤 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일출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내가 맨 처음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것도 그 집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건물의 꼭대기에 올라가 낮은 곳을 뷰파인더 너머로 보는 것을 좋아해서 날씨만 좋다 하면 옥상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저 멀리 월드타워가 보여서 일명 ‘월드타워 멍’을 종종 때리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다. 대학교 과제로 인해 집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잦았는데, 창 밖으로 하늘의 푸른빛이 점점 밝아올 때 옥상 좀 다녀온다며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 빌라 너머로 해가 뜨는 모습을 담곤 했다.
다시 집으로 넘어가서, 철문 너머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이 있었는데, 아래층에 위치한 집 하나의 면적을 거실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넓었다. 널찍한 거실에서 뒤로 돌면 안방과 부엌이, 그 끝에는 아빠와 내 방, 화장실이 있었다. 거실에는 컴퓨터가, 부엌 너머의 공간에는 벽을 따라 책장이 놓여 있었는데, 집에서 학교 과제를 할 때면 매번 방에서 나와 작업하곤 했다. 팀플로 과제를 진행할 때면 동기들과 우리 집에 모여 작업을 하곤 했는데, 거실 및 부엌을 주로 사용했다.
내 방은 역시나 공부방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했는데, 고등학생 시절엔 주로 학원이나 집 근처 독서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다 집에 들어와서 자는 경우가 많았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내 방을 사용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그 역시도 방에 틀어박혀 있기보단 거실에 나와 작업하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내 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동네가 한 눈에 보인다.
대학교 2학년에 들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다시는 옥상에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들었다. 생각할 거리가 있을 때나 바람을 쐴 땐 옥상 문을 열어 어깨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을 즐기는 나였기에, 그 집에서의 마지막 날은 옥상에서 보냈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달린 공간 위에는 통신 안테나가 크게 하나 있었는데, 떠나기 전에 그 옆에 올라가긴 해봐야겠다 싶어 창고에 있는 접이식 사다리를 꺼내 그 옆에 걸쳐 두고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로 올라갔다. 건물의 맨 꼭대기에서 삼전동을 바라봤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떨어진다는 두려움과 동네가 주는 친숙한 느낌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까지 거쳐온 집들 중 최고를 뽑으라면, 단연코 5층에 옥상이 딸린 집일 것이다. 가장 불안했던 시기에 의지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 시절의 입시가 주는 압박과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적응과 반수 기간에 나의 도피처는 항상 집 위에 딸린 옥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