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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지자 행보(2)

두 번째 내려놓음


  아무것도 모른 채 모델의 길에 입문한 나는 그해(2019)에 아카데미 과정을 다 마치고, 드라마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모델 오디션에서 상상하지 못한 상을 받는 등 그런대로 의미 있는 공부와 경험을 했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에 몸이 굳고 마음이 초조해지는 카메라 공포증에서 좀 자유로워진 것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계속 사진을 찍고 포즈 연습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좀 익숙하고 편안해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근본적으로 궁금한 것은 ‘모델의 길을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가?’였는데 그것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게 막막하고 막연했다. 그러던 중 더룩 오디션에서 만나 알게 된 친구 H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몇 분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려 하는데 내가 참여하면 좋겠다는 초청의 전화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만나서 이야기할 거라면서 함께 하자고. 기왕 아무것도 몰라 막막했던 처지인지라 일단 초청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 후 첫 모임 연락이 왔기에 나갔다. 나갔더니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15명이 넘는 것 같았다. 오디션에서 봤던 분들도 있고 처음 보는 분들도 있었다.     

 

  초청한 사람이 다 모이자 한 젊은이가 인사했다. ○○ 대표로 일하는 K라고 했다. 미국 출장 중에 우연히 패션 디렉터 닉 우스터의 사진을 봤는데, 나이 든 닉의 멋짐에 우선 반했고, 한국에는 왜 저렇게 멋진 아저씨가 없을까, 의문이 들었단다. 그 후 그 의문을 풀기 위해 퇴사를 하고 패션 쪽으로 진로를 바꿔 일하고 있으며,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before, after>작업(동네 아저씨의 본래 모습과 헤어부터 신발까지 메이크오버 작업을 통해 멋지게 변화된 모습을 사진 찍음)을 했다고 이력을 소개했다. 결과물을 담은 책자도 보여주었다. 한국의 아저씨들을 닉 우스터처럼 멋지게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대의 변화상을 설명했다. 광고 수주액이 방송국에서 SNS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는 통계를 보여주면서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TV, 신문, 잡지, 라디오)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SNS와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누구든지 준비만 되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자기는 세계가 주목하는 아저씨 패션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 일을 여기 모인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잖아도 모델로서 어떻게 길을 열어가야 하는지가 제일 궁금하고 막연했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반가웠다. 더욱이 시대의 흐름을 큰 틀에서 정확하게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 만큼 엉뚱한 길로 가지는 않겠다는 최소한의 신뢰도 됐다. 하여 큰 망설임 없이 그 친구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매주 소공동에서 만나 스타일링하고 촬영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피차 서먹하던 관계도 편안해지고 함께하는 작업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당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지구촌 전체가 신음할 때인데도 정말 열심히 스타일링하고, 사진 찍고, 인스타그램에 사진 업로드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몇 개월을 소공동에서 작업하다 동대문에 있는 무신사 공유 오피스로 옮겨 한층 업그레이드된 작업을 했다. 매주 금요일에 모여 강의를 듣고, 사진을 찍고, 간단한 동영상 릴스를 찍고, 때로 광고도 찍었다. 함께하는 인원도 조정돼 8명으로 자리를 잡았고, 세계 최초의 시니어 패션그룹(아마도 세계 최초일 것)으로 <아저씨즈, Ahjussis>라는 그룹명도 지었다. 회사 이름과 로고도 새로이 바뀌는 등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가 됐다.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런데 2020년 2월에 K 대표를 만나 작업해왔음에도 이 세계에 문외한인 나는 11월이 다 되도록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비즈니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돈도 받지 않으면서 <아저씨즈>에 에너지를 쏟는 이유가 무엇인지, 회사와 <아저씨즈>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의 갈등도 쉼 없이 출렁였다. 모델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길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길이 아니다는 생각)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모델의 길을 향해 가고 있는 나를 나에게 설득해보지만 잘 설득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추구하는 삶과 모델로서 하는 일이 서로 충돌했으니까. 일례로 페이스북에 쓰는 글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이 너무 달랐다. 페이스북 글을 본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내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달랐다. 내가 평생 공부하며 추구해온 가치는 반자본주의적인데 모델로서 상품 광고를 찍는 것은 자본주의에 앞장서 복무하는 것이어서 마음 편히 모델의 길을 가는 게 힘들었다. 하여, 쉼 없이 나를 설득해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설득되지 않았다. 때로 눈 딱 감고 모델 쪽에 체중을 실어보기도 하는데 잠깐일 뿐 도무지 체중이 실려지지 않았다. 전혀 다른 두 세계관을 조화시킬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또 회사와도 점차 지향점의 간극이 느껴졌다. 나는 젊은이와 소통하고 싶지, 젊은이를 흉내 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격이 있는 모델이고 싶지, 사람들이 따라 하는 가벼운 춤을 추고 싶지 않았다(춤을 춘다면 제대로 추고 싶었음). 나는 겉과 속이 조화로운 사람이고 싶지, 겉만 멋지게 꾸미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끝없이 변화하는 시대와 대화하고 싶지, 시대의 변화를 재빠르게 추종하고 싶지 않았다.   

   

  이처럼 조금씩 눈을 떠가고 모델 일을 알아가면서 점차 내 안의 가치관과 하는 일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일렁였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내가 가고 싶은 방향 사이에도 간극이 발견됐다. 마음이 복잡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 않은 인생길 살아오면서 실패도 하고 아픔도 겪고 좌절도 해봤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하며 방황하는 일은 없었는데 나이 60이 넘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해 보였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하는 사태가 벌어져 사회적 긴장이 고조됐다. 항상 코로나에 감염되면 어떡하나, 불안했는데 코로나가 확산하자 마음이 위축되었다. 매주 서울에 가는 게 부담됐다. 마침 이때다 싶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참에 회사와 함께 하는 것을 쉬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곧바로 하차했다. 2020년 11월 하순,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핑계로(나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었기에 코로나 고위험군에 속함).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다. 내적 방황, 내적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모델의 길을 가는 나를 나에게 설득하지 못해서였다. 흔쾌한 맘으로 모델의 길에 집중할 수 없어서였다. 


  나는 사실상 모델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별다른 미련 없이 자족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설교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3개월 후 또다시 잔잔해진 마음에 파문이 이는 연락이 왔다. 21년 2월 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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