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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영 Oct 21. 2023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공간

0-8. 밥버거, 그리고 마트와 약국과 미술종합학원

학창 시절의 내 끼니를 책임지던 곳이 사라졌다.

“어? 저기 언제 사라졌어?”


간판은 사라지고 내부는 공사 중이었다. 얼마 전도 아닌, 바로 오늘 본 장면이다. 대략 9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가게인지라 중고등학생 시절에 공부하다 배가 고플 때 우리의 선택지는 항상 그곳이었다. 밥때를 맞춰가면 학생들로 자리가 가득 차 있어 앉기 힘들 만큼 인기가 많아, 다른 사람들이 다 먹고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늦게 가곤 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엄청 잘 대해주신 덕분에 한번 갔던 사람도 다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드는 그런 음식점이었다.


가게의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에 손님들이 쓰고 간 메시지들이 있어 밥 먹으며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학생들의 메모는 온데간데없고 바닥에 떨어진 타일만이 원래 있던 벽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했다. 성인이 되고 동네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집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 빈도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는데, 자주 가던 가게가 사라진 모습을 보니 한 번도 찾지 않던 게 후회가 된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면 많은 가게들이 들어왔다 사라지는 것을 보곤 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상호명이 바뀌는 곳도 있는 반면, 옛 간판을 달고 10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는 곳도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동네에 자리한 장소가 사라진 모습을 보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드는데, 이에 얽힌 내 기억을 몇 개 써보려 한다.

한 장소를 여러 이름으로 떠올리곤 한다.

스핑크스에게는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이라는 수수께끼가 있다면, 나에게는 ‘군것질거리로 가득한 공간’, ‘오른쪽으로 돌아서 들어가야 할 이정표’, ‘자주 가지 않게 된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장소가 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마트가 나에게는 일정 시기마다 바뀌는 존재였는데, 내가 이사를 가는 시기와 비슷하게 가게의 주인이 바뀌어 상호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엄마의 뒤를 쫓아 마트를 가면 아이스크림과 과자 진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그때마다 몇 개의 전리품을 들고 오곤 했다. 집이 뒷골목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마트와 같은 선 상에 위치하게 되었을 땐, 눈앞에 과일 가판대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였다. 입구에 놓인 빵 진열대를 보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홀려 들어가는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이 된 후, 그 길목으로 다니지 않게 되면서 지금은 가끔 동네 산책할 때 한 번 훑어보고 가는 그런 공간이 되었는데, 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옛날 발라드와 아주머니들의 모습, 그리고 갈 때마다 풍기는 마트 특유의 냄새는 아직도 옛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매월 2·4주 일요일 정기휴일.

태권도장 건너편에는 약국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드신 약사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적벽돌 타일로 둘러싸인 건물에 철제 프레임의 낡은 문이 달려있어 열 때마다 힘겨운 듯한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언뜻 봐도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처럼 보였다.


약국 안은 온통 짙은 색의 목재로 뒤덮여 있어 케케묵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삐걱이는 소리를 내는 나무 벤치가 있었고, 선생님의 뒤편에는 알 수 없는 한자가 새겨진 서랍장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한약재가 가득했다. 가끔가다 엄마가 약을 받으러 가면 그 뒤를 쫓아가서 벤치에 앉아있는 게 내 역할이었는데, 서랍장에서 풍겨오는 특유의 한약 냄새를 좋아해서 약국에 들어서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했다.


약사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은 보건당 약국이라는 간판이 있던 자리에 시꺼먼 흔적만이 남아있다. 저녁이 되면 내려가던 셔터도 온종일 입구를 막고 있는데, 영업했을 시절의 정기휴일 날짜는 아직도 그 위에 새겨져 있다.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방구.

동네에서 더 뒤편으로 걸어가면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삼전문구가 있고, 그 옆 건물의 2층에 세미 미술 피아노 학원이라는 이름의 종합학원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잠시 다녔던 곳인데, 지금은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다. 학원 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입구 가까운 곳에는 미술실이, 더 깊숙한 곳에는 피아노실이 있는 구조였다. 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했지만,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피아노실은 선생님께 1:1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피아노 한 대와 칸막이로 이루어진 방이 그 옆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 곡을 선생님과 연주해 보고 옆방으로 들어가서 연습하고 나오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 번 연주할 때마다 체크리스트에 표시하기를 10번을 끝내야 방에서 나올 수 있었는데, 같은 곡을 10번을 반복해서 연주하기 싫어서 2~3번만 연습하고 나오곤 했다.


결국엔 거짓말을 들키게 되었고, 나는 그게 부끄러워서인지 겨우 바이엘 4까지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학원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해서 그 후로도 미술학원은 계속 다녔는데,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피아노 선생님과 마주치는 건 참으로 어색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자주 가던 밥집, 마트, 약국, 그리고 미술종합학원. 동네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땐 내가 이 공간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달라져도 ‘아, 바뀌었구나’ 정도의 가벼운 알아챔 뿐일 줄 알았는데, 장소에서 기인하는 기억이란 참 크다는 것을 느꼈다. 사라지거나 바뀌어 가는 장소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예전과 같은 경험을 다시는 겪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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