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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영 Oct 19. 2023

학창 시절이 담긴 공간들

0-6. PC방과 독서실, 그리고 편의점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에 학교 컴퓨터실에서 게임을 처음 접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PC방에서 보냈다. 큰 대로변을 따라 나 있는 좁은 골목 너머 지하에 PC방이 있었는데, 입구 옆에는 사람들이 타고 온 자전거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지금은 목공소로 쓰이는 듯하다.

밝은 조명 하나 없이 온통 어두운 인테리어와 유일하게 빛나는 NEW PC라는 이름의 간판. 초등학생 시절에 남몰래 가는 PC방은 금단의 영역 같은 느낌이었다. 요즘 PC방은 청결한 느낌이 강하다면 10년 전의 그곳은 어딘가 모르게 찝찝했는데,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특유의 담배 찌든 내가 풍겨왔다. 몇 년이 지나 PC방은 사라지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공실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다른 용도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종종 가던 PC방이 사라지자 금방 다른 곳을 찾아 헤맸는데, 원래 다니던 곳보다 두 블록 앞에 있는 PC방을 가기 시작했다. PC 마루라는 이름으로, NEW PC와 다르게 훤한 공간에 담배 냄새도 별로 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여기도 지하에 위치한 공간이었는데, 가로로 길쭉한 형태라 계단을 내려가면 정면에 카운터가 위치했고 카운터를 기점으로 비흡연자와 흡연자 전용 공간이 나뉘었다.


시끄럽게 소리 지르는 사람. 잘 안 풀린다며 키보드를 박살 내듯이 쳐대는 사람. 친구와 시비가 붙어 싸움 직전까지 가는 모습. 이벤트 기간만 되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컴퓨터 로그인만 해 놓고 자리를 비워 둔 모습. 장난 삼아 자리를 비운 친구의 컴퓨터를 끄고 가는 사람들. PC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중학교 수업시간이 끝나면 PC방으로 뛰어가 종일 하곤 했는데,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날은 저물어 있었다. 이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중학생 때의 학창 시절은 게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강신청 하는 날이면 이곳을 찾는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PC 마루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PEAK라는 이름의 PC방이 들어왔는데, 고등학생부터 들어갈 수 있어 시끌벅적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들어서는 중학생 때와 다르게 내신을 나름 신경 썼기에 PC방에 가는 빈도는 줄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PC방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의 3층에는 그린램프라는 독서실이 있었는데, 시험공부를 할 때 학교까지 가기 귀찮으면 친구들과 거기서 공부하곤 했다. 집 근처에 있는 다른 독서실과 다르게 좌석도 많고 시설도 좋아 자주 갔었다. 카드를 찍고 독서실에 들어가면 사물함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거대한 흰색 공용 테이블이 여러 개 놓인 공간이 있었는데, 그 주위로 1인실처럼 칸막이가 놓인 간이 방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간이 방은 혼자 집중하기에 좋은 분위기였기에, 일찍 가서 자리를 잡지 않으면 항상 자리가 차 있었다.


우측에는 관리자가 상주하는 인포메이션이, 그 앞에는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높이가 높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다른 공간과 다르게 조금의 소음은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분위기여서 모의고사를 채점하고 점수를 공유하거나 친구에게 질문할 일이 생기면 그쪽 테이블을 사용하곤 했다. 한편에는 학생들을 위한 초콜릿 쿠키와 차를 타 먹을 수 있는 원액이 놓여 있었는데, 공부하다 잠시 나와 먹는 간식만큼 맛있던 것은 없었다.


독서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다 보면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독서실과 PC방이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크나큰 유혹이었다. 그러다 보니 짐을 챙겨 나가서 한 시간이라는 시간을 정해두고 머리 식힐 겸 PC방에 가곤 했다. 물론 그 한 시간은 점차 시간이 불어나 몇 시간으로 바뀌는 일이 빈번했고,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다시 독서실로 기어 들어가다시피 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학생들로 붐빈다.

독서실에서 나오면 왼편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었는데, 시험 기간만 되면 공부하다 잠시 배를 채우러 나온 학생들로 채워졌다. 편의점 앞에는 그르르...갉 소리가 나는 진실의 의자는 없었지만, 대신에 나무 테이블이 있어 여러 명이서 시간을 보내기에 딱 알맞았다. 새벽에 공부를 끝내고 나올 때면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사 와 테이블에 풀어놓고 학교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조용하면서도 선선한 분위기의 공간은 우리의 고민거리를 가지고 토론하기 매우 좋았다.


학교 근처를 제외하고 나선 PC방과 독서실, 그리고 편의점을 가장 많이 다녔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하나의 목표만 갖고 앞으로 향하던 시절에 맘 편하게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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